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인류 최초로 달에 착륙한 미 우주탐사선 ‘아폴로 11호’의 성공에 결정적 기여를 한 존 C. 후볼트씨가 향년 95세로 타계했다. 미 언론은 “후볼트가 없었다면 아폴로 프로젝트도 없었을 것”이라며 애도했다.
미 항공우주국(NASA)의 항공 우주 엔지니어 존 후볼트는 ‘달 궤도 랑데부(lunar orbit rendezvous, LOR)’ 방식을 고안, 아폴로 프로젝트를 추진하고 있던 나사 우주위원회에 결정적인 아이디어를 제공한 인물이다.
60년대 구소련과의 우주개발 경쟁에 앞서나가기 위해 미국은 로버트 시먼스(Robert Seamans) 박사를 주축으로 아폴로 프로젝트를 추진했다. 모든 것이 해결 과제로 등장했다. 무거운 우주선 장비를 싣고 날아 올라갈 거대한 로켓 새턴 V호에서부터 사령선, 기계선 달착륙선 등의 우주선 제작은 한 사람의 힘과 노력으로 감당키엔 어마어마한 프로젝트였다.
하루하루 악몽 같은 시간이 지나면서 로켓과 우주선 제작이 완성돼갔지만 더 큰 장벽이 기다렸다. 그건 바로 ‘지구의 발사장에서부터 달 표면까지 어떤 방법으로 갔다 오느냐’는 것이었다. 인류 역사상 단 한 번의 경험도 없는 상황이어서 난제 중의 난제로 등장했다.
랑데부 못하면 영원한 우주 미아
기상천외한 아이디어들이 쏟아지는 가운데 유력한 안이 서너 개로 압축됐다. 위원장 시먼스박사는 3가지 가능한 미션과 계획을 구체화시켰다.
첫째는 ‘직접 도달 계획’이다. 우주선 한 대로 달에 착륙한 후 지구로 다시 귀환하는 것이다. 둘째는 ‘지구 궤도 랑데부 계획’이다. 여러 대의 로켓을 이용해 달탐사선에 필요한 부품을 지구 궤도에 올린 후 하나로 조립해 달로 향하는 방식으로서 오늘날의 우주정거장 방식과 비슷했다. 셋째는 ‘달 표면 랑데부’ 계획이다. 우주선 두 대를 차례로 보내는 방식이다.
즉 연료와 산소를 가득채운 무인우주선을 먼저 달에 보내고 뒤이어 유인우주선을 달에 착륙시킨다. 그리고 앞서 보낸 무인우주선에서 연료와 산소를 공급받아서 다시 지구로 귀환한다.
위원회는 세 가지 다른 방식을 갖고 격론을 벌였다. 이때 버지니아 주에 있는 랭글리 연구센터에서 무명의 항공우주연구원이 네 번째 아이디어를 냈다. 그건 바로 ‘달궤도 랑데부(lunar orbit rendezvous, LOR)’ 방식이었는데 이는 사령선과 착륙선을 하나의 로켓에 싣고 가는 방법이었다.
우선, 로켓이 이륙한 다음에 지구궤도에서 달착륙선과 사령선을 분리시켜 거꾸로 도킹시켜 달 궤도까지 날아간 후, 달착륙선으로 달에 착륙해 임무를 수행한 다음에, 달 궤도에서 다시 사령선과 도킹해 귀환하는 방법이다. 로켓의 무게와 연료를 엄청나게 줄일 수 있는 획기적 방법이었다. 이를 제안한 사람이 바로 얼마 전에 타계한 존 C. 휴볼트(John Hubolt)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위원회의 전문가들은 대부분이 이 방식에 회의적이었다. 그 이유는 달 표면에서 착륙선이 이륙한 다음에 조금이라도 오차가 생겨 모선(사령선)과 랑데부하지 못할 경우, 우주비행사들은 영원히 달 궤도를 헤매다가 천천히 죽음을 맞는 끔찍한 결말을 맞게 되기 때문이다.
그래도 결국, 휴볼트의 계획이 채택됐다. 천문학적 돈이 드는 아폴로 프로젝트에서 수백억 달러를 절약하고 촌음을 다투는 구 소련과의 우주경쟁에서 시간을 앞당겨주는 이 방식은 버리기엔 아까운 것이었기 때문이다.
결국 성공한 달 궤도 랑데부 방식
아폴로 11호 우주선은 맨 꼭대기에 뾰족하게 생긴 소형 로켓처럼 생긴 탈출탑을 만들었다. 이는 사령선에 탄 우주인들이 만약의 우주선 폭발 사고에 대비해 탈출통로를 통해 이동할 안전장소다. 그 바로 밑에는 사령선(CM)이 있고 그 밑으로 기계선(KM) 및 달착륙선(LM)이 차례대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령선은 총괄 지휘하는 우주선 조정실로서의 증요한 역할을 수행했다. 달착륙선의 천정과는 도킹 터널로 연결돼서 랑데부(rendezvous)하면 우주인들이 왕복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이외에도 착륙선에는 4개의 하강용 로켓 연료 탱크와 로켓 착륙용 다리 4개가 있어서 달 표면에 내리면 지탱할 수 있게 됐고, 이 다리들에는 각각 지름 94cm의 널찍한 발판이 있어 착륙시 충격을 흡수토록 고안됐다.
아울러 달착륙선은 추진력 1.6톤의 상승 엔진을 분사시켜서 달 표면을 날아올라서 달 궤도를 돌고 있는 모선과 결합할 수 있도록 설계됐다. 마지막 기계선은 사령선 바로 밑에 있는 원통형 부분으로 사령선의 부속 창고이자 기관차의 역할을 했다.
이 무거운 우주선 장비들을 3단으로 이뤄진 111미터 길이의 새턴 V호 로켓이 날아 올릴 책임을 졌다. 각 단마다 엔진이 별도로 달린 이 거대한 로켓은 내부에 연료로 가득 채워져 있었다. 이중에서도 우주선을 발사대에서 밀어 올리는 1단 엔진이 가장 강력한 힘을 갖고 있었다.
1969년 7월 16일 드디어 아폴로 11호는 플로리다의 케이프커내버럴 발사대에서 역사적인 발사를 시도했다. 1단 로켓 엔진은 2분 후에 분리됐고, 나머지 엔진도 예정된 순서대로 떨어져 나갔다. 동시에 우주선은 달을 향해 나아갔다.
즉 발사 후 3시간 15분이 지나자 달착륙선의 페어링이 분리되면서 사령선과 기계선이 분리돼 나와 앞 뒤 방향을 바꾼 다음에 도킹을 시도했다. 이때 마지막 새턴 V호의 세 번째 엔진이 떨어져 나갔고 본격적으로, 우주선은 달을 향해 날아갔다.
달 궤도에 진입한 우주선은 달 궤도 위에서 착륙선이 분리돼 자체 엔진을 사용해 달 표면 위에 내려앉았다. 그리고 사령선은 달 궤도를 돌면서 기다렸다. 그리고 후볼트가 제안한대로 착륙선은 임무 완수 후에 무사히 달 궤도 위에서 모선과 랑데부했고 우주선은 무사히 지구로 귀환했다.
위대한 우주공학자로 이름을 남긴 후볼트가 지난 20일, 95세를 일기로 세상을 떠났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4-04-3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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