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예 어선, 머신러닝으로 잡아낸다

강제 노역 위험 높은 선박 식별하는 모델 구축

많은 어업 노동자들이 외부와 단절된 공해상에서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채 마치 노예처럼 부려진다는 사실은 원양어업계에서 공공연한 비밀이었다. 문제는 그 같은 실상이 대부분 알려지고 있지 않을뿐더러 단속하기도 매우 어렵다는 데 있다.

그런데 강제 노역이 행해질 위험이 높은 선박을 식별하고 예측할 수 있는 모델이 최초로 구축됐다. 미국 산타바바라 캘리포니아대학(UCSB)의 연구진이 개발한 이 모델은 강제 노역을 행하는 어선은 정상적인 어업을 하는 어선과는 다른 방식으로 행동한다는 연구 결과를 이용한 것으로 알려졌다.

검은색은 강제 노역의 워험이 없는 곳이며, 밝은 색으로 표시된 곳은 위험이 높은 지역이다. ⓒGlobal Fishing Watch

이번 연구의 주저자 중 한 명인 UCSB의 개빈 맥도날드(Gavin McDonald) 연구원은 “최근 몇 년 동안 국제 언론은 세계 어업의 강제 노역에 대해 주목해 왔지만 그 실상은 거의 알려지지 않았다”며 “우리가 개발한 모델은 이전에는 불가능했던 새로운 정책 및 감시 활동을 펼치는 데 사용될 수 있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글로벌어업감시(GFW, Global Fishing Watch)’의 위성 선박 모니터링 데이터를 이용해 강제 노역 가능성이 높은 선박의 행동 및 특성 27가지를 수집했다.

GFW는 불법 어업과 어족 자원 남획을 막기 위해 활동하는 국제 비영리단체인데, 이곳에서 제공한 데이터에는 이전에 언론사 및 NGO(비정부기구)에서 노동 학대를 가한 것으로 공개 확인한 22척의 선박이 포함되어 있었다.

6년간 10만 명이 강제 노역의 희생자

연구진은 그 선박들이 어떻게 행동하는지에 대한 공통점을 추적한 결과, 공해상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고 다른 선박보다 항구에서 더 멀리 떨어져 더 많은 시간 동안 조업하는 등의 특성이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이후 연구진은 구글 데이터 과학자들의 도움을 받아 머신러닝 기법을 사용해 수천 척의 다른 선박에서 유사한 행동 패턴을 찾아냈다. 그리고 2012년부터 2018년까지의 데이터를 입력해 1만 6000척의 어선을 조사했다. 그 결과 전체 어선 중 14~26%는 강제 노역을 행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지난 6년 동안 최대 10만 명의 선원이 강제 노역의 피해자였을 수도 있다는 의미다. 이에 대한 상세한 연구 결과는 국제 학술지인 ‘미국 국립과학원회보(PNAS)’ 12월 21일 자에 발표됐다.

2012년부터 2018년까지 1만 6000척의 선박에 대한 분석 결과를 살펴보면, 이 모델은 92%의 정확도로 강제 노역을 올바르게 예측했으며 최대 4200척의 새로운 강제 노역 고위험 선박을 발견했다.

그에 의하면 강제 노역의 특성을 나타내는 비율이 가장 높은 어선은 오징어잡이배인 것으로 드러났다. 그 뒤를 이어 주낙어선과 저인망어선의 비율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해상 강제 노역의 핫스폿은 어디?

오징어잡이배는 밝은 불빛을 이용해 밤에 어획물을 수면 위로 유인하고, 주낙어선은 낚싯줄에 여러 개의 낚시를 달아 어류를 잡는 어선을 말한다. 트롤선이라고도 불리는 저인망어선은 자루 모양의 그물을 끌어서 어류를 잡는 어선이다.

강제 노역의 위험성이 가장 높은 어선 유형은 오징어잡이배인 것으로 드러났다(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이 없음). ⓒ게티이미지뱅크

GFW에 의하면 2018년 기준으로 산업용 주낙어선, 저인망어선, 오징어잡이 배로 활동하는 선박은 1만 3000척에 달한다. 이 중 강제 노역 위험성이 높은 주낙어선은 전 세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 반면, 고위험 오징어잡이배의 핫스폿은 남미 서부 및 남동부, 러시아 남동부, 인도 서부 지역인 것으로 밝혀졌다.

아시아의 경우 중국의 어업단체에 신고된 오징어잡이배 및 주낙어선과 한국, 일본, 대만의 어업단체에 신고된 주낙어선들이 강제 노역의 위험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캐나다, 미국, 뉴질랜드와 몇몇 유럽 국가들에도 고위험 선박들이 빈번하게 방문했다.

고위험 선박은 2018년도 기준으로 79개국의 항구를 자주 드나들었는데, 이는 강제 노역이 공해는 물론 국가 관할 구역 내의 모든 해양에서 이루어지고 있다는 의미다. 국제노동기구(ILO)는 2016년에 1600만 명이 강제 노역에 동원됐으며 농업, 임업, 어업 분야에서 11%를 차지했다고 추정한다.

이번 연구 결과는 인공위성 데이터와 머신러닝 기술을 이용한 모델이 해상에서 이루어지는 강제 노역의 위험성을 파악해 규제 기관 및 업계에 투명성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연구진은 향후 강제 노역에 대한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해 이번에 개발한 모델의 정확도를 향상시킬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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