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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김병희 객원기자
2019-04-04

인류는 어떻게 기술을 발전시켰나 원리 몰라도 누적된 문화 적응으로 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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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6만년 전부터 인류는 다른 종들보다 더욱 광범위한 주거지와 활동 영역을 확보하면서 전세계로 퍼져 나갔다.

이는 색다른 환경에서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특수한 생활도구들을 신속하게 진화시킬 수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 북극 에스키모들이 사용하는 카약이나, 아마존강에서 물고기를 잡기 위해 옆으로 둑을 내는 방법 등이 그런 예의 하나다.

인간은 어떻게 그런 일을 해낼 수 있었을까? 대부분의 학자들은 우리의 지능에 초점을 맞춘다. 사람은 다른 동물들보다 인과적 추론을 더 잘 하고, 이로 인해 유용한 도구들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과학저널 ‘네이처 인간행동’(Nature Human Behaviour)에 발표된 논문에서 미국 애리조나주립대(ASU) 인간 기원 연구소 로버트 보이드(Robert Boyd ) 교수와 이 연구소  맥심 데렉스(Maxime Derex) 박사팀은 사람들이 스스로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 하더라도 문화적 진화가 새로운 적응 지식을 창출할 수 있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카약 제작이나 고기잡이 둑을 만드는 일은 현대과학의 도움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다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인이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기술들은 세대를 걸친 문화 적응 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사진은 카약을 탄 이누이트 바다표범 사냥꾼. ⓒ Wikimedia
카약 제작이나 고기잡이 둑을 만드는 일은 현대과학의 도움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다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개인이 원리를 쉽게 이해할 수 없는 이런 기술들은 세대를 걸친 문화 적응 축적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사진은 카약을 탄 이누이트 바다표범 사냥꾼. ⓒ Wikimedia

원리 이해 못해도 적응 지식 창출

전통 사회에서도 인간의 기술은 가끔 너무 복잡해서 인간의 독창성만으로 만들어진 것이 아닐 것이라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문화적 틈새 가설에 따르면, 복잡한 기술은 문화 전파로 연결되는 여러 세대에 걸쳐 때로는 잘 이해되지 않는 수많은 작은 개선점들이 축적돼 만들어진다는 것이다.

세대를 뛰어넘는 이런 유익한 변화들은 개인의 원리 이해와 상관없이 문화적 적응을 창출할 수 있다는 얘기다. 연구팀은 이 가설을 테스트하기 위해 실험실에서 여러 세대에 걸친 개선점들을 시뮬레이션해 문화 진화를 연구했다.

실험의 첫 부분에서 연구팀은 참가자들에게 기울어진 경사로에 놓여있는 바큇살을 네 개 가진 바퀴를 보여주었다. 각각의 바큇살에는 바퀴의 중심쪽으로 움직이거나 멀어질 수 있는 무게추를 달았다.

바퀴가 경사로를 가장 빨리 굴러 내려가도록 무게추를 조정하는 실험. CREDIT: Maxime Derex
바퀴가 경사로를 가장 빨리 굴러 내려가도록 무게추를 조정하는 실험. ⓒ Maxime Derex

경사로 바퀴 굴림 실험으로 확인

과업은 바퀴가 기울어진 바닥으로 최대한 빨리 굴러갈 수 있도록 무게추의 위치를 조정하는 일이었다. 참가자들은 14개 그룹 ‘전송 체인’에 배치되고, 각 체인에는 5명이 할당되었다.

각 체인에서 첫 번째 참가자는 바퀴의 경사로 하강 속도를 높이기 위해 무게추로 몇 가지 시도를 했다. 두 번째에서부터 다섯 번째까지의 참가자는 앞서의 참가자가 무게추를 얼마나 조정했는지 확인하고 몇 가지 더 개선을 위한 시도를 했다.

14개 그룹의 참가자들이 수행한 실험 시도를 평균적으로 살펴봤을 때 결과는 더 좋아졌고, 마지막 그룹에 이르러 바퀴는 최대한 빠르게 내려갔다.

그러나 이런 결과는 바퀴 가속원리에 대한 참가자들의 이해가 증진되지 않은 채 일어난 것으로 밝혀졌다. 실험 후 각 참가자들에게 인과관계를 얼마나 잘 이해하는지 테스트하기 위해 무게 추 위치가 서로 다른 두 바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빠른가를 질문해 보았다.

그 결과 인과관계에 대한 이해는 개선되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참가자들은 과제를 잘 수행했다. 첫 번째 참가자의 응답은 무작위 선택보다 약간 나았고, 다섯 번째 참가자는 평균적으로 첫 번째 참가자보다 이해 정도가 더 낫지는 않았다.

바퀴가 경사로를 내려가는 모습. 실험참가자들은 바퀴가 빨리 굴러가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과업은 이뤄냈다.  CREDIT: Maxime Derex
바퀴가 경사로를 내려가는 모습. 실험참가자들은 바퀴가 빨리 굴러가는 원리를 이해하지 못했는데도 과업을 이뤄냈다. ⓒ Maxime Derex

두 번째 실험에서 참가자들은 그들이 왜 무게추를 그 위치에 놓았는지에 대한 설명을 써냈다. 그러나 여전히 원리에 대한 이해가 체계적으로 향상되지는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일부 참가자들은 부분적인 설명을 했지만, 모든 인과관계를 얘기하지는 못 했다.

현재 영국 엑시터대 마리 퀴리 펠로우로 있는 맥심 데렉스 박사는 “대부분의 참가자는 바퀴를 이용한 물리적 시스템이 상대적으로 단순한데도 불구하고 부정확하거나 불완전한 이론을 만들어냈다”고 말하고, “이로 인해 후속 실험이 제한되고 참가자들이 더 효율적인 해법을 발견하는데 장애가 되었다”고 설명했다.

최상의 적응을 위한 누적된 문화 진화

이번 실험은 문자를 사용하기 이전의 단순한 사회에서도 문화 진화로 인해 어떻게 매우 복잡한 도구들이 창출될 수 있는가를 설명하는데 도움을 준다.

카약이나 고기잡이 둑을 만드는 일은 현대과학의 도움으로도 이해하기 어려운 복잡한 다단계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기술들을 포함한 수많은 다른 기술들이 도서관이나 컴퓨터, 실험실이 없는 작은 마을에 사는 옛 사람들에 의해 고안되었다.

로버트 보이드 교수는 “지능은 물론 인간의 적응에 중요한 역할을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말했다.

그는 “서로에게서 배울 수 있는 인간의 독창적 능력이 최상의 적응을 위한 누적된 문화 진화를 가능케 한다”며, “문화 적응에 따라 이뤄진 기술의 원리는 개인에게 부분적으로만 이해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강력한 도구가 인류를 환경에 적응시키고 지구 전체로 퍼져 나가게 했다”고 강조했다.

김병희 객원기자
hanbit7@gmail.com
저작권자 2019-04-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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