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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02-27

국립과학관의 발자취 정동찬 (국립중앙과학관 과학기술사연구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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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립과학관은 과학문화유산에서 첨단 및 미래과학기술에 이르기까지 과학기술의 역사적 발전과정을 발굴․소장․보존․연구를 통한 전시와 교육으로 나라와 겨레의 과학기술문화 정체성(Identity)을 확립하고 미래과학기술의 지식기반을 다지는데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과학관은 나라와 겨레의 과학기술을 떠나서는 존재할 수 없으며 과학기술의 물질적 성취를 정신적 자긍심으로 승화시켜 나라와 겨레의 발전을 도모하는 중심기관이다.


일제하의 과학관


우리나라 과학관은 불행히도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앞선 기술을 홍보하고 교육하는 식민정책의 일환으로 태동되었다. 일제 식민지배자들은 박물관 설립때부터 사회교육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도서관․박물관은 물론이고 박람회․전람회․강습회 같은 행사를 정책적으로 수행했다. 국립과학관의 출발은 일본화의 적극적 수단으로 이용하려는 박물관 사업의 일환으로 설립된 은사기념과학관(恩賜記念科學館)이다.

조선교육회는 1926년 1월부터 은사기념과학관의 창설준비에 들어가 7월 16일 대정(大正)일왕의 대혼(大婚) 관련 경축 하사금 17만원으로 과학관을 설립해 1927년 5월 10일 개관하였다. 건물은 왜성대(倭城臺)라 불리었고 지금의 서울 중구 예장동에 자리했다.

구총독부청사 목조건물 총7동 연건평 2,885평에 기계, 화학, 고생물, 공예 등 14개 전시실과 학예부(8개 연구실), 총무부(2개과), 실험실, 기계실, 미술도안실, 표본실, 목공실 등을 갖추고 130명의 직원이 기초와 응용과학 전반을 다루는 상당한 조직체계를 갖고 있었다.

1933년에는 전시품이 3,818여종 17,122점이었고 매년 증가하여 92,420여점에 이르렀다. 실질교육문화기관으로서는 당시의 조선, 대만, 만주, 일본 박물관 31개 이내에 드는 대단한 규모였다. 이렇듯 은사기념과학관은 식민지과학기술 발전에 주 목적을 두었다.

특히 1931년 만주사변이나 그 후의 태평양전쟁 등 전시에는 ‘비상시국일수록 과학기술발달에 더 투자해야 한다’는 생각에서 과학관은 다양한 형식과 내용의 전시품을 확보하는 한편 전시․교육 활동도 더욱 강화하였다. 1927년 개관 이후 관람객이 꾸준히 증가해 만주사변이후에는 조선총독부 박물관보다 더 큰 비중을 차지하면서 과학기술교육의 중심기관이 되었다.

왜 일제식민지배자들이 박물관, 특히 과학관 사업에 이토록 큰 정책적 배려를 했는가를 다시 한번 되돌아보면, 기술경쟁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는 과학관을 중심으로 하는 과학문화사업에 왜 심혈을 기울이지 않으면 안되는가에 대한 답을 구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해방 이후의 과학관


해방이후 과학관은 일제강점기의 시설과 조직을 이어받으면서 1945년 10월 13일 문교부 국립과학박물관으로 개관하게 된다.

특히 1946년 10월, 전국과학전람회(올해로 50주년)의 모태인 우리 과학전람회가 초․중․고 학생을 참가대상으로 1948년까지 조선과학동우회 주관으로 개최되었고, 1949년 10월에는 학생은 물론 일반인까지 참여하는 제1회 전국과학전람회가 문교부 주최로 경복궁 미술관에서 개최되었다.

6․25전쟁으로 중단되었다가 1955년 제2회부터는 매년 개최되고 있으며, 1964년 제10회부터는 국립과학관이 주관하고 있다. 1969년 제15회부터는 문교부에서 과학기술처로 이관되어 오늘에 이르고 있다. 1979년에는 전국학생과학발명품경진대회가 전국민 과학화사업의 일환으로 개최되는 등 그간 과학기술의 기반을 공고히 해 가고 있다.


국립과학관이 걸어온 길


정부수립과 함께 1949년 7월 14일에는 국립과학관으로 명칭이 바뀌었고 1950년 6.25 당시 전부가 불타고 벽만 남은 창고를 개수하여 근근히 명맥을 이어왔다. 1955년, 과학관 재건계획이 수립되고 1960년에는 서울 종로구 와룡동 2번지에 국립과학관 건립이 확정되었다. 10월 착공해 1962년 8월 30일 개관하였다. 이때부터 일본화된 성격을 탈피한 진정한 의미의 국립과학관이 출발하게 된다.

1969년 문교부에서 과학기술처 소속기관으로 이관되었고 1970년에는 지하 1층, 지상 5층의 본관(연건평 3,150평) 건물을 완성했으며 1971년에는 상설전시관을 개관했다. 1971년 1층 개관뒤, 1972년 2․3층에 12개 분야 223주제를 선정하여 8월 31일까지 전시를 완료하고 9월 8일에 개관했다. 그 뒤 280주제로 상설전시실을 확충하고 공개과학교실, 순회전시회 등 과학 대중화를 위한 사업을 계속 개발․운영했다.


1974년 당시 국가 핵심 산업이었던 중화학공업위주의 전시를 위한 산업기술전시관 건립을 추진했으며, 아울러 국내외 과학관 협력체계 구축과 더불어 새마을운동과 연계한 생활의 과학화를 이룩하고자 했다. 연탄가스방지, 태양열이용, 무선조종 등 당시 생활현안이 담긴 전시와 첨단기술 전시가 눈에 띈다.

산업기술전시관(2,163평)은 1978년 10월 31일 준공해 1979년 7월에 개관했다. 과학기술풍토조성이라는 기치 아래 국민생활의 과학화와 과학기술의 전국적 보급확산을 꾀했고, 특히 중화학공업역군양성기반을 구축하고자 하였다.

또한 철강, 기계, 조선공업 등과 관련된 기업의 공정을 전시하여 경제개발의욕을 일깨우면서 사회수요에 부응하기 위한 새로운 과학관 건립에 대한 논의를 시작했다. 80년대 들어 과학기술영역의 다변화와 시대적 요구에 부응해 나라와 겨레발전의 항구적 상징이 될 수 있는 과학기술문화의 전당을 건설함으로써 과학기술입국의 근본을 세우고 과학하는 국민의 전통을 확립하자는 뜻에서1985년부터 대덕연구단지에 종합과학관 건설을 시작했다.

종합과학관 건설 추진과 함께 과학기술 풍토조성의 교두보 역할을 기치로 국민의식의 합리화와 생활의 과학화를 촉진하고 과학교육진흥과 기술인력 양성을 위한 과학교육 강화에 역점을 두었다. 어릴 때부터 과학기술에 관한 꿈을 길러주기 위해 창조적 탐구력 함양, 과학동산의 전국확산, 과학모형공작교실, 과학문화유산의 확보 등에 주력했다.


국립과학관의 오늘


1990년 10월 9일에는 현 국립중앙과학관(부지 5만여평, 건물8,690평, 전시면적 2,182평)을 개관하고, 국립서울과학관을 소속기관으로 두게 되었다. 개관 1년만에 관람객 100만을 돌파했고 이제 1,000만명 이상이 다녀간 명실공히 과학기술문화의 전당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2,000년에는 책임운영기관으로 전환하여 전시․연구․교육기능을 강화하고, 21세기 지식정보화시대에 맞춰 사이버과학관과 최첨단 기술을 활용한 작동․체험형 전시 체제를 확립했다.

또한 인체의 신비전, 중국고생물화석전, 인류기원전 등 특별전들을 많이 유치하고, 겨레과학기술조사연구, 국립공원생태계연구, 평생사회교육 프로그램인 전통과학대학, 과학문화재탐방, 자연탐험대, 별자리관측 등을 통해 과학기술문화의 정체성 확립 및 확산을 주도하고 있다.

특히 수도권 최첨단 과학관 필요성의 대두로, 과천에 2002년 국립과학관 건설추진단을 발족시켜 수도권 국립과학관 건설을 추진하고 있다.


국민소득 2만불을 향해가고 있는 시점에서 과학기술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 바탕을 다지는 일은 과학문화의 확산을 통한 과학의 사회화에 있다. 거기에 바로 과학문화의 중추기관인 국립과학관이 있다. 더 관심을 갖고 우리 모두가 키워갈 때, 우리의 미래과학기술은 밝아 올 것이다.

저작권자 2004-02-2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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