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도체 공정 과정에서 매우 중요한 단계 중 하나를 언급하라면 소자 결함을 검사하는 과정을 들 수 있다. 이때 사용되는 것이 열영상현미경이다. 구리선으로 연결되어 적층된 반도체 칩을 열영상현미경을 통해 결함검사를 진행하는 것이다.
하지만 기존의 열영상현미경은 해상도가 낮아 인식장비로는 사용할 수 있었으나 분석장비로 활용하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
이런 가운데 국내 연구진이 정밀한 분해능을 갖는 ‘초정밀 열영상현미경’을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기초과학지원연구원 첨단장비개발사업단의 김건희 박사팀이 시료 각 부분의 온도차이를 이용, 3μm 분해능을 갖는 열영상현미경을 국내 최초로 개발한 것이다.
인식에서 분석으로
김건희 박사팀이 개발한 ‘초정밀 열영상현미경’은 시료의 열 특성을 이용한 분석장비로, 적외선열화상 장치와 현미경을 결합시킨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물은 열을 갖고 있지만 우리 눈으로 그것들을 직접 볼 수 없어요. 하지만 열은 감지할 수 있겠죠. 이러한 열을 볼 수 있는 장비로 방사율을 측정하는 적외선 센서가 있습니다. 열 분포를 읽는 장치인 셈이죠. 지금까지의 열영상 감지 장비는 적외선 센서를 이용해 물체의 존재 여부를 인식하는 정도에 그쳤어요. 해상도가 낮아 피사체를 분석하는 데 한계가 있었죠. 이번에 개발한 ‘초정밀 열영상현미경’은 물체를 감지한 열영상 카메라에 현미경을 접목한 것으로 정밀한 분석이 가능한 장치입니다.”
김건희 박사팀의 초정밀 열영상현미경은 열영상 카메라에 바이오이미징을 접목한 것이다. 일반적인 현미경이 가시광을 이용해 사람이 눈으로 볼 수 있는 것을 확대하는 것에 그쳤다면, 이는 사람의 눈으로 볼 수 없는 적외선 영역을 센서로 변환해 눈으로 관찰할 수 있게 했다.
이 초정밀 열영상현미경은 시료의 열상 이미지를 3μm까지 구분할 수 있으며, 0.005K(캘빈온도)에 1초당 약 100장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 연구의 가장 핵심적인 사항은 시료에서 방출되는 적외선을 확대하는 ‘적외선 광학계’를 개발한 것으로, 이 적외선 광학계는 NA값이 0.75 이하이고, 작동거리는 15mm로 매우 근접한 상태에서의 작동이 가능하다.
“개발한 장비는 매우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어요. 전자부품 분야에서는 반도체, 레이저, 조명용 LED, 태양전지 등 핵심부품의 결함과 성능을 검사하는 데 활용할 수 있고 생체시료 분야에서는 열분포 분석이나 나노입자를 주입해 질병을 진단하고 질환의 경과를 살펴 볼 수 있죠. 또한 치료 적정도의 정보를 제공할 수도 있어요. 현재 사용되는 일반적인 열영상 카메라는 산불감시나 산업용 감시카메라, 비파괴검사, 군 야간정찰 등에 이용되고 있는 상태입니다.”
특히 바이오이미징 분야에서는 앞으로의 연구 가능성이 무궁무진하다. 김건희 박사는 “미토콘드리아를 연구하면 사람의 노화과정을 규명하는 데 매우 좋은 툴이 됩니다. 더불어 대사활동을 살펴봄으로써, 이에 따른 질병의 원인을 규명할 수 있죠. 현재 실험용 쥐에서의 피부암 원인을 발견한 상태”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열영상현미경은 다양한 분야에 적용할 수 있고, 미래 발전가능성이 높은 연구분야이기에 중요성이 강조되고 있다. 실제로 전자제품에서 열 발생으로 인한 문제를 정확히 규명하게 된다면 반도체 산업이나 LED 산업 분야에서 매우 높은 발전을 일굴 수 있다.
“연구 초반… 주위 설득하느라 힘들었죠”
김건희 박사가 몸담은 기초연의 첨단장비개발사업단은 본래 위성에 들어가는 카메라를 가공하는 연구단이었다. 분석장비 전문기관인 만큼, 이러한 연구단의 특성을 또 다른 방향을 접목할 수는 없을지 고민하던 차에 김 박사는 ‘열 현미경’이라는 아이디어를 얻게 됐다.
“연구 아이템을 찾던 중에 열영상 현미경이 가장 적합하다고 생각했어요. 우리 연구원은 초정밀 가공시설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열영상 카메라 렌즈를 직접 가공할 수도 있기 때문에 연구를 진행하기에 적합하다고 생각했죠. 직접 렌즈를 가공해서 현미경에 적용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시작한 김 박사팀의 연구는 지난 2009년부터 약 5년 동안 계속됐다. 연구를 시작할 당시만 해도 주위에서는 초정밀 열영상현미경의 파급효과를 예상하지 못해 연구를 만류하는 경우가 적지 않았다.
“지금이야 바이오이미징 분야가 발전하고 필요해지면서 인정을 받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초정밀 열영상현미경을 만드는 게 과연 어떤 도움이 될 것인지 의아해 하는 시선들이 많았어요. 때문에 연구 계획을 작성할 때에도 주위에서 "그만 두는 게 어떻겠냐"며 부정적으로 이야기하곤 했죠.”
연구 과정 중 가장 힘들었던 점 역시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이었다. "80억을 들여 장비를 만드느니, 기존의 30억짜리 현미경을 사서 사용하는 게 낫지 않겠냐"는 의견에 부딪혔던 것이다. 하지만 연구에 대한 확신이 있던 김건희 박사는 5년 동안 해당 과제를 포기하지 않았다.
“바이오이미징에 대한 중요성이 강조되면서, 지금은 구체적인 파트너들이 나오고 있는 상황이에요. 실제로 할 수 있는 일들이 눈에 보이기 시작한 거죠. 후속과제로 다양한 연구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대부분이 융합 과제인데요, 반도체 칩 검사 장비개발로 활용할 수 있는 열상현미경과, 바이오이미징 장비도 더욱 구체적으로 개발할 계획입니다. 앞으로 더욱 심화된 후속연구가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죠.”
김건희 박사는 이번 기술과 관련, 분석장비를 국산화할 수 있는 시작점이 됐다는 것에 의의가 있다고 말했다. “실제 국내 분석장비 중 대부분이 해외 외산장비에 의존하고 있습니다. 이런 가운데 우리팀이 직접 장비를 만들었다는 게 가장 큰 의의라고 할 수 있죠. 장비가 국산화되면 해외에서 판매하는 비용이 절반 가까이 떨어지기 때문에 기존 기업에서는 많은 이윤을 볼 수 있을 거예요. 더불어 외화 낭비도 줄일 수 있겠죠. 이번 연구가 장비의 국산화를 육성하는 초석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실제로 국내 장비의 60% 이상은 수입 외산 장비에 의존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장비를 국산화할 경우 감소되는 비용을 인건비에 사용할 수 있어 고용창출의 기회도 늘릴 수 있다.
장비의 수입 문제에 대해서는 정광화 기초연 원장 역시 언급한 바 있다. “NTIS 등록 기준으로 지난 2005년 이후 구축된 연구장비와 시설의 약 60%가 외산장비인 실정”이라며 “모든 연구장비를 직접 개발할 수 없지만 새로운 아이디어에 토대를 둔 연구장비 영역부터라도 적극적으로 개발해 나간다면 연구장비 개발을 중심으로 하는 벤처 생태계 구축이 가능할 것이다. 과학과 산업이 융합되는 ‘창조경제’에서 큰 역할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던 것이다.
김건희 박사는 “장비만 사서 운영하는 것보다는, 장비를 직접 만들어 더 많은 기회를 창출하는 게 더욱 경제적이지 않나. 국산화할 수 있는 것은 그렇게 하는 것이 낫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초정밀 가공기술은 몇몇 선진국이 보유한 기술입니다. 때문에 기술이전이 불가능한 영역이지만 중소기업이 필요로 하는 기술인 동시에 항공우주와 국방 분야에서도 요구되는 국가 핵심기술이죠. 이번 열영상현미경 개발을 통해 고해상도 대물렌즈 상용화기술을 확보, 분석장비 국산화의 기반을 구축했습니다.”
- 황정은 객원기자
- hjuun@naver.com
- 저작권자 2013-05-2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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