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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상 관측하다 탄생한 ‘안개상자’ 노벨상 오디세이 (1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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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94년 9월 한 청년이 스코틀랜드에 있는 영국 제도의 최고봉인 베네시스 산 정상에 올랐다. 높이는 1344m이지만 만년설을 볼 수 있을 만큼 규모가 장대해 이 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누구나 최고의 경의를 표할 정도다.

베네시스 산의 정상에 있는 기상대에서 몇 주를 보내며 태양이 산 정상 주변의 구름 위를 비출 때 생성되는 코로나를 관측하던 그 청년은 대학의 실험실로 돌아가 자신이 본 것을 재현해보기로 결심했다. 먼지가 있는 조건에서 수증기를 뿌려 코로나의 생성을 다시 시도한 것이다.

그 과정에서 청년은 먼지가 없어도 수증기로부터 물방울을 만들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리고 이듬해 3월 청년은 먼지 없는 공기 속에서 수증기가 응결하는 실험 장치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윌슨의 안개상자는 우주선 분야에서 원자구성 입자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 public domain
윌슨의 안개상자는 우주선 분야에서 원자구성 입자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 public domain

대전입자가 지나간 궤적을 아주 작은 물방울들이 줄지어 있는 모습을 통해 관찰할 수 있는 장치인 ‘안개상자’가 최초로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이 청년의 정체는 바로 안개상자를 발명한 공로를 인정받아 192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찰스 T. R. 윌슨이다.

윌슨은 베네시스 산이 있는 곳에서 가까운 스코틀랜드 에든버러 근교의 작은 마을 칼롬에서 1869년 2월 14일에 태어났다. 하지만 네 살이 되던 해에 목축업을 하던 부친이 세상을 떠나자 어머니와 함께 맨체스터로 이사를 가게 된다.

15세에 맨체스터대학 오웬스 칼리지에 입학한 그는 생물학을 전공하며 의사를 꿈꾸었다. 하지만 장학금을 받아 케임브리지대학에 입학한 후 전공을 물리학으로 바꾸었다. 오웬스 칼리지에서 물리학을 가르치던 벨퓨어 스튜어트로 인해 물리학에 대한 관심이 커졌기 때문이다.

안개상자로 콤프턴 이론 실증

케임브리지대학을 졸업한 후 캐번디시연구소의 연구원으로 일하게 된 윌슨은 그때부터 자신이 만든 안개상자에 대한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896년 뢴트겐이 새로운 종류의 광선인 X-선을 발견하자 윌슨은 그것을 자신의 안개상자에 투사했다.

그 같은 실험 끝에 윌슨은 X-선과 우라늄선이 모두 같은 팽창비에서 짙은 안개가 생기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특히 X-선 입자가 형성하는 물방울은 밀도가 매우 높아 생성되는 구름 사진에 하얀 선들이 나타났다.

윌슨은 안개상자를 이용한 그동안의 실험을 정리해 1898년 말에 한 편의 긴 논문으로 발표했다. 그러나 이후 그는 더 이상 안개상자에 대한 연구를 이어가지 않았다. 대기현상을 재현하려고 개발한 장치가 X-선과 우라늄선 같은 새로운 광선에 의해 생기는 이온들의 성질을 연구하는 데 더 많이 사용되는 것을 못마땅하게 생각했기 때문이다.

안개상자를 발견해 192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찰스 윌슨. ⓒ public domain
안개상자를 발견해 192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한 찰스 윌슨. ⓒ public domain

그로부터 10여 년간 원래의 관심 분야인 대기 전기를 연구하던 윌슨의 시선을 다시 안개상자로 돌리게 만든 것은 고속 촬영 사진이었다. 그는 당시 유행하던 물방울이 튀기는 모습을 촬영한 고속 사진에 흥미를 느끼고 구름 현상도 그 같은 방법으로 촬영하고 싶어 했다.

그는 안개상자를 촬영 장치로 이용하게 되었으며, 그 과정에서 이온화된 입자들의 궤적을 볼 수 있는 새로운 안개상자를 만들었다. 그리고 1911년에 윌슨은 알파와 베타 입자, 감마선 등의 입자들이 지나가는 궤적이 찍힌 사진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알파와 베타 입자의 경로를 기록하고 관찰한 최초의 인물이 된 것이다.

안개상자의 잠재력을 확인한 케임브리지 과학기기제조사는 1913년에 상업용 기기를 출시했으며, 이에 따라 더 많은 과학자들이 과학 연구에 이 장치를 이용하기 시작했다. 1923년 윌슨은 안개상자를 이용해 X-선이나 감마선의 빛으로 전자를 산란시켰을 때 빛의 파장이 길어지는 현상을 발견한 아서 콤프턴의 이론을 실험적으로 증명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나날들

윌슨은 이 같은 업적을 인정받아 아서 콤프턴과 공동으로 1927년 노벨 물리학상을 수상했다. 당시 노벨상위원회는 발명 후 오랜 시간이 지나도 안개상자가 연구 가치를 계속 높이고 있다며 윌슨의 공로를 치하했다.

1924년 캐번디시연구소의 연구원 패트릭 블랙킷은 안개상자를 새롭게 자동화 장치로 개량시켜 질소 원소가 붕괴하는 과정을 사진으로 촬영하기도 했다. 1931년에는 패트릭 블랙킷과 오키알리니가 전자공학적인 동시계수 장치를 안개상자와 결합시켜 우주선을 정확히 감지해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개선했다.

칼 앤더슨이 우주선에서 양전자의 존재를 확인할 수 있었던 것은 바로 이 새로운 안개상자 덕분이었다. 안개상자는 이후에도 우주선 분야에서 원자구성 입자를 발견하는 데 결정적인 공헌을 했다.

“고향의 고지대에서 보낸 몇 주가 내 연구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날들을 만들어주었다.” 윌슨이 노벨상을 받을 때 남긴 소감이었다. 그는 이 말대로 은퇴 후 자신의 고향 근처인 에든버러로 이사했다. 그리고 80세가 되던 해에는 아예 출생지인 작은 마을 칼롬으로 돌아갔다.

고향에 정착한 후에도 그는 날씨에 대한 연구를 이어갔다. 그는 그곳에서 90세 때 뇌우의 전기적 구조에 관한 논문을 마지막으로 남겼다. 이외에도 예민한 금박검전기를 만들어 대기 중에 투과력이 강한 방사선의 존재를 기술하는 등 활발한 연구활동을 이어간 그는 1959년 11월 15일 가족들의 품에서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성규 객원기자
yess01@hanmail.net
저작권자 2019-09-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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