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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명과학·의학
정회빈 리포터
2025-10-17

수면 중 성장호르몬이 분비되는 뇌 회로 제시 깊은 잠에서 폭발적으로 분비된 성장호르몬이 뇌 각성 허브를 자극하는 새로운 기작 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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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인에게 잠은 늘 부족하다. Ⓒ Getty Images
현대인에게 잠은 늘 부족하다. Ⓒ Getty Images

바쁜 현대인에게 잠은 늘 부족하다. 건강을 챙기기 위해 따로 운동하기도 하지만, 잠자는 시간이 부족할 때는 충분한 수면 시간을 확보하는 것이 운동보다 더 건강에 도움이 된다. 깊은 잠에 빠지면 우리 몸은 근육의 미세 손상을 회복하고 면역세포들도 새롭게 정비하며 다음 날을 준비한다. 뇌에서는 뇌척수액이 순환하며 아밀로이드와 같은 대사 노폐물을 씻어내고, 깨어 있을 때 해마에 기억해 두었던 내용들은 장기 저장소인 신피질 구역으로 이동한다. 반대로 수면이 부족하면 교감신경이 과도하게 활성화되어 코르티솔이라는 스트레스 호르몬 분비를 증가시키고, 인슐린 저항성을 높여 혈당 조절을 어렵게 한다. 또한 식욕 조절 호르몬인 그렐린(식욕 촉진)을 증가시키고, 렙틴(식욕 억제)을 감소시켜 결과적으로 과식을 유발할 수 있다. 그 결과 비만, 당뇨, 고혈압과 같은 대사질환 위험성은 커지고, 기억력과 집중력은 떨어진다.

 

수면 중 성장호르몬이 켜는 회복 스위치

수면이 전신의 회복을 시작하는 스위치라면, 그 스위치를 켜는 역할은 성장호르몬이 담당한다. 성장호르몬은 이름과 같이 뼈와 신체 조직의 성장을 촉진할 뿐만 아니라, 지방 세포를 분해하여 에너지로 사용하도록 도움으로써 체지방을 감소시키는 효과를 나타낸다. 또한 면역세포의 기능을 활성화하여 감염에 대한 저항력을 높이는 데에도 기여한다.

성장호르몬은 수면 과정에서 많이 분비되는데, 특히 깊은 잠에 빠질 때 가장 많이 솟구친다고 알려져 있다. 사람의 수면은 안구가 빠르게 움직이고 꿈을 많이 꾸는 급속안구운동(rapid eye movement, REM)과 깊고 느린 뇌파가 나타나는 비급속안구운동(non‑REM, NREM)으로 나뉜다. REM 상태(얕은 잠)의 뇌파는 깨어 있는 상태와 비슷하게 활발한데, 감정을 처리하고 학습한 내용을 장기 기억으로 저장하는 데 중요하다. NREM 수면(깊은 잠)은 낮 동안 소모된 에너지를 회복하고 신체 기능을 전반적으로 회복시키는 역할을 한다. 잠을 자는 동안 NREM 수면과 REM 수면은 약 90분 간격으로 반복되며 수면 시간이 지날수록 REM 수면의 비율이 증가하는 패턴을 보인다.

잠을 자는 동안 NREM 수면과 REM 수면은 계속 반복된다. Ⓒ Getty Images
잠을 자는 동안 NREM 수면과 REM 수면은 계속 반복된다. Ⓒ Getty Images

 

성장호르몬을 촉진, 억제하는 시상하부 뉴런들

수면과 성장호르몬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던 연구자들은 오래전부터 NREM과 REM의 첫 사이클, 그 중 NREM 동안에 성장호르몬이 가장 많이 분비된다는 것을 발견하였다. 하지만 왜 깊은 잠이 성장호르몬 분비를 촉진하고 이것이 수면 패턴에 미치는 영향은 알지 못했다. 최근, 이 궁금증을 풀어낸 연구가 발표되었는데, 미국 UC버클리대학교의 단 박사 연구팀은 수면 중 성장호르몬 분비를 제어하는 뇌 회로도를 제시하여 지난 9월 셀 저널에 발표하였다. 

연구팀은 먼저 뇌에서 신체 항상성을 유지하고 호르몬 분비를 통제하는 시상하부에 주목하였다. 시상하부에는 성장호르몬(growth hormone, GH) 분비를 촉진하는 성장호르몬분비호르몬(GH-releasing hormone, GHRH) 뉴런(신경세포)과, 반대로 분비를 억제하는 소마토스타틴(somatostatin, SST) 뉴런이 각각 존재한다. 성장호르몬 분비에 있어서 GHRH는 가속 페달, SST는 브레이크인 셈인데, 뇌의 특정 지역에 함께 있어서 성장호르몬 분비를 조절하는 것이다. 연구팀은 마우스의 뇌 부위에 미세 전극 장치를 심어서 수면 단계(NREM, REM)를 모니터링하며 동시에 각 뉴런들의 활성을 확인하였다.

그 결과 NREM 수면 중에는 GHRH가 약간 증가하고 SST는 감소하면서 성장호르몬이 완만히 증가하였고, REM에서는 두 신호가 동시에 크게 요동치며 성장호르몬이 추가로 다량 분비되었다. 즉, 뇌에서 성장호르몬 분비를 반대 방향으로 조절하는 두 신경세포가 REM 수면과 NREM 수면에서 서로 다른 양상으로 활성화되며, 성장호르몬의 양을 정밀하게 조절하고 있다. 참고로 마우스는 사람과 달리 야행성이라서 낮에는 잠을 자고 밤에 활동하는 패턴을 보이지만, 수면과 성장호르몬 연동의 원리는 포유류 전반에서 잘 보존되어 있다.

GHRH 뉴런과 STT 뉴런은 깊은 잠(NREM)과 얕은 잠(REM)에서 각각 다르게 활성화되며 성장호르몬 분비를 조절한다. Ⓒ Cell
GHRH 뉴런과 STT 뉴런은 깊은 잠(NREM)과 얕은 잠(REM)에서 각각 다르게 활성화되며 성장호르몬 분비를 조절한다. Ⓒ Cell

 

청반점을 통한 수면-각성의 균형

수면 중 분비된 성장호르몬은 뇌간에 있는 청반점(locus coerulues) 부위에 작용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청반점은 각성 상태를 유도하는 신경전달물질인 노르에피네프린을 생성하는 핵심 허브이며 각성, 주의력, 스트레스 반응 등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 성장호르몬에 의해 서서히 활성화된 청반점의 뉴런은 일정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깨어날 준비를 시킨다. 이는 잠을 자는 동안 증가한 성장호르몬이 청반점을 자극하여 각성시킴으로써, 결과적으로 잠을 줄여 이후 성장호르몬의 추가 분비를 스스로 억제하는 네거티브 피드백이 작동하고 있음을 의미한다.

또한 이번 연구에 공동연구자로 참여한 실버만 박사는 올해 1월 사이언스 어드밴시스에 청반점의 과도한 활성화가 역설적으로 졸음을 유발한다는 내용의 논문을 제1 저자로 발표하였다(논문 바로가기). 청반점에 있는 뉴런을 반복적으로 자극하면 짧은 각성 이후 노르에피네프린 분비가 급속히 감소하면서 수면압이 빠르게 올라간다는 것이다. 즉, 우리 몸은 성장호르몬의 미세한 조절을 통하여 수면-각성 사이의 균형이 잡히고 청반점이 그 핵심 교차점임이 규명된 것이다.

시상하부 뉴런과 청반점이 성장호르몬을 통해 수면-각성 사이클을 만드는 모식도. Ⓒ Cell
시상하부 뉴런과 청반점이 성장호르몬을 통해 수면-각성 사이클을 만드는 모식도. Ⓒ Cell

연구를 수행하기 위해서는 마우스가 잠을 자는 도중 혈액을 채취하여 성장 호르몬 수치를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이를 위해 연구팀은 마우스가 최대한 스트레스를 받으며 깨지 않도록 무자극 미세채혈 방법을 사용하였다. 동일한 실험자가 7일간 하루 15분씩 마우스 꼬리를 접촉하며 순화시킨 뒤, 첫 채혈 전에 꼬리 끝 1 mm 정도를 절제하여 미세 혈적이 맺히도록 하였다. 이후 모든 채혈은 생리식염수를 적신 거즈로 상처 표면만 최소한으로 열고 1회에 0.0025 ml 정도만 아주 소량 채취하였다. 또한 매일 총채혈량은 0.025 ml 미만으로 제한하여 마우스가 받을 스트레스를 최소화하였다.

 

수면 질환 연구의 새로운 표적

이번 연구는 수면 중에 분비되는 성장호르몬이 말초 조직만 자극하는 것이 아닌, 뇌의 각성을 유도하여 스스로의 양을 조절하는 전체 회로도를 규명하였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이는 불면증, 과다각성형 불안, 교대근무로 수면 구조가 깨진 경우 등 수면 관련 질환의 치료 표적 연구에 활용될 수 있다. 숙면은 다음 날의 컨디션을 좌우하는 것을 넘어, 근육, 지방, 혈당, 주의력까지 아우르는 전신의 리셋 버튼이다. 내일을 활기차게 시작하고 싶다면, 오늘 밤은 규칙적인 수면 시간과 조용한 환경으로 성장호르몬의 분비를 높여보자.

성장호르몬 분비 회로도가 새로운 수면 질환 표적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 Getty Images
성장호르몬 분비 회로도가 새로운 수면 질환 표적이 될 수 있길 기대한다. Ⓒ Getty Images

 

관련 연구 바로 보러 가기

Neuroendocrine circuit for sleep-dependent growth hormone release, Ding et al., 2025, Cell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5-10-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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