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의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국민이 평균수명인 81세까지 생존할 경우, 암에 걸릴 확률은 37.3퍼센트(%)인 것으로 나타났다. 평균 수명이 77세인 남성은 37.5퍼센트로서 5명 중 2명 꼴로 암에 걸리고, 평균 수명 84세인 여성의 경우는 34.9퍼센트인 3명 중 1명 정도가 일생에 한 번은 암과 마주치는 것으로 드러났다.
이처럼 국내 사망원인의 1위를 차지하고 있는 암은 2000년부터 지속적으로 증가하던 발생률이 다소 꺽이기는 했지만, 여전히 사람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다. 따라서 금연이나 스트레스 해소 등 암을 예방하기 위한 생활습관이 건강관리의 최대 관심사로 떠오르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지금까지 암의 원인이라 생각했던 담배나 잘못된 생활습관 등의 영향이 실제로는 미미한 반면에, 그냥 무작위로 발생하는 경우가 훨씬 더 많은 영향을 미친다는 연구결과가 최근 발표되어 전 세계 의료계의 비상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암 발생의 65퍼센트는 무작위로 발생
의료전문 매체인 메디컬익스프레스(medicalxpress)는 인체의 모든 장기와 조직에서 생기는 암의 3분지 2가 불운(bad luck), 즉 무작위 적으로 발생한 것이라고 보도하면서, 몸 속 줄기세포가 정상적으로 분열할 때 발생하는 유전자 돌연변이가 발암의 가장 큰 원인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관련 링크)
암이 생기는 원인을 크게 분류한다면 환경적인 요인과 유전적인 요인, 그리고 무작위적인 돌연변이(random mutation)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이 중에서 담배가 폐암의 위험도를 크게 높인다는 환경적 요인과 어느 특정한 유전자를 가지고 있으면 그와 관련된 암이 발생할 확률이 높다는 유전적 요인은 이미 통계적으로 나타나 있는 사실이다.
그러나 무작위적인 돌연변이가 암의 중요한 인자라는 사실은 지금까지 제대로 밝혀지지 않았었다. 미 존스홉킨스대의 연구진은 이런 사실을 입증하기 위해 31개의 인체조직을 연구하다가, 세포의 분화율이 높을수록 암 발생률이 증가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연구진은 인체조직에서 일어나는 줄기세포의 분열횟수와 암 발생률을 비교·분석한 결과, 31가지의 암 중 두경부암과 식도암, 그리고 흑색종 등 총 22종의 암이 세포분열 과정에서 생긴 돌연변이로 인해 발생한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를 바꿔 말하면 9개 조직에서 발생하는 암은 다른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로 나타나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예방이 가능하지만, 나머지 22개 조직에서 걸릴 수 있는 암은 무작위적으로 발생하기 때문에 예방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같은 연구결과에 대해 이번 연구의 책임자인 존스홉킨스대의 버트 보겔스타인(Bert Vogelstein) 교수는 “사람들은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규칙적으로 운동을 하며, 독성이 있는 물질을 피하면 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여겼고, 또한 좋은 유전자를 가지고 있어도 암에 걸리지 않을 것이라 생각했다”고 밝히며 “그러나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암의 발병과 관련해서는 그 어떤 것도 안심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라고 밝혔다.
환경적 요인도 분명 있는 만큼 예방에 더욱 힘써야
존스홉킨스대 연구진이 발표한 연구결과의 기본 메커니즘을 살펴보면 복잡한 것 같으면서도 의외로 간단명료하다. 낡거나 망가진 세포를 대체하기 위해 줄기세포가 새로운 세포를 만드는 과정에서 무작위로 돌연변이를 일으킬 수 있고, 이런 무작위 돌연변이가 쌓여 암 세포로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연구진은 이런 메커니즘을 방대한 인체 조직별 암 위험과 줄기세포 관련 자료를 사용하여 계산하고, 분석하면서 구체적인 수치를 이끌어 냈다. 이 같은 성과를 거두기까지는 바이오 수학자인 크리스티앙 토마세티(Cristian Tomasetti) 박사의 역할이 컸다.
이번 연구의 공동 책임자이기도 한 토마세티 박사는 “세포분열 횟수가 많은 신체 조직일수록 암 위험도 높다는 상관관계가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파악되었다”라고 전하며 “암이 생길 위험성은 세포 조직의 항상성을 유지하기 위해서 일어나는 정상적인 자기 복제 세포의 총 분열 숫자인 0.81과 강한 상관관계가 있음을 보여주었다”고 덧붙였다.
상관관계가 0.81이라는 것은, 다른 조직들 사이에서 암이 발생할 위험성의 65퍼센트 정도가 이들 세포 조직들에서 일어나는 줄기 세포 분열의 총 숫자로 설명될 수 있다는 점을 의미한다.
이와 관련하여 토마세티 박사는 “대장암은 줄기 세포 분열과 깊은 관련이 있기 때문에 암 발생 비율이 높지만, 뼈에 발생하는 골육종(osteosarcomas)과 같은 암은 줄기 세포 분열과는 상관관계가 없기 때문에 암 발병률이 낮다는 것을 의미한다”라고 설명했다.
암의 발병 원인이 이번 연구결과를 통해 보다 분명하게 규명된 것은 다행이지만, 일각에서는 연구결과를 자칫 오해할 수도 있다는 신중한 목소리도 흘러 나오고 있다. 마치 경품을 추첨하듯이 암 발병이 무작위로 발생한다면, 건강관리는 쓸모없는 게 아니냐는 식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대다수 암 전문가들은 이번에 밝혀진 연구결과를 인정한다 하더라도, 여전히 암 위험의 많은 부분은 환경과 유전 요인으로 설명될 수 있다라는 견해를 유지하고 있다. 그들은 이번 연구결과가 기존의 암에 대한 연구들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건강관리와 암 예방을 위한 노력은 여전히 필요하다는 입장이다.
물론 의료계도 이번 연구결과가 앞으로 암 치료에 있어 어떤 파장을 몰고 올지 예의주시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면서 앞으로는 예방보다도 조기검진의 중요성이 훨씬 더 부각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불운에 의해 암이 발병할 수 있기 때문에, 암세포를 치료할 수 있는 시기에 조기 발견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더욱 힘을 얻을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토마세티 박사도 “폐암을 유발하는 흡연이나 피부암을 발생시키는 자외선 등 일부 암의 확실한 위험 인자를 피함으로써 암의 위험도를 줄일 수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않는다”라고 전제하면서도 “나머지 무작위 적으로 발생하는 암까지 고려한다면 예방보다는 조기 발견과 조기 수술적 요법을 시행하는 것이 더 유리하다”라고 강조했다.
한편 암 전문의들로 구성된 학회의 관계자는 “이번 연구가 암의 원인 중 무작위 돌연변이에 의한 위험도를 산술적으로 분석했다는 점에서는 의의가 있지만, 과연 정말 그 결과가 정확한지는 앞으로 검증을 통해 확인해야 할 것”이라고 밝히며 “특히 유방암이나 전립선암 등 일부 암의 경우는 아직 발병 매커니즘이 규명되지 않았다는 점도 감안해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이러한 의료계의 반응에 대해 보겔스타인 박사는 “지금으로서는 평소에 건강 검진을 꾸준히 하든지, 아니면 증상이 있을 때 빨리 병원에 가서 진료를 받는 것이 중요하다는 말 외에는 별로 할 말이 없다”라고 말하며 “수술적 치료가 가능한 시기에 빨리 암을 발견해서 조기에 치료를 하는 것이 최선책이라 할 수 있다”라고 덧붙였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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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1-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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