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눈이 놓치고 있는 빛의 세계
누구나 한 번쯤 야간투시경을 착용한 영화 속 주인공을 보며 부러워한 적이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무거운 장비 없이도 그런 능력을 얻을 수 있게 되었다. 중국 과학자들이 개발한 특별한 콘택트렌즈를 착용하면 평소 보이지 않던 적외선을 볼 수 있어 어둠 속에서도 물체를 구별할 수 있게 된다. 더욱 신기한 것은 눈을 감았을 때 오히려 더 선명하게 적외선을 감지할 수 있다는 점이다.

우리가 시각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생각보다 제한적이다. 인간이 볼 수 있는 빛은 약 400~700나노미터 파장 범위에 불과하다. 예를 들어 일상적으로 우리가 무지개를 볼 때 눈에 보이는 영역은 빨간색부터 보라색까지가 전부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보다 훨씬 넓은 빛의 스펙트럼이 존재한다. 지구에 도달하는 태양 에너지의 절반 이상이 적외선 영역에 있다. 마치 라디오 주파수처럼 우리 주변에 가득하지만 감지할 수 없는 영역이 존재하는 것이다. 리모컨에서 나오는 적외선이나 체온으로 발산되는 열복사는 분명히 존재하지만 우리 눈으로는 이를 확인할 수 없다.
지금까지 이런 보이지 않는 영역을 보려면 야간투시경 같은 특수 장비가 필요했다. 그간 이런 장비들은 마치 90년대 휴대폰처럼 무겁고 부피가 크며 별도의 배터리가 필요했다. 게다가 대부분 녹색 단색으로만 영상을 보여줘서 마치 오래된 컴퓨터 화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나노기술이 만들어 낸 마법 같은 변환
중국 허페이 소재 중국과학기술대학교의 연구진이 해결책을 찾아냈다. 마치 번역기처럼 적외선을 우리가 볼 수 있는 색깔로 바꿔주는 특수 나노입자를 개발한 것이다. 해당 연구는 2025년 5월 22일 셀에 발표되어 큰 주목을 받았는데, 상하이 푸단대학교의 화학자 샤오민 리는 이에 대해서 정말 놀라운 기술이며 마치 공상과학 영화에서 나온 것 같다고 평가했다.

구체적으로 유치엔 마 박사와 티안 쉐 교수가 이끄는 연구팀은 '업컨버전'이라는 기술을 사용했다. 이는 낮은 에너지의 적외선을 높은 에너지의 가시광선으로 변환하는 방식이다. 비유하자면 AM 라디오 신호를 FM으로 바꾸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팀이 개발한 나노입자는 머리카락 굵기의 약 2000분의 1 크기인 45나노미터인데 이 미세한 입자들이 나트륨 가돌리늄 플루오라이드에 이터븀, 어븀, 금을 결합한 복잡한 구조로 이뤄져 있다. 마치 아주 작은 색깔 변환기 같은 역할을 하는 셈이다.
물론 이러한 기술을 실제 콘택트렌즈로 만드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나노입자를 렌즈에 넣으면 렌즈가 뿌옇게 되거나 눈에 불편함을 주는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마치 맑은 유리창에 먼지가 끼면 잘 안 보이는 것과 같은 원리다. 연구팀은 나노입자 표면을 깨끗하게 처리하고 렌즈 재질과 빛의 굴절률을 정밀하게 맞추는 것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실험실에서 입증된 놀라운 효과
연구팀은 먼저 실험쥐로 효과를 검증하였다. 적외선 콘택트렌즈를 착용한 쥐들에게 두 개의 상자를 보여주었다. 하나는 완전히 어두운 상자, 다른 하나는 적외선으로만 밝혀진 상자였다.
결과는 매우 명확했다. 렌즈를 착용한 쥐들이 적외선으로 밝혀진 상자를 피하고 어두운 상자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마치 밝은 곳을 피하려는 야행성 동물의 본능처럼 행동한 것이다. 반면 렌즈를 착용하지 않은 쥐들은 두 상자를 구별하지 못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생리학적 반응이다. 렌즈를 착용한 쥐들의 동공이 적외선에 반응해 수축했고, 뇌 스캔에서도 시각 처리 중추가 활성화되는 것이 관찰됐다. 마치 실제로 빛을 보는 것과 같은 반응을 보인 것이다.
인간을 대상으로 한 실험에서는 더욱 인상적인 결과가 나왔다. 참가자들은 적외선으로 깜빡이는 모스 부호를 정확히 읽을 수 있었고, 적외선 빛이 어느 방향에서 오는지까지 구별할 수 있었다. 심지어 평상시에는 완전히 검은색으로만 보이는 카드에서 적외선으로만 나타나는 패턴을 선명하게 식별해냈다. 이에 대해서 티안 쉐 교수는 콘택트렌즈 없이는 아무것도 볼 수 없을 테지만 렌즈를 착용하면 적외선의 깜빡임을 선명하게 볼 수 있다고 설명했다.

가장 신기한 발견은 눈을 감았을 때 적외선 감지 능력이 더 향상된다는 점이다. 실험에서 참가자들이 눈을 감자 근적외선에 대한 민감도가 3.7배나 높아졌다.
왜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답은 빛의 투과력 차이에 있다. 적외선은 일반 가시광선보다 조직을 더 잘 통과한다. 예를 들어 병원에서 사용하는 적외선 체온계가 이마에 대지 않고도 체온을 측정할 수 있는 것과 같은 원리이다. 근적외선은 눈꺼풀을 쉽게 통과하지만 일반 가시광선은 대부분 차단된다. 따라서 눈을 감으면 밝은 일반 조명의 간섭이 줄어들어 적외선 신호가 더 선명하게 감지되는 것이다. 마치 시끄러운 음악을 끄면 작은 소리가 더 잘 들리는 것과 비슷하다.

연구팀은 한 걸음 더 나아가 서로 다른 적외선을 각기 다른 색깔로 구분해서 보는 기술도 개발했다. 980나노미터 적외선은 파란색으로, 808나노미터는 녹색으로, 1532나노미터는 빨간색으로 변환한 것이다. 마치 라디오에서 서로 다른 주파수를 다른 채널로 듣는 것처럼 적외선 스펙트럼을 색깔로 구분할 수 있게 된 셈이다.
일상을 바꿀 다양한 활용법들
이 기술이 실용화되면 우리 생활이 어떻게 바뀔 수 있을까? 먼저 의료 분야에서는 혁신이 일어날 것이다. 지금까지는 암 수술을 진행할 때 의사들은 특수 형광물질을 주입하여 암세포를 표시하고 이를 확인하기 위해 큰 화면을 보며 수술을 진행해야 했다. 표식을 적외선을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이 렌즈로 직접 암세포를 볼 수 있게 된다면 더 정밀하게 암세포를 제거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보안 분야에서도 활용도가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지폐나 중요 문서에는 적외선으로만 보이는 위조 방지 마크가 있는데 이제 특수 장비 없이 육안으로 마크를 확인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또 비밀 통신에도 이를 응용할 수 있다. 적외선 LED로 깜빡이는 신호를 보내면 렌즈를 착용한 사람만 메시지를 읽을 수 있다.
구조 작업에서는 생명을 구하는 도구가 될 수 있다. 화재 현장에서 연기 때문에 시야가 가려져도 사람이나 동물의 체온에서 나오는 적외선을 감지해 생존자를 찾을 수 있다. 마치 열화상 카메라를 눈에 직접 단 것과 같은 효과다.
심지어 색맹 치료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빨간색을 녹색으로 변환하는 방식으로 색맹인들이 구별하지 못하는 색깔을 다른 색으로 바꿔서 보여줄 수 있기 때문이다.
인간 한계를 넘어선 새로운 시작 - 아직 남은 과제들
인류는 수만 년 동안 제한된 시야로 세상을 봐왔는데 이번 연구팀의 성과는 그런 근본적 한계를 처음으로 깨뜨렸다고 평가받고 있다. 아직 초기 단계지만 인간의 감각을 확장하는 새로운 시대가 시작되었으며 우리 인류는 이를 통해서 인간이 가진 시각적 한계를 극복하고 있다.
반면 회의적인 목소리도 존재한다. 런던대학교의 신경과학자 글렌 제프리는 기존 적외선 장비로도 충분한데 굳이 이 렌즈를 써야 할 이유를 모르겠다며 실용성에 의문을 표했다.
그럼에도 이 기술의 장점은 분명하다. 전원이 필요 없고 여러 색깔의 적외선을 동시에 볼 수 있으며 일반 시야와 적외선 시야를 함께 사용할 수 있다. 무엇보다 주사나 수술 없이 그냥 착용만 하면 된다는 점이 가장 큰 장점이다.
물론 여전히 해결해야 할 문제들도 있다. 현재 렌즈를 통해 관측할 수 있는 이미지는 약간 흐릿하다. 마치 안개 낀 날 보는 것처럼 선명도가 떨어져 보인다. 이는 나노입자가 빛을 산란시키기 때문인데 연구팀은 이를 보완하기 위해 추가 렌즈가 달린 안경을 함께 사용하는 방법을 개발했다.
또한 현재로서는 LED 같은 강한 적외선 신호만 감지할 수 있다. 야간투시경처럼 아주 미약한 열 신호까지는 아직 포착하지 못한다. 제작 비용도 한 쌍당 약 200달러로 아직 부담스러운 수준이다. 연구팀은 재료과학자들과 광학 전문가들과 협력해서 더 선명한 고감도 렌즈를 만들고 있다고 설명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6-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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