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화론의 아버지와 잊혀진 ‘흙수저’ 천재

[기상천외한 과학자들의 대결] (29) 찰스 다윈과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

‘진화론’하면 누가 생각날까. 흔히 진화론의 아버지라 불리는 찰스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을 떠올릴 것이다. 그는 저서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으로 전설적인 과학자 반열에 올랐다.

하지만 진화론이 온전히 찰스 다윈의 업적은 아니다. 찰스 다윈과 함께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설을 밝힌 과학자가 있기 때문이다. 그는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다. 월리스는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 개념을 제시한 천재 진화론자였다.

진화론의 아버지, 찰스 다윈

인류 생명의 비밀을 밝히고자 한 이 진화론자의 이름은 너무나 유명하다. 찰스 다윈, 그는 근대 과학 역사상 가장 중요한 학설 중 하나인 진화론을 창시했다. 다윈은 생명의 근원이 어디에서 오는지를 연구했다. 그는 생물의 모든 종이 공통의 조상에서 이어졌다고 판단했다.

진화론의 아버지로 불리는 찰스 로버트 다윈(Charles Robert Darwin, 1809~1882) ⓒ 위키미디어

사실 진화론은 다윈 이전에도 계속 주장되어 왔다. 1830년대 초 지질학자인 찰스 라이엘은 별들이 진화해왔다고 주장했고 찰스 다윈의 조부인 에라스뮈스 다윈도 지구는 인간이 나타나기 전부터 존재해왔고 동물들이 진화했을 것이라는 주장을 펼쳐왔다. 경제학자 토머스 맬서스의 이론도 진화론을 만드는 데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하지만 이들의 주장에는 실증적 증거가 없었다. 그러다 다윈이 비글호 항해를 통해 많은 곳을 탐사한 후 저술한 ‘종의 기원’을 통해 동식물들이 수백만 년을 걸쳐 진화해왔다는 것을 입증함으로써 사회에 큰 파장을 불러온다. 다윈의 진화론이 인류에 미친 영향력은 엄청나다. 진화론은 유전학으로 이어져 오면서 인간의 기원을 밝히는 데 커다란 공헌을 한다. 사회적으로 끼친 영향 또한 컸다.

1959년 발행된 ‘종의 기원’ 초판본. ⓒ 위키미디어

다윈이 주장한 진화론의 핵심은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다. 자연선택이란 인위적인 선택인 교배와 비슷한 현상이 생존경쟁을 거쳐 일어난다는 것이다. 이 내용은 다윈과 영국의 생물학자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가 쓴 공동 논문의 핵심 내용이다.

월리스는 다윈과 함께 자연선택이라는 진화론을 주장했지만 그의 이름은 다윈에 가려졌다. 인류 사회에 대변혁을 가져온 진화론의 공동저자였지만 월리스에게는 다윈과 같은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지지 않았다.

무명의 천재 진화론자, 앨프리드 윌리스

최근 월리스의 업적이 재조명되고 있다. 그의 아이디어를 다윈이 얼마나 참조해 종의 기원을 썼는지 알기 위해서다. 다윈이 자연선택 개념을 발견하기 전에 월리스가 먼저 발견했는지 혹은 둘이 동시에 발견했는지 여부는 여전히 논쟁거리다.

홀로 오지를 누비며 얻은 경험으로 찰스 다윈과 같은 진화론을 동시에 생각해낸 흙수저 천재, 앨프레드 러셀 월리스(Alfred Russel Wallace, 1823~1913) ⓒ 김은영/ ScienceTimes

하지만 중요한 것은 월리스는 자연선택의 개념을 누구보다 명확하게 이해하고 이를 다윈에게 편지로 설파했다는 사실이다. 1858년 당시 다윈은 무명 생물학자에게서 온 편지에 넋을 잃었다. 그 편지에는 자신이 20년간 집대성해 온 진화론의 핵심 개념이 담겨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미 당대 최고의 엘리트이자 저명한 학자였던 타고난 ‘금수저’ 다윈과는 달리 월리스는 정규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동식물 채집 등으로 생계를 이어가던 무명의 ‘흙수저’ 생물학자였다. 하지만 그는 타고난 재능과 수많은 경험을 통해 진화론을 정립해나갈 수 있었다.

크로에수스비단제비나비(Ornithoptera croesus). 멸종위기종으로 황금빛 날개가 아름다운 나비다. 월리스가 발견했다고 하여 ‘월리스의 황금버드윙(Wallace’s golden birdwing Butterfly)’이라고도 불린다. ⓒ 위키미디어

월리스는 다윈이 다년간의 비글호 항해를 통해 얻은 경험으로 진화론을 정립해나간 것처럼 1854년부터 8년간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싱가포르 등을 여행하며 개구리, 나비, 극락조, 나무타기 캥거루 등 다양한 종의 변화를 직접 체험했다. 이때 그가 얻은 경험은 진화론의 핵심 개념인 자연선택의 실질적인 근거가 됐다.

그는 동식물들이 환경에 적응해 진화하고 있다는 것을 직접 체험을 통해 알 수 있었다. 크로에수스비단제비나비(Ornithoptera croesus)는 월리스가 발견한 자연선택을 따른 대표적인 사례다. 그는 이 나비들이 자연환경에 따라 살아남기 위해 변이가 이루어졌다는 것을 알았다.

월리스는 그동안 수집한 진화론에 관련한 연구 결과를 다윈에게 편지를 보냈다. 다윈은 이를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여 세기의 명저 ‘종의 기원(On the Origin of Species)’을 완성해 세상에 발표할 수 있었다.

비록 다윈이 진화론의 아버지로 추앙되는 동안 월리스의 이름은 2인자로 잊혀졌지만 이 두 천재의 만남으로 인해 진화론이라는 과학의 한 부분이 완성됐고 이를 통해 인류는 생명의 기원에 대해 고찰하는 소중한 기회를 얻게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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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체 댓글 (2)

  • 한얼 2021년 4월 13일12:43 오전

    다윈의 진화론이 있기 전에 윌리스의 연구가 진화론에 도움이 되었네요. 윌리스라는 이름은 생소한데 8년간 여행하며 동물의 다양한 종의 변화를 연구하지 않았더라면, 그리고 다윈이 윌리스를 몰랐었다면 진화론은 발전할 수 없었겠네요

  • 둥글레 2021년 4월 18일2:48 오후

    1959년 발행된 ‘종의 기원’ 초판본 >> 발행년도에 오타가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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