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신드롬을 일으켰던 드라마 ‘카이스트’를 기억하십니까? 막장 드라마가 기세를 부리는 요즘이야말로 순수한 드라마가 가장 필요한 순간이 아닐까요.” 과학과 인문·예술의 만남을 위해 기획된 ‘융합카페’ 행사가 제10회를 맞이했다. 와이쥬 크리에이티브(Yzoo Creative)의 윤주 대표가 ‘로봇드라마 스토리텔링 개발’을 주제로 발표했다.
사회를 맡은 최연구 한국과학창의재단 융합문화실장은 와이쥬 크리에이티브가 한국과학창의재단에서 지원하는 융합문화사업 중 ‘로봇 테마 스토리텔링 개발 워킹그룹 운영’ 과제를 한국로봇학회와 공동으로 맡아 진행 중이라고 소개했다.
젊은이들의 순수한 열정이 담긴 성장 드라마
“로봇을 만드는 젊은 과학도들이 서로 부딪치고 사랑하며 성장해나가는 이야기를 그릴 겁니다.”
‘로봇드라마 스토리텔링’에 대한 윤 대표의 꿈은 제2의 ‘카이스트’를 만들겠다는 의지에서 출발했다. ‘유익하면서도 재미있는 드라마’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을 비밀병기로 젊은이들의 열정을 선택한 것이다.
“미래를 이끌어갈 원동력은 창의적인 인재인데, 요즘 드라마에는 아이들이 롤모델로 삼을 만한 인물이 등장하지 않아서 문제입니다죠.”
건전하면서도 밝은 그리고 창의적인 드라마가 정답이라는 뜻이다. 이를 위해 여러 개의 후보 시놉시스를 충분히 검토하고 수정해서 두 가지로 압축했다. 그 첫번째가 로봇 공학도들이 등장하는 성장드라마다. 시놉시스를 선택한 기준은 대중들이 공감할 수 있는 흥미, 실제 드라마로 방송될 수 있는 재미, 그리고 로봇산업의 비전을 제시할 수 있는 리얼리티 등 세 가지다.
기술과 재미의 성공적인 결합을 위해 한국로봇학회 소속의 로봇전문가 다수가 시나리오 감수 과정에 참여한다. 또한 만화 작가와 시트콤 작가들도 합세하여 로봇 이야기의 매력과 리얼리티를 최대한 살릴 예정이다.
로봇은 인간과 한가족이 될 수 있을까
영화 ‘트랜스포머’에서는 로봇 외계인들이 가전제품과 기계로 둔갑해 인간들 틈에 숨어 살지만, 사실 우리의 일상 곳곳에는 로봇이 숨어 있다. 컵을 대면 찬물 더운물을 자동으로 틀어주는 정수기라든가 가까이 가면 저절로 문을 여는 자동문 또한 로봇의 한 종류다. 단지 생물체의 형태를 띠지 않았을 뿐이다.
게다가 스스로 돌아다니며 먼지를 빨아들이는 로봇 청소기라든가 주인의 명령에 반응하는 로봇 강아지를 보면 귀엽고 기특하다는 생각이 들 것이다. 때로는 진짜 동물처럼 대하기도 한다. 그렇다면 인간의 얼굴을 가진 로봇과 한집에 산다면?
윤 대표가 제시한 두 번째 이야기는 어느 집으로 입양된 로봇 소녀의 이야기다. 인간에게만 쓰이는 ‘입양’이라는 단어가 로봇에게 적용된다니 흥미롭다.
1970년 일본의 로봇공학자 모리 마사히로는 ‘기분나쁜 골짜기(不氣味の谷, Uncanny Valley)’라는 현상을 지적한 바 있다. 로봇이 사람을 닮기 시작하면 어느 순간 소름끼칠 정도로 호감도가 급감하는 지점이 생긴다는 것이다. 인간형 로봇으로 성공한 애니메이션은 많지만 영화는 드문 이유다. 인간이 연기하는 로봇 소녀가 비호감의 골짜기를 뛰어넘어 시청자들의 마음에 안착할 수 있을까?
바로 여기서 로봇 이야기의 매력이 발휘된다. SF 문학이 가상의 이야기를 만들어 인간의 윤리문제를 따끔하게 지적했듯이, 인간과 로봇의 구별은 결국 강자와 약자 간의 차별 문제와도 연결된다. 로봇 이야기를 통해 인간은 결국 자신의 책임과 한계를 돌이켜 보는 셈이다.
브루스 매즐리시(Bruce Mazlish)가 ‘네번째 불연속’이라는 책을 통해 지적한 것처럼, ‘인간과 기계는 서로 다르다’는 불연속이 영원히 유지되리란 법은 없다. 데츠카 오사무의 애니메이션 ‘철완 아톰’이나 토리야마 아키라의 만화 ‘닥터 슬럼프’처럼, 멀지 않은 미래에는 인간 아빠와 로봇 자식이 한가족처럼 살아갈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기술과 재미를 동시에 잡는 것이 관건발표 후에는 로봇문화연구소 지은숙 소장의 진행으로 열띤 토론이 이어졌다. 지 소장은 “로봇을 가족으로 받아들인다면, 로봇의 실수까지도 인정해야 한다”며 로봇윤리를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숭실대 정보통신전자공학부 이성수 교수는 “로봇 기술만을 강조하면 재미가 덜하므로, OSMU(원소스 멀티유즈) 등 부수 콘텐츠를 다각적으로 연계하는 게 어떨까” 제안했다. 또한 “일본은 애니메이션 덕분에 로봇공학이 발달하는 등 SF 속 과학기술들이 사회 전체를 드라이브했다”며 과학기술에 대한 상상력을 자극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이어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의 조영조 책임연구원은 “로봇에 대한 대중들의 기대치가 너무 높아 걱정”이라며, “현재의 기술수준을 고려해서 로봇공학의 현실적인 상황을 보여주어야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한국방송작가협회 김승신 상임이사는 “로봇을 소재로 한 이야기들이 이미 많으므로, 한국적으로 차별화시킬 수 있는 아이템을 찾아야 한다”고 당부했다.짧지 않은 토론을 마치고 윤주 대표는 “로봇이라는 소재가 드라마로 탄생하기 위해서는 사실성, 재미, 감동, 유익함 등 함께 녹여 넣어야 하는 요소가 많다”고 밝히며, 여러 의견을 모아 더욱 좋은 시나리오를 만드는 데 힘쓸 것을 약속했다.
“각 분야 전문가들이 활발히 토의하고 네트워크를 만들어 발전을 이루는 것이 융합카페의 목적”이라는 최연구 실장의 결언처럼, 상상력의 나래를 펴는 동시에 미래기술과 윤리에 대한 고민도 해볼 수 있는 뜻깊은 자리였다.
- 임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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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9-11-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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