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할머니가 아빠의 성격을 닮은 저를 보고 '핏줄은 못속여'라고 말합니다. 정말 핏줄이 닮은 것인가요?
유전의 세계는 들여다 볼수록 재미 있는 분야란다. 사람들은 옛날부터 아이들이 엄마 아빠와 닮은 것은 그분들의 몸에 있는 작은 씨앗들이 전해지기 때문이라고 믿었지.할아버지가 아버지에게 씨앗을 물려주고, 아버지는 또 나에게 씨앗을 넘겨 준다고 생각했지.
아마 우리 조상들은 피 속에 이런 씨앗이 있다고 생각하고든 '핏 줄는 속일 수 없다'는 말도 만들어 내지 않았을까. 그러나 유전공학 덕분에 피를 통해 씨앗이 전달되는 것이 아니란 것이 밝혀졌단다.
씨앗이 '유전자'를 통해 전해진다는 것을 제대로 이해하게 된 것은 50여년 정도 밖에 되지 않았단다. 사람이나 동물 모두 부모님과 비슷하게 닮기는 했는데, 어떤 방식으로 그렇게 되는지는 알 지 못했지.
많은 과학자들이 연구에 나섰지. 영국 케임브리지대 캐번디시연구소의 프란시스 크릭과 제임스 왓슨이란 두 명의 젊은 과학자들도 그랬단다. 두 사람은 우리 세포마다 들어있는 염색체에 비밀이 담겨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단다.
두 사람은 1953년에 '염색체 안에 네 가지의 작은 염기인 아데닌(A), 티민(T), 시토신(C), 구아닌(G)이 손에 손을 잡고 길게 이어져 있는데, 사다리를 꼬아 놓은 모양이다(이것을 DNA구조라고 부른다)' 라고 발표했단다.
꼬여있던 사다리가 풀리면서 꼭 같은 것이 두개가 복제되면서 유전이 된다는 설명도 덧붙였단다. 계단이 놓여있는 순서를 유전자라고 부르는데 이것이, 꼭같이 복제한다는 것을 알아낸 공로로 두 사람은 노벨상을 받았단다.
이제 DNA의 사다리 계단 수가 얼마나 되는지 아는 것이 남았지.
DNA는 세포를 떼어내 알코올에 담그면 쉽게 뽑아낼 수도 있고, 시험관 속에서 복제를 시킬 수도 있거든. 컴퓨터의 도움을 받아서 계단 수를 세어보았더니 DNA가 32억쌍이나 길게 늘어져 있는 것을 알게 됐단다. 사람 몸 속의 설계도와 같은 것인데, 사람들은 이것을 가리켜 지놈지도라고 부른단다.
설계도 안에 있는32억 쌍의 계단이 놓여있는 순서는 사람마다 약 0.1%가 다르단다. 피부색, 생김새, 성격도 달라지는 것도 이 순서 때문이란다. 과학자들은 또 어떤 DNA계단이 망가지면 어떤 병에 걸리기 쉽다는 것도 알아냈단다. 예를 들어 P53이란 유전자가 고장 나면 암에 걸릴 확률이 보통사람 보다 5~10배까지 높아진단다.
그렇다면 한국인들과 미국인들도 좀 다른 유전자를 갖고 있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 않니. 맞아. 민족마다 머리카락이나 눈, 피부의 색깔이 다를 뿐만 아니라 잘 걸리는 질병이 따로 있단다. 예를 들어 미국이나 유럽 사람들은 유방암이나 대장암에 잘 걸리지만, 우리 나라 사람들은 위암이나 간암에 걸리는 사람이 더 많단다.
그래서 나는 99년부터 정부의 지원을 받아 한국 사람들의 위암․간암 세포로부터 3만 여종의 유전자를 선택해 연구를 하고 있는데, 이 가운데 1천 여종의 유전자가 위암․간암과 관련된다는 사실을 밝혀냈단다.
덕분에 DNA 진단칩도 만들 수도 있었단다. DNA칩이란 손톱만한 크기의 작은 판 위에 수십개~수만개 의 유전자를 올려놓은 것이란다. 만약 내 몸의 유전자가 잘못됐다면, 피 한방울만 이 칩에 올려 놓더라도 특별한 단백질을 만들어 낸단다. 이것을 보고 손쉽게 병을 알아낼 수 있지.
조금 더 많은 연구를 하고 나면, 병원에 갈 때 의사 선생님이 "지금은 건강하지만 50세쯤 되면 위암에 걸리기 쉬우니 지금부터 육식을 줄이고 야채를 즐기셔야 됩니다"라고 미리 처방을 내릴 수 있는 칩도 만들 수 있게 된단다.
- 유향숙 인간유전체기능연구사업단 단장
- 저작권자 2004-09-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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