앞으로는 길을 걷다가 은행 열매에서 나는 악취로 코를 막는다거나, 신발이 냄새나는 열매를 밟을까봐 조심조심 걸을 필요는 없을 것으로 보인다. 조만간 가로수 대부분이 열매가 열리지 않는 은행나무의 수나무로 대체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은 수년 전 개발했던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을 최근 민간 기업 한 곳에 기술이전 했다고 밝히면서, 이번 기술이전을 계기로 급증하고 있는 지방자치단체의 은행나무 암·수구별 요청에 보다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고 기대했다.
국내 최초로 은행나무 조기 성감별 기술 개발
은행나무는 단풍하면 은행을 떠올릴 정도로 아름다운 외관을 갖고 있고, 도심의 열악한 환경에서도 잘 자랄 정도로 생명력이 강하다. 따라서 가로수로서의 인기가 높기 때문에 전국에 있는 약 330만 그루의 가로수 중 가장 많은 30% 정도를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장점만 있는 것은 아니다. 가을철만 되면 은행 열매가 도로에 떨어져 악취를 발생시키거나, 거리를 지저분하게 만들어 민원의 대상이 되는 등 여러 가지 단점도 갖고 있다.
은행나무의 가장 큰 특징을 꼽자면 암나무와 수나무가 구별되는 개체라는 점으로서, 열매는 암나무에서만 열린다. 따라서 수나무로만 가로수를 심으면 은행나무로 인한 민원 문제는 말끔히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 산림과학원 측의 판단이다.
문제는 은행나무가 어렸을 때 암나무와 수나무를 구별하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꽃이나 열매를 확인하기 전에는 암·수를 구별하기 어려운데,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리는 데까지 최소 15년에서 길게는 30년 가까이 걸리기 때문이다.
그러다보니 지금까지는 암·수 구분 없이 가로수로 심어졌었고, 그 결과 가을만 되면 암나무에서 떨어진 은행열매로 인해 악취 및 거리오염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국립산림과학원은 2000년대 초반부터 연구를 시작했고, 결국 지난 2011년에 국내 최초로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을 개발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술을 적용하면 손톱 크기만 한 은행나무 잎으로도 DNA 분석이 가능하기 때문에, 1년생 은행나무에서도 암나무와 수나무를 빠르게 구별할 수 있다는 것이 산림과학원 측의 설명이다.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은 2014년에 국내 특허 등록이 완료됐으며, 2015년에는 중국에서도 국제 특허로 등록됐다. 이에 대해 국립산림과학원의 관계자는 “은행의 최대 생산국이자 은행나무 원산지인 중국보다 더 빠르고 안정적인 기술을 선보이면서 향후 조기 감별 시장을 선점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했다”라고 평가했다.
선별 재배를 통해 은행나무 생산 효율도 향상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의 핵심은 분자유전학 기술 중 하나인 DNA의 표지인자인 ‘마커(marker)’내의 DNA 밴드(band)를 활용하는 것이다.
국립산림과학원의 관계자는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법을 적용하면 암나무는 한 개의 DNA 밴드가 나타나고, 수나무는 두 개의 DNA 밴드가 나타나 명확히 식별 된다”라고 전하며 “분석에 필요한 DNA는 주로 은행나무 잎에서 추출되므로 어린나무에도 적용이 가능하다”라고 강조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의 보고서에 따르면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은 가로수 또는 조경수의 후보 나무로 수나무만을 선별·식재하여 은행 열매의 악취 및 오염 등으로 인한 민원을 사전에 예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가로수 또는 은행 열매 생산 등 이용 목적에 따라 암나무와 수나무를 선별하여 재배함으로써 은행나무 생산 효율도 향상시킬 수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다음은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의 민간기업 이전 실무를 담당한 국립산림과학원 산림생명정보연구과의 이제완 연구사와 나눈 일문일답이다.
-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의 개발 시기가 2011년인데 비해 민간 기업에 대한 기술이전은 7년이 지난 올해부터 시작됐다.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난 뒤에 기술이전을 실시하게 된 배경이 궁금하다
은행나무의 성감별 분석기술 시장이 일정 규모를 이룰 때까지 기다렸다고 보면 된다. 기술이 개발됐던 2011년 당시만 해도 분석을 의뢰하는 요청이 많지 않았다. 그런데 2016년을 기점으로 지방자치단체의 은행나무 성감별 요청 물량이 급증함에 따라 기술 이용을 확대하기 위하여 기술이전을 추진하게 된 것이다.
- 기술이전과 관련한 성과 및 향후 계획은?
지난 2월에 처음으로 (주)한국유전자정보연구원에 기술이전을 완료했다. 하지만 기술을 독점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일정한 자격요건이 되는 기업이 요청할 경우 기술이전을 추가할 예정이다.
- 가로수에는 은행나무의 수나무만 심고, 암나무는 번식을 위해 소량만 키우는 등 개체수를 인위적으로 조절할 때 혹시 생태계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아닌지?
은행나무는 원산지가 중국이다. 따라서 소나무나 전나무처럼 산이나 들에서 야생적으로 자라는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조경이란 목적을 위해 들여온 수종(樹種)이다. 애초부터 생태계와는 상관없이 특정 목적을 위해 수입했기 때문에 생태계 교란 등의 문제에 대해서는 염려할 필요가 없다.
- 해외 사례에 대해 간략히 언급해 달라
중국은 산림과학원이 연구를 하기 전에 이미 비슷한 연구를 시작했고, 유사한 성과도 우리보다 먼저 거뒀다. 그러나 우리 기술보다 분석 속도 및 정확도면에서 한참 뒤떨어지기 때문에 은행나무 성감별 DNA 분석기술은 우리나라가 최고라 할 수 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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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03-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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