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만물의 영장인 이유는 수많은 재난을 겪으면서도 이를 극복하는 방법을 연구하거나, 이를 활용하여 새로운 무엇인가를 창조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번 발생하면 수만 명의 목숨을 앗아가는 지진에 대비하기 위해 건물을 지을 때 적용하는 내진설계(seismic design)가 대표적인 사례라 할 수 있다.
이와 비슷하면서도 조금 다른 사례가 지금 스페인에서 진행되고 있다. 과거 유명했던 다리 붕괴 사고에서 영감을 얻은 스페인의 엔지니어들이, 사고의 원인이었던 소용돌이 현상을 활용하여 친환경 에너지를 만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학기술 전문 매체인 '피스오알'지(phys.org)는 지난 5월 18일자 기사를 통해 1940년대 미국에서 발생했던 타코마(Tacoma) 다리 붕괴 사고의 원인인 ‘공탄성 플러터(aeroelastic flutter)’ 현상을 활용하여 스페인에서 신개념의 청정 발전기가 제작되고 있다고 소개했다. (전문 링크)
바람이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발전기의 원리
타코마 다리는 지난 1940년에 미국 서부의 타코마 해협에 건설되었던 다리로서, 당시로서는 세계에서 세 번째로 길었던 현수교였다. 이 다리는 원래 초속 53m의 강풍에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었으나, 불과 초속 19m의 바람에 무너져 버리면서 수많은 과학자들을 경악하게 만들었다.
당시 촬영된 영상을 보면 타코마 다리의 붕괴 장면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오후까지만 해도 미동도 하지 않던 다리가 갑작스럽게 움직이면서, 시간이 지날수록 겉잡을 수없이 요동을 치다가 끊어져 버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겨우 개통 4개월 밖에 지나지 않았을 때였다.
전문가들의 의견을 종합해 보면 당시 바람이 다리의 얇은 상판에 부딪히며 소용돌이 현상을 초래했고, 여기에서 발생한 진동수가 다리의 고유 진동수와 일치하는 이른바 공탄성 플러터 현상을 일으킨 것으로 결론 내려졌다.
그 후 수십 년이 지난 오늘에 이르러 스페인의 엔지니어인 데이빗 야네즈(David Yanez)는 과거의 사건에서 새로운 영감을 얻었다. 강풍으로 인해 타코마 다리에서 발생했던 소용돌이 현상을 풍력 발전기에 적용해봐야겠다는 아이디어가 떠올랐던 것.
야네즈는 “공탄성 플러터 현상은 강한 바람에 의해 날개나 다리의 상판이 수직으로 흔들리면서 불안정해지는 문제를 야기하지만, 역으로 생각하면 이를 이용하여 소용돌이에서 발생하는 에너지를 운동에너지로 바꿀 수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라고 설명했다.
구조가 단순해 시공과 유지관리의 경제성 뛰어나
풍력 발전기라 하면 대부분 풍차 형태의 터빈을 떠올릴 정도로 날개의 이미지는 상징적이었지만, 반면에 날개로 인해 크고 작은 문제도 발생했었다. 예를 들면 야생 조류와 날개가 충돌한다거나, 날개가 회전할 때 마다 소음을 만들어 주민들에게 불편을 초래하는 점 등을 들 수 있다.
수많은 엔지니어들이 오래 전부터 날개 없는(bladeless) 풍력 발전기를 꿈꿔 왔다. 하지만 실제로 성공한 사례가 없었기 때문에, 여전히 풍력 발전 시장은 풍차 형태의 터빈이 장악하고 있었는데, 이번에 개발된 소용돌이 현상을 이용한 발전기를 통해 그 꿈을 이루게 될 것으로 보인다.
야네즈와 동료 연구진이 개발한 소용돌이 풍력 발전기의 이름은 보어텍스 블레이들리스(Vortex Bladeless)로서, 외형은 거대하지만 특이한 점은 별로 없는 기둥 모양으로 이루어져 있다.
대신에 Vortex의 특징은 설계 방법과 소재에서 찾을 수 있다. 바람이 일으키는 소용돌이가 기둥 전체를 휘감으며 에너지를 발생하도록 설계되어 있다. 또한 유리섬유와 탄소섬유의 합성소재로 구성되어 있고, 두 개의 자석링이 장착되어 있어서 풍속에 관계없이 기둥의 움직임을 증폭시킬 수 있다는 점이 특징이라 할 수 있다.
이 같은 원리로 무장한 Vortex는 최근 실외 테스트를 통해 성능을 검증 받았다. 검증 결과 프로토타입의 Vortex 출력이 기존의 풍력터빈보다 30% 정도 낮은 것으로 나타났으나, 개발진은 결과 자체를 고무적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같은 면적이라 가정할 때, Vortex 발전기가 풍차형 발전기보다 2배나 많이 설치할 수 있기 때문에 출력이 낮은 단점을 상쇄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에다 작동 시 소음이 전혀 없고, 날개가 없기 때문에 야생조류에게도 안전한 친환경 장치라는 점도 매력적이다.
특히 야네즈는 Vortex의 단순한 구조를 장점으로 내세웠다. “Vortex는 기어나 볼트가 필요 없고, 장치를 구동시키기 위한 부품도 없다. 따라서 제조 및 유지보수 비용이 기존의 풍차형 발전기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저렴하다”라고 강조했다.
실제로 그냥 기둥처럼 생긴 발전기를 땅에다 박기만 하면 되니, 기존 풍차형 발전기와 비교할 때 어느 쪽이 더 단가가 저렴할지는 생각해보면 쉽게 답이 나올 수밖에 없다. 야네즈의 주장에 의하면 건설 및 유지 보수에 드는 비용은 같은 전력을 만들 수 있는 기존의 발전기 대비 절반 수준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들은 2018년까지 100와트(W) 수준의 전력을 공급한다는 계획을 세웠는데, 예정대로 진행된다면 가까운 미래의 풍력 발전기 모양은 아마도 풍차 형태가 아닌 풍봉(風棒) 형태로 바뀌어 있을지도 모른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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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6-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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