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후쿠시마 제1원전의 모든 원자로에 외부 전원이 연결되면서 냉각시스템이 안정을 되찾았다. 매우 강력한 여진과 같이 예상치 못한 사고가 일어나지 않는 이상 더는 원전사고로 인한 피해가 증가하지 않을 것으로 전망된다. 또한 도쿄전력 측은 앞으로 차례차례 모든 원자로의 전력시스템을 복구할 계획임을 밝혔다.
이번 사고는 제1원전 6개의 원자로에 모두 이상이 발생하면서 최악의 경우 체르노빌 수준만큼 심각할 것으로 예상됐었지만 다행스럽게도 그 지경까지 악화되지는 않았다.
22일을 기준으로 후쿠시마 원전과 20km정도 떨어진 지역에서 평상시의 약 1천600배에 달하는 방사선량이 측정됐다. 원전 냉각시스템의 고장으로 과열된 원자로를 식히기 위해 들이부은 바닷물이 문제였다. 사용된 바닷물은 지표를 거쳐 다시 바다로 흘러 들어가면서 인근 해역을 방사선으로 오염시켰다. 이에 해당 지역의 작물이나 어류 등도 함께 오염돼 섭취를 통한 2차 오염이 우려된다.
이처럼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결국 많은 피해를 남겼다. 원전의 안전에 자신만만해 하던 일본의 자존심과 최고의 자연재해 대비 국가라는 명성에도 흠집이 났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는 이번 원전 사고의 확대 원인이 비단 지진에만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돈 아까워 최선 대응 못했다?
최근 후쿠시마 원전에 대한 뒷이야기들이 속속들이 밝혀지면서, 도쿄전력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그 중에서도 이번 사고의 피해를 확대시킨 가장 큰 원인으로 도쿄 전력의 늑장 대응과 안전을 최우선시 하지 않은 대책, 소홀한 관리와 운영 등이 지목되고 있다.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전력공급이 중단되면서 시작됐다. 전력이 끊기면서 냉각시스템에 문제가 생기고 과열된 원자로에서 수소기체가 발생, 내부 압력이 증가하다 폭발하게 된 것.
그런데 이는 충분히 예견할 수 있었던 문제였다. 냉각시스템의 부재가 원자로에 어떤 영향을 줄 수 있는지는 여태 일어났던 다른 원전 사고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즉, 사고 즉시 원전의 전력공급을 최우선시 해야 했다는 것이다.
지난 22일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서 열린 ‘후쿠시마 원전 무엇이 문제인가’ 강연회에서 KAIST 원자력및양자공학과 장순흥 교수는 “후쿠시마 원전사고는 사고 이후 전기 공급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커졌다”며 “사고 당시 관련 절차서에 따라 안정화 조치를 취했어야 했는데 따르지 않고 헬기 등을 동원해 살수작업을 벌인 것과 해수 등을 이용해 과감하게 냉각수를 주입하려는 노력이 미흡했던 것이 사고를 키우게 됐다”고 설명했다.
일각에선 도쿄전력이 이런 적극적인 조치를 취하지 못한 원인에 대해 “안전보다 경제적 손실을 우선시했기 때문”이라 주장하면서 논란이 일고 있다. 월스트리트 저널(WSJ)이 사고 관계자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한 보도에 따르면 도쿄전력은 지진이 발생한 바로 다음날인 12일 아침, 제1원전 6개의 원자로에 해수를 주입해 온도를 낮추는 방안을 내놓았다. 하지만 도쿄전력은 당일 밤이 되도록 해수를 사용하지 않았으며, 결국 계속된 온도상승으로 1호기에서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도쿄전력은 그날 밤이 되서야 해수를 투입했는데, 다른 원자로에는 해수를 사용하지 않았다. 그 결과 계속된 온도상승으로 연쇄적인 수소폭발이 일어났다.
이와 같은 도쿄전력의 대응에 대해 사람들은 안전보다 자산을 중요시해 벌어진 사태라 주장하고 있다. 연료용기에 해수가 유입되면 원자로를 사용하지 못하게 된다. 이에 원자로를 보호하려 해수유입을 주저했다는 것.
또한 원전 사고 직후 미국 정부가 일본 측에 냉각기술지원을 제안했지만 일본 정부가 거절한 사실이 드러나면서 이에 대한 지적도 만만치 않다. 미국정부의 기술지원은 원자로의 폐쇄를 전제로 한 것이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것이다. 물론 일본 정부와 도쿄전력측이 어렵게 판단한 사항이겠지만 결국 피해상황은 커졌고 당국은 질책을 면치 못하게 됐다.
원전 건설 참여 전문가의 폭로
후쿠시마 원전사고의 지진 외 원인은 또 있다. 바로 원전의 허술한 시공과정과 관리 등에서도 문제가 제기된 것. 이에 대한 내용은 특히 후쿠시마 원전 건설에 참여했던 배관 전문 현장감독 히라이 노리오 씨의 폭로글이 나오면서 더욱 이슈가 되고 있다. 이 글에는 후쿠시마 원전이 설계수명을 초과했음에도 비용 측면의 이유로 연장시켜 사용한 것, 시공과정에 비전문가가 참여했으며 설계대로 진행되지 않았다는 점 등이 포함돼 있다.
후쿠시마 원전은 가동된 지 30년이 넘었으며 설계수명을 넘어서 이미 노후한 상태였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여기에 시공 상에서도 여러 문제가 있었다는 것은 놀랄만한 일이다.
예를 들어 정밀함과 안전을 최우선해야하는 원자로 건설에 있어 원자로 내부에 실수로 철사가 들어갔다든가 배관 내부에 도구나 공구를 넣은 채로 배관을 연결하기도 했다는 내용은 경악을 금치 못하게 한다.
노리오씨는 또한 시공과정이나 노후 장비 교체 등에서 노동자들이 겪는 방사선 피폭에 대한 두려움과 그에 따라 작업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는 점에 대해서도 지적했다. 노동자들이 원자력이나 방사선 등에 경험과 지식이 없는 채로 그 위험성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극도의 두려움 속에서 제대로 된 작업을 시행할 수 없었다는 것. 노리오씨는 이런 상황들에 대해 “유명한 일급건축사에게 집의 설계를 부탁하더라도 목수나 미장이의 실력이 좋지 않다면 비가 새고, 바람이 들어오게 된다”며 “애석하게도 그 집이 바로 일본의 원전아다”라고 표현했다.
이 외에도 그의 폭로글에는 원자력검사협회에 다니는 사람들이 원자력에 대해 문외한이라는 것, 원전에서 사용한 방사선 수치가 높은 물을 바다로 흘려보내 바다가 오염되고 있다는 것 등 다소 충격적인 내용들이 많이 들어있다. 더욱 걱정스러운 것인 이와 같은 원전의 문제점들이 비단 후쿠시마 원전에만 해당되는 내용이 아니란 것이다.
지진은 막을 수 없지만 인재는 막을 수 있었다
도쿄전력 측의 수난은 이 폭로글에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 21일 일본 원자력안전보안원은 “도쿄전력이 후쿠시마 원전에 대해 반드시 실시해야 하는 시설점검을 상습적으로 실시하지 않았음이 드러났다”고 밝혔다. 여기엔 유사시를 대비한 비상용발전기와 냉각 시스템의 펌프 및 부품도 포함돼 있던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이번 사고는 재연재해라기 보다는 소홀한 관리와 운영으로 인한 최악의 인재(人災)라는 지적이 거세다. 이는 지진과 같은 천재(天災)와는 달리 얼마든지 예방이 가능한 것이었기에 이번 사고의 확대에 대한 안타까움의 목소리는 끊이지 않고 있다.
- 조재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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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1-03-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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