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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02

21세기, 건축과 과학의 새로운 접점 김선아 이탈리아 건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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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에게 삶의 장소를 제공하는 건축은, 시각적으로 보여지는 형태의 건축과, 건축물을 건설하는 기술, 건물 기능의 효용에 필요한 과학기술과의 변증법 속에서 발전해왔다. 시대마다 새로운 공간이 요구됨에 따라 새로운 재료나 구조 공법이 발견되기도 하고, 도전적인 건축가들에 의해 새로운 구조, 재료가 모색돼 건축사를 변화시키기도 했다. 흥미로운 것은 시대마다 건축과 과학의 관계, 또는 관계철학이 달랐다는 것이고, 바로 이 부분이 건축을 통해 인류 역사의 흐름을 감지할 수 있는 부분이다.

건축 자체의 속성을 보자면, 동양 건축과 서양 건축의 현저한 특성 차이로 인해 하나의 잣대로 엮어내기가 쉽지 않다. 그러나 20세기 들어서 그리스, 로마건축에 바탕을 둔 서양 건축이 세계 건축사에서 헤게모니를 획득했기 때문에 작금의 건축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서양 건축의 원류에 대해 논하지 않을 수 없다.

BC 1세기, 로마 건축가 비트루비우스(Marcus Vitruvio Pollio)가 정의한 건축의 3가지 요소 'Venutus (형태)', 'Utilitas(기능)', 'Firmitas(기술)'는 건축의 속성을 말하는 진리로 이해되고 있다. 르네상스 시대에 이르러 그 의미는 재해석되었다. 세 가지 속성 중 특히 "형태" 부분에서는 레오나르도 다빈치 등 중요 건축가들의 인체연구를 통한 건축의 비례를 찾는 연구에 의해 단순히 공학적 의미의 건축과 과학의 만남을 넘어, 순수 과학과도 밀접한 관계를 갖는 시기가 있었다. 이런 연구는 서양 건축의 비례 체계에 중요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초에는 근대건축의 거장인 르 꼬르비지에(Le Corbuiser)가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주거"를 선언함으로써 극단적인 두 그룹으로 양분된다. 즉, 새로운 과학기술과 사회제도의 변화가 요구하는 건축을 열정적으로 추구하는 측과, 기계혁명이 가지고 온 과거생활의 단절에 대한 회복을 시도하는 건축가군의 대립이었다. 이 대립은 결국 새로운 정신으로 무장한 아방가르드들의 승리로 끝난다. 20세기 두 차례의 세계대전은 도시 복구를 위한 새로운 건설의 필요성을 제기한다. 유럽이 주도했던 서양사에서 새로이 신흥강국으로 등장한 미국의 부와 경제성의 추구는 고층건물을 출현시켰고, 건축에 있어서 새로운 재료, 구조, 기술의 시대라고 부를만한 변화를 가져왔다. 60-70년대에는 근대건축이 놓쳤던 건축과 역사, 인간과의 관계 회복에 대해 다양한 각도에서 조명하는 포스트 모던적인 움직임들이 있었다.

이제 컴퓨터와 인터넷의 이용은 지금 막 시작된 21세기 건축에 대한 무궁한 변화의 잠재성을 제공하고 있다. 건축과 과학의 관계는 전혀 새로운 모습을 하게 될 것이다. 이 점은 20세기까지 있어왔던 건축에서의 기술공학의 역할과도 분명히 차별된다. 20세기 초부터 시작된 거대한 건설, 즉 기둥 없이 수십 미터를 가로지르는 교량, 바벨탑의 욕구를 연상시키는 고층건물, 무수한 자동차들을 실어 나르며 도심을 가로지르는 육중한 콘크리트 고가 도로 등은 콘크리트와 철골로 덮여있는 도시의 모습을 만드는데 기여했던 지난 시간의 산물들이다. 예를 들면, 프랑스 파리의 도심에 있는 퐁피두 센터는 건축을 구성하고 있는 설비 덕트, 구조를 노골적으로 노출시켜 논란을 일으켰던 건물로 그 시대를 가장 잘 대변해주는 건물이다.

이렇듯 건축에 있어서, 재료나 구조는 자신을 건축의 형태에 결부시키며 분명하게 모습을 드러내 왔다. 하지만, 최근 10년부터는 노골적으로 중력을 벗어나고자 하는 건축가의 욕구가 형태에 구체적으로 표현되기 시작했다. 현대 건축이 추구하는 복잡하고 미묘한 형태를 가능하게 위해 이제 구조는 자신의 모습을 더욱 보이지 않게 하기 위한 방법을 추구하고 있다. 이런 움직임이나 구조 재료는 도시의 모습도 변화시킬 것이다. 콘트리트와 철골로 덮여있는 것이 아니라, 유리기둥, 보이지 않는 막, 얇고 가벼운 구조재 등으로 이루어지게 될 것이다. 이러한 21세기 건축에 과학기술이 크게 기여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21세기 건축에서 과학의 가장 중요한 기여는 구조와 재료보다는 "환경"부분에서의 기여일 것이다.

20세기 말에 시작되어 21세기를 이끌어갈 화두인 "디지털"은 역설적으로 "아날로그"에 대한 필요성을 인식시켰다. 이는 과학과 인간의 결합과도 연관된다. 디지털 자체의 가능성에 열광했던 시간은 잠깐이었다. 문제는 디지털이 우리 생활에 어떻게 관련되느냐 하는 문제다. 결국은 우리 삶을 더 풍요롭게 하는데 이바지 할 때만이 디지털은 자신의 진정한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의사소통방법, 무한한 범위, 정보채집의 수월성, 익명성 등의 성격으로 인해 디지털은 소통을 하기 위한 "이동"이라는 도시의 요소에 영향을 미쳤다. 하지만 이제 건축에서의 디지털은 실내 공간을 인간생체에 맞추는 최적 환경으로 만들어주는데서 자기 몫을 해야 한다.

즉, 건축과 도시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그 공간에서 인간이 어떻게 건강하게 생활하느냐이다. 이는 황폐해진 환경으로부터의 피난처인 건축에 대한 사회적 기대치가 생겼기 때문이다. 형태와 구조, 기능을 논하는 전통적 의미의 건축이나 새로운 건축물들을 시도하는 건축가들은 여전히 있겠지만, 20세기 초 르 꼬르비지에가 말했던 "살기 위한 기계로서의 주거"의 건축은 이제 시작이라고 봐야 한다. 이 건축은 우리에게 우리가 건축이라고 불러왔던, 또는 건축을 평가해왔던 기존의 가치체계로는 분류되지 않는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보여줄 것이다. 거기에서 우리는 건축과 과학기술의 관계를 다시금 봐야 할 것이다.

저작권자 2004-02-0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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