‘졸음이 나를 엿 먹일 때’에는 ‘박하’가 들어간 엿을, ‘세월이 나를 엿 먹일 때’에는 ‘홍화씨’로 만든 엿이 제격이다. ‘엿 먹어라’ 는 비속어는 오히려 즐거운 이야기로 변신했다.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는 ‘엿’이라는 제품에 ‘이야기’를 입혔다. 그는 ‘엿’이라는 제품이 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현대적이고 해학적으로 비틀어 정공법으로 제시했다.
이야기는 인류의 본능
27일(화) 서울 삼성동 코엑스 컨퍼런스룸에서 한국콘텐츠진흥원 주최로 열린 ‘이야기 산업’ 정책 세미나에서 김희재 대표는 ‘스토리의 힘’을 강조했다.
김희재 대표는 초코릿이 가지는 달콤함, 우아함, 고급스러운 이미지를 우리 전통 간식인 엿에 투영시켰다. 그가 개발한 엿 제품 ‘엿츠’에는 달콤하면서도 해학이 있는 친근한 이미지의 스토리가 담겼다. 직설적이고 대범한 이야기를 좋아하는 젊은 층들에게 그의 전략은 주요하게 들어맞았다.
포럼의 좌장을 맡은 한창완 세종대학교 교수는 할리데이비슨에 담긴 '이야기'의 중요성을 언급했다.
1903년도에 만들어진 할리데이비슨 모터사이클은 심장박동 같은 강한 엔진 소리와 자유를 갈망하는 강한 남성상을 브랜드에 투영시키며 전 세계 수많은 마니아층을 양성했다. 브랜드에 담긴 ‘스토리의 힘’ 덕분이었다.
일반 자동차 가격을 훌쩍 뛰어넘는 고가에도 불구하고 할리데이비슨을 소유하고자 하는 이들에게 가격은 상관없다. 할리데이비슨은 바로 자신이 닮고 싶은 정체성, 그 자체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인류의 역사를 빅 히스토리로 담대하게 서술한 '사피엔스'의 저자 유발 노아 하라리 히브리대 교수는 인류가 문명을 일으키고 지구를 정복할 수 있었던 힘 중 하나는 ‘이야기(Story)’를 만들어내는 능력과 이야기를 좋아하는 종(種)의 특성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4차산업혁명 시대가 도래 하면서 기계와 인공지능에 대응할 인간의 능력 중 하나인 창의성은 ‘이야기’와 분리하기 어렵다. 이야기는 바로 상상력 자체이기도 하며 새로운 창의성으로 가는 단초가 되기 때문이다.
창작물과 창작자 보호 시급
그렇다면 '이야기'란 무엇인가? 이야기란 “어떤 사물이나 사실, 현상에 대해 일정한 줄거리를 가지고 하는 말이나 글 또는 인물, 사건, 배경의 요소를 의도적으로 배열하여 만들어내거나 활용된 줄거리”를 뜻한다.
이야기 산업이 진흥되기 위해서 가장 중요한 것은 창작물 자체이다. 아이디어와 이를 수반하는 각종 창작물의 보호가 시급하다. 하지만 현장에서는 아직도 ‘열정페이’를 논하며 창작자들의 재능을 활용하고 있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표준계약서가 도입되었지만 현장에서는 무용지물이 되고 있는 사례가 대표적이다.
영화 ‘타짜2-신의 손’ 시나리오를 공동 집필한 이지강 작가는 "창작자를 보호하기 위한 표준계약서를 사용하도록 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제작자의 열악한 제작환경과 작가의 생계 등의 문제 등과 맞물려 표준계약서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고 있다"며 불만을 토로했다. 그는 “표준계약서에 강제성이 없다보니 현장에서 온도 차이를 많이 느끼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야기 산업을 위한 공정한 생태계 조성 필요
소설, 드라마, 시나리오, 영화만이 이야기가 아니다. 이야기 산업에 대한 범위가 넓어졌다. 아이디어와 이야기 자체만으로는 산업으로 확장되어 나가기 어렵다.
전문가들은 “이야기라는 창작물을 많이 배출하도록 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야기를 유통하고 거래할 수 있는 시장과 환경을 만들 수 있는 제도적 기반이 조성되어야한다”고 입을 모았다.
CJ E&M 남궁종 팀장은 “이야기 산업이 유지되고 성장하기 위해서는 생태계 안에 유입되고 성장하고 성공사례를 만들어 내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하고 이어 현장에 만연된 승자독식 문제를 지적했다.
"이야기 산업 안에서 창작물이 잘되면 대박, 안되면 쪽박이다. 중간이 없다. 산업적 위험(risk) 요인이 너무 크다. 그러다보니 신인작가가 들어오기 힘든 것이 지금의 현실"이라고 남 팀장은 분석했다.
창작자의 보호와 이야기 산업 활성화 사이에 균형이 중요하다. 이들은 공정한 이야기 거래 질서 확립을 위한 제도적 기반 마련이 우선시 되어야 한다고 의견을 모았다.
강향원 변호사는 “아직도 창작, 예술가들이 ‘열정페이’를 받으며 사회적 약자인 경우가 많다”고 지적하고 “표준계약서에는 이해관계자들이 많이 참여해 독소조항이 없도록 만들어야한다”고 말했다.
무차별적인 아이디어 보호 아닌 ‘원석’ 보호 필요
창작물과 창작자 보호가 시급하다는 점에는 공감대를 형성했으나 아이디어 보호에 관련해서는 신중한 입장을 보였다.
아이디어 자체를 전부 저작권 보호를 하다보면 오히려 개인의 영역에 묶여서 거래 유통 활성화에 저해된다는 의견이 우세했다. 강향원 변호사는 “아이디어를 보호해야 한다는 의미가 모든 아이디어를 보호해야 한다는 뜻은 아니”라고 단정하고 “저작물로 발전할 수 있고 원석이 되는 아이디어를 보호해야한다”고 강조했다.
김희재 올댓스토리 대표가 의견을 이어 보충했다. 그는 영화로 제작된 ‘광복절 특사’의 사례를 들었다. 그는 핵심적 가치가 담긴 아이디어는 단지 문장 두 줄만으로도 저작권을 가질 수 있다고 말했다. 가령 ‘광복절에 죄수가 탈옥했는데 알고 보니 광복절 특사 명단에 들어있어 다시 목숨 걸고 감옥으로 들어가는 이야기’는 단지 두 줄만으로도 저작물로 발전할 수 있는 ‘원석’이다.
전문가들은 이야기 산업이 부흥하고 탄탄한 산업으로 기반을 다지기 위해서는 공정한 거래 질서와 유통 방법, 열악한 제작사들의 환경 개선 등이 필요하다는데 동의했다. 더불어 ‘이야기력(力)’을 가진 신인 창작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 제정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 김은영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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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7-06-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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