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과학기술부와 한국과학창의재단은 이공계 출신으로 각 분야에서 뛰어난 업적을 이뤄 청소년들에게 이공계 진로에 대한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2008년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에 서울대학교 전기공학부 박영준(56) 교수 등 7명을 선정했다고 9일 밝혔다.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은 청소년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과 흥미를 높여 이공계 진출을 촉진하고 국민에게 과학기술에 대한 긍정적 미래상을 확립하기 위해 지난 2002년부터 시행됐으며 올해까지 모두 65명이 선정됐다. 사이언스타임즈는 각 수상자에 대한 인터뷰를 진행했다. 네 번째로 사회문화 부문 수상자 이소연 박사에게 소감과 앞으로의 각오 등을 들어봤다.
우주인 선발 과정에서부터 지구로의 귀환까지는 한 편의 영화였다. ‘1만8천 대 1’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쟁률은 차치하고 그 과정에서 보여줬던 갖가지 에피소드는 3부작으로 엮어내도 충분할 만하다. NASA의 여성 우주인 페기 윗슨을 가장 존경한다는 한국 최초의 우주인 이소연 박사(한국항공우주연구원 선임연구원). 그를 ‘2008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시상식이 열린 11일 63빌딩에서 만났다.
“‘닮고 싶다’는 말을 들으니 우연히 본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했던 말이 기억납니다. 내가 누군가를 닮고 싶어서 ‘열심히 노력하면’ 그러한 모습을 보고 또 다른 누군가가 나를 닮고 싶어한다는 뜻이었습니다. 최선을 다하는 모습을 닮고 싶어한다는 것이죠.”
이소연 박사는 올 한 해 ‘KAIST 특별상’, ‘제헌절 기념 국회의장상’, ‘제6회 한국여성지도자상’, ‘제27회 세종문화상 특별상’을 수상했다. 각종 인터뷰에서 여러 번 수상 소감을 말했을 터인데도 그는 성실히 이번 ‘2008 닮고 싶고 되고 싶은 과학기술인’ 선정과 관련한 소감을 얘기했다.
이 박사는 “저는 우주인이 된 지금도 ‘누군가 나를 닮고 싶어하겠구나’보다 ‘내가 누군가를 닮고 싶어한다’는 생각을 많이 한다”면서 “나를 닮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많아지면 그들을 위해, 내가 누군가를 닮고 싶어 최선을 다하고 있다는 모습을 보여줘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고 말했다. 이번 선정은 청소년들에게 귀감이 된다는 점에서 의미가 남다르다. 이 때문인지 이 박사는 무섭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다고 했다. 상이라기보다는 일종의 직책 같다는 것.
여성, 대한민국인, 과학기술인 그리고 이소연
공인으로서 가장 염두에 두고 있는 태도 혹은 자세가 무엇이냐고 묻자 이소연 박사는 “제가 무얼하든 그 모습은 대한민국 여성을 대표한다는 인식을 했다”면서 “이 상황에서 포기하면 개인 이소연이 포기한다는 것이 아니라 ‘여자’가 포기한다는 인상을 줄 것 같았다”고 솔직한 심정을 내비쳤다.
또한 그는 “러시아 훈련 과정 중 제가 잘 못하면 ‘대한민국’ 사람은 원래 저렇구나 라는 인상을 줄까봐 더 열심히 했다”며 “더 나아가 강연하다 잘못하면 ‘과학기술인’이 원래 그렇지 라는 인상을 줄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고 말했다.
‘공인’이라는 인식은 본인을 단련시켜주는 채찍이었다. 좀 더 열심히, 좀 더 바르게 할 수 있도록 해주는 원동력이었다. 그래서 이 박사는 참 감사하다고 전한다. 그는 “학창 시절 기계공학과에 여학생이 별로 없어서 잘 하거나 잘 못하는 게 두드러졌다”며 “지금 돌아보면 저를 발전시킨 한 요인이 된 것 같다”고 밝혔다.
“과학기술이 발전하기 위해서는 한 사람이 한 사람이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휴대폰은 인공위성 덕분에 사용할 수 있다는 사실, 엘리베이터가 과거의 수십 년 동안 죽고 다치며 연구한 결과라는 것, 아스팔트를 깔기 위해 하루에 몇 대의 자동차가 지나가는지 등을 계산하고 연구하는 사람이 있다는 점, 60층짜리 건물이 바람에 흔들리지 않게 하기 위해 연구하고 건물을 세운다는 것 등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일반 국민들의 과학에 대한 이해 제고와 과학마인드 확산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소연 박사는 이같이 답했다. 대국민 과학문화 확산을 위해 왕성히 활동하는 경험으로부터 나오는 대답이었다.
과학기술의 발전 위해 ‘붉은악마’ 필요더욱이 그는 “과학은 과학자만 하는 게 아니라는 인식이 가장 우선돼야 한다”면서 “우리나라가 로켓을 쏘기 위해서는 로켓 관련 박사뿐만 아니라 일반인들의 힘도 필요한 것”이라고 말했다. 과학기술 강국이 되기 위해선 연구소 안의 과학자뿐이 아니라 일반 대중의 역할도 요구된다는 뜻이다.
이소연 박사는 월드컵 4강 신화를 예로 들었다. “2002년 월드컵 때 우리나라가 4강에 올라갈 수 있었던 건 국민들의 힘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과학기술자가 11명의 축구선수라면 이들을 응원할 수 있는 ‘붉은악마’가 필요한 것입니다.”
9월 한국과학창의재단의 출범과 관련, 학생들이 창의력를 높이기 위해 필요한 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는 질문에 이소연 박사는 “카메라 세워 놓고, 높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자유로운 모습을 보이라고 하면 좋은 포즈가 나올 수 없다”며 “창의력을 키우자고 한다고 해서 창의력이 길러지는 건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실수해도 괜찮은 분위기를 조성하고, 틀려도 괜찮으니까 몇 번 더 하라고 하면서 편한 분위기를 만들어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개인의 창의력을 움츠러들게 만드는 사회적 분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지 물었다. 이에 대한 답변 역시 비슷하다. “실수를 용서하고 열심히 하면 격려를 해줘야 하는 겁니다. 내가 다른 시도를 했을 때도 나를 믿어줄 것이라는 사회적 분위기가 선행돼야 합니다. 실수해서 큰일난다고 하면 욕을 안 먹기 위해 매뉴얼대로 똑같이 할 수밖에 없습니다. 사회 분위기가 최소한 욕은 먹지 말자는 분위기로 흘러가면 창의성은 힘듭니다.”
이소연 박사는 “우주기술에서 2바이트, 5바이트짜리를 쓰는 건 사람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에 쉽게 바꾸지 않는 것”이라며 “그러나 자유로운 상상력은 사람 죽는 일도 아닌데 너무나 변화에 대해 두려워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두려움은 그 개인이 겁쟁이여서가 아니라 모든 사람이 칼과 총을 들고 지켜보고 있기 때문에 겁을 먹을 수밖에 없다.
창의성에 대한 개념정의도 사회적 분위기를 바꾸는 차원과 연결된다. 이소연 박사에게 창의성이란 ‘자유로움’이다. 부연하면 “남이 나를 믿는 믿음과 그로 인해 생기는 나의 자유로움”이다. 서울대 박영준 교수가 창의성에 대해 언급했던 ‘문제의 발견’(사이언스타임즈 12월 12일자 <인재는 새로운 문제를 발견할 수 있어야> 참조)이라는 것도 내가 자유롭지 못하면 불가능하다는 뜻이다.
그는 자신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문제를 찾는 거 자체도 나를 믿어주는 신뢰와 그 속에서 내가 자유로움을 느낄 때 가능한 것입니다. 억압된 상황에서는 문제를 보며 문제인지도 모를 수 있습니다.”
“미래의 우주인, 좀 더 대담해질 것”한편 과학자로서 좀 더 대중적인 접근을 위해 ‘무릎팍도사’ 같은 연예프로그램에서 출연 제의가 오면 나갈 의향이 있는지 물었다. 대답은 ‘예스’. 이소연 박사는 개인적으로 “어떤 프로그램이든지 우주인으로서의 삶, 과학기술인으로서의 삶이 필요한 곳이라면 어디든지 나갈 의향이 있다”면서 “저 말고도 어마어마한 발견을 할 과학기술인이 많다는 것을 알리고 싶기 때문에 기꺼이 출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손을 뻗으면 손쉽게 닿을 수 있는 바로 그곳에 ‘과학’이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기 때문이다. 과학은 일상 모든 곳에 존재한다. 언제든지, 어디든지 가서 이러한 얘기를 해주고 싶다는 소망이다.
그는 개인적으로 만나본 적은 없지만 조경철 박사를 존경한다. “학계에서는 연예프로그램에 나간다는 것에 대해 너무 가볍다고 할지 모르지만 UFO나 천문학이 무엇이라는 것 등에 대해서 많은 사람들이 알게 됐습니다.”
마지막으로 미래의 ‘우주인’을 꿈꾸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게 뭔지 묻자 “좀 더 대담해질 것”을 주문했다. 이소연 박사는 “내가 박사과정에 들어간 것도 스스로 선택한 것이었기 때문에 정말 열심히 할 수밖에 없었다”며 “진정 하고 싶고 도전하고 싶다면 당장 내일을 기약하지 말고 10년 후 모습을 당당하게 어른들에게 보여줄 수 있도록 노력해보자”고 말했다. 인터뷰 내내 우주개발과 과학문화의 확산이 필요한 이유를 당당하게 말하는 이소연 박사를 보면서 우주의 기운이 아직도 ‘그녀’를 감싸고 있다는 인상이 들었다.
- 김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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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8-12-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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