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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옛날, 변변한 사냥도구나 농사도구 하나 없던 때에 사람들은 무엇을 먹고 살았을까? 도구가 없었던 그 때에 인간이 맨손으로 동물을 사냥하기란 쉽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은 가까운 산과 들에서 나무열매나 풀뿌리 등을 채집하고 식물들이 시드는 겨울에는 강가나 바닷가에서 조개를 주로 먹었을 것이라고 학자들은 추측한다. 선사시대 유적 발굴 현장에서 심심치 않게 조개껍데기들이 잔뜩 묻혀 있는 조개무지가 발견되는 것을 보아도 선조들이 조개를 즐겨 먹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조개를 먹고 나면 당연히 껍데기가 남는다. 선조들은 이것들을 한곳에 모아 버렸기에 오늘날 조개무지로 발견되곤 하지만 그들은 이런 껍데기를 그냥 버리지만은 않았던 것 같다. 그들은 조개껍데기를 하나의 ‘도구’로 이용하였다.
곡식의 경작과 불의 발견으로 선조들은 음식을 조리하여 먹을 수 있게 되었다. 불로 음식을 조리하여 먹던 그들은 음식을 만들거나 먹으면서 뜨거운 음식에 종종 손을 데었다. 지금도 화상 환자가 제일 치료하기 어렵다고 할 만큼 무서운 상처이니 살을 데는 것은 옛 사람들에게도 큰 문제였을 것이다. 그들에게는 손 대신 뜨거운 음식을 조리하고 먹을 때 사용할 무언가가 필요했다. 이 때 그들이 생각해 낸 것이 조개껍데기였다. 그것은 속의 알맹이를 먹고 나면 꼭 생겼기에 주변에서 구하기가 쉬웠다. 게다가 모양도 안은 오목하고 가장자리가 비교적 단단하면서도 두껍지 않아서 음식을 휘젓고 뜨기에 안성맞춤이었다. 그들은 조개껍데기로 음식을 조리하고 떠먹기 시작했다.
조개껍데기로 뜨거운 음식을 만들고 섭취하던 선조들은 또 한 가지 불편한 점을 느꼈다. 조개껍데기 덕분에 손 전체가 뜨거운 음식에 닿게 하는 것은 막을 수 있었으나, 그 껍데기를 집는 손가락은 자칫하면 뜨거운 음식에 닿아 다치곤 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고민하기 시작했다. 조개껍데기 같은 형태에 긴 막대가 달려 있으면 될 것 같았다. 선조들은 나무와 동물의 뼈를 다듬고 깎기 시작했다. 조개껍데기 같이 둥글게 움푹 파인 모양에 막대기를 연결한 형태의 도구, 숟가락을 만들기 위해서였다.
많은 학자들은 숟가락이 중국으로부터 우리나라에 전해진 것이라 말한다. 하지만 숟가락은 우리에게 전해진 후로 매일 우리 조상들의 밥상에 오르면서 시대에 따라 그 형태를 달리해 왔다. 그리하여 우리는 지금도 밥을 먹을 때 빠지지 않고 숟가락을 사용한다. 현재에는 숟가락을 전해 주었다는 중국보다 우리나라에서 숟가락이 더욱 보편화되어 쓰이고 있다. 중국과 일본이 ‘젓가락 문화’라고 불리는 반면 우리나라는 ‘숟가락 문화’로 불리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도대체 무엇이 우리나라를 숟가락 문화로 만든 것일까? 어떤 학자는 우리나라가 숟가락 문화를 가지게 된 것이 유교 사상을 숭배하는 ‘숭유주의’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주례』에서 나오는 식사 예절이 숟가락과 젓가락을 사용하는 것으로 그려졌기 때문에 조상들이 숟가락을 젓가락과 함께 주요 취식 도구로 사용하였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에는 필연성이 부족한 것 같다.
사실, 우리 밥상에서 숟가락이 꼭 필요한 이유는 따로 있다. 그것은 우리 조상들의 밥상과 다른 동양 국가들의 전통 밥상을 비교해 보면 쉽게 알 수 있다. 중국에서는 뜨거운 기름에 튀긴 요리가 발달하였고 일본에서는 국 중에 건더기가 없이 국물만 맑게 낸 것을 즐겨 먹었다. 기름에 튀긴 요리를 숟가락으로 먹었다가는 입이 데기 십상이고 건더기가 거의 없는 맑은 국물은 굳이 숟가락으로 먹을 필요 없이 그릇을 들고 마시는 것이 편했다. 결국 중국과 일본의 밥상에서는 점점 숟가락의 입지가 줄어들었고 이제는 거의 젓가락으로만 식사를 하게 되었다.
그러나 우리의 경우에는 국과 찌개류, 즉 국물 음식이 발달했다. 뚝배기와 같은 그릇에 여러 사람이 함께 먹도록 찌개를 끓이고 그와 더불어 뜨끈한 국물의 국이 함께 밥상 위에 놓이는 것이 우리 조상들의 밥상이었다. 일단 국물 요리가 많다는 것은 그 자체로 충분히 숟가락이 우리 조상들의 밥상에 꼭 필요했던 이유를 제공한다. 게다가 찌개 같은 경우는 개인적으로 그릇에 담아 먹지 않고 몇 명이 밥상 가운데에 놓인 그릇의 찌개를 같이 떠먹었기에 일본의 국처럼 그릇을 들고 마실 수도 없었다. 이 대목에서 숟가락은 조상들의 밥상에서 빛을 발했다. 숟가락은 액체를 뜨기 적당할 정도로 술잎(음식을 뜨는 부분)이 움푹 들어가 있고 뜨거운 음식에 직접 손이 닿지 않게 술자루(손잡이 부분)가 있기 때문에 국이 발달한 우리에게 적절하고 필요한 도구였다.
또한 우리는 예부터 멥쌀밥이나 잡곡밥을 많이 먹어왔다. 이들은 찰기가 적어 젓가락으로 먹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밥알들이 서로 잘 붙지 않기 때문에 젓가락으로는 한 번에 적은 양만을 먹을 수 있었다. 이 문제의 해결책도 숟가락이 제시해 주었다. 숟가락의 술잎은 넓고 오목하기 때문에 음식을 올려놓기 좋았다. 숟가락이 있으면 밥이 차지지 않아도 걱정할 일이 없었다. 그냥 숟가락 술잎 위에 밥을 잘 쌓으면 되는 것이었다.
우리 조상들은 숟가락의 손잡이를 잡는 위치에 대해서 신경을 썼다. 그들은 술자루를 적당한 길이로 잡았다. 술잎과 너무 가까이 잡으면 먼 거리의 국물을 떠 나르기 힘들었고 술잎의 끝과 손까지의 거리가 짧아 숟가락을 움직일 수 있는 반경도 줄어들게 되었다. 반대로 술잎과 너무 멀리 떨어져 잡으면 국물을 운반하는 도중에 숟가락이 흔들리게 되어 안정성이 떨어지고 국물을 흘리기 일쑤였다. 수저를 너무 멀게 잡으면 시집을 멀리 간다는 속신까지 있었다니 조상들이 숟가락을 잡는 것 하나에도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조상들은 숟가락을 사용하면서 시대에 맞게 그 형태를 변화시켜 가장 합리적으로 사용하려고 노력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가장 오래된 숟가락은 함경북도 나진의 초도에서 발견된 기원전 6, 7세기경의 것으로 추정되는 골제 숟가락이다. 하지만 술잎의 길이가 11cm, 너비가 5.7cm이며 전체길이가 28cm에 이르고 술잎의 끝이 뭉툭해서 입에 넣었다 뺐다 하기에는 곤란할 정도로 크다. 이것은 차라리 주걱에 가깝다고 볼 수 있는데 숟가락이 생긴 초기에는 음식을 먹는 용도와 조리의 두 가지 용도로 숟가락을 사용했을 것이라 한다.
초기의 숟가락은 시간이 지나 점점 널리 쓰이게 되면서 다양한 형태로 만들어졌고 술잎의 크기도 알맞게 변하였다. 특히, 고려시대에 등장한 숟가락은 술잎이 좁고 가늘게 긴 모양을 하고, 술자루는 술목부터 술자루의 끝인 술총에 이르기까지 완만한 포물선을 그리듯이 휘어진다. 이러한 술자루가 술잎에 각이 지게 접합됨으로써 고려시대의 숟가락은 옆에서 보았을 때 S자 모양을 하고 있다.
술자루의 길이 또한 길어졌다. 이러한 숟가락 모양의 변화는 그릇의 모양과 관련이 있다. 이 당시에는 그릇 속이 깊어 자루가 길어졌고 술자루 부분을 포물선 모양으로 휘게 함으로써 그릇에 숟가락을 걸치기 수월하게 했던 것이다. 이렇듯 조상들은 식기들이 서로 조화를 이루도록 조금씩 그 형태를 변형시키고 그 가운데에서 가장 실용성 있는 것을 찾으려 하였다.
고려시대의 숟가락이 예술적이고 화려한 데에 비해 조선시대의 숟가락은 단순한 형태를 하게 되었고 실용성을 강조한 모양으로 자리 잡았다. 숟가락의 술잎이 넓어지고 둥글어져서 음식물을 전보다 더 안정적으로 뜰 수 있었고 그러면서도 많은 양을 한번에 뜰 수 있게 되었다. 술자루도 곧아져서 직선에 가까운 모습이 되었고 술잎과 술자루 사이의 술목 부분도 휘어지지 않은 모습을 하게 되었다. 술자루가 곧아진 것에 더해 예전보다 술자루의 두께도 두꺼워졌는데 이런 변화는 사람들이 숟가락을 사용하기에 편리하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일어난 것이라고 한다.
옛날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숟가락은 언제나 우리네 밥상에 놓여 있었다. 그러나 숟가락은 우리와 함께해 온 오랜 시간만큼의 관심을 받고 있지는 못한 것 같다. 숟가락 하나로 인해 우리의 식생활 문화가 ‘숟가락 문화’라고 불리게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숟가락에 대한 연구나 탐구는 특정 영역에 한정되어 있고 그마저도 그 양이 매우 적다. 단순해 보이지만 나름의 원리를 담고 있는 숟가락. 앞으로 그것에 숨겨 있는 원리가 더 많이 연구되길 기대해본다.
< 참고자료 >
『숟가락』, 박문기, 정신세계사, 1999.
『식생활과 문화』, 김광호 외, 광문각, 2001.
『음식전쟁 문화전쟁』, 주영하, 사계절출판사, 2000.
『식(食)문화의 뿌리를 찾아서 』, 유애령, 교보문고, 1997.
「동서양 취식도구 문화에 대한 고찰」, 조경숙 외, 한국조리학회지, 2003.
「한국 수저의 음식 문화적 특성과 의의」, 배영동.
- 꿈꾸는 과학 3기 이지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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