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정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생길까?

[허구에서 바라본 전염병] (17)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 영화 ‘인베이전’

더 이상 화가 나지 않는다. 놀라는 일도 없다. 분노도, 슬픔도, 짜증도 없다. 화가 나지 않으니 싸울 일이 없다. 욕설도, 악플도 없다. 누군가를 비교하며 가졌던 상실감도, 절망도, 좌절도 없다.

인간의 감정이 사라진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2007년도에 개봉한 올리버 히르비겔 감독의 영화 ‘인베이젼(The Invasion)’은 감정을 제거하는 의문의 바이러스에 감염된 사람들과 끝까지 감염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의 이야기다.

아무도 믿을 수 없다. 누가 감염자인지 알 수 없는 현실. (사진=영화 인베이전 2007) ⓒ 워너브라더스

인간의 뇌에 침투해 감정을 말살하는 바이러스

이상한 일은 어느 날 지구로 귀환하던 우주선 ‘패트리어트’호가 폭발하면서부터다. 사람들이 더 이상 아무런 감정을 느끼지 않게 된 것이다.

주인공 캐럴 버넬(니콜 키드만 분)은 아들이 핼로윈 행사 때 받은 사탕 바구니에서 인조피부와 같은 이상한 물질을 발견하고 연구소에 분석을 맡긴다.

인조피부와 같은 물질은 특이한 성질을 가진 외계 생물체의 생식 세포였다. 연구원이 370도의 고온에 가열해도 파괴되지 않았다. 특이하게도 이 세포는 수면과 관련이 있었다. 세포는 수면 중 급속한 안구 운동(rapid eye movement, REM)이 나타나는 렘수면 시기에 활동을 시작했다.

감염자들은 비감염자들을 감염시키기 위해 쫓아온다. 그들에게 들키지 않으려면 감정을 숨겨야 한다. ⓒ 워너브라더스

이상 세포는 렘수면 시 발생되는 호르몬이 촉매제 역할을 하며 대사 반응을 일으켰다. 해당 물질은 이러한 대사작용 중에 체외로 배출된 분비물이었다.

사람들은 잠을 자고 일어난 후 달라졌다. 바이러스는 뇌에 침투해 인간의 감정을 제어했다. 감염이 시작되면 사람들은 일절 감정을 표현하지 않았다.

사람들은 교통사고가 일어나도, 옥상에서 사람이 떨어져 죽어도 아무런 감정을 내보이지 않았다. 비명을 지르며 놀라거나 죽음을 애도하는 사람도, 살아있기를 바라는 절실한 희망도 없었다. 이들은 담담히 상황을 지켜보고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일을 했다.

감염자들은 다른 사람들을 감염시키기 위해 노력했다. 작업은 조용히 은밀히 진행됐다. 이들은 평상시대로 행동하면서 다른 사람들이 마시는 차나 커피 등 음료에 침을 뱉어 이상세포를 퍼뜨렸다. 감염은 감염자의 몸에서 나오는 비말, 체액으로 전파됐다.

시간이 흐르면서 감염자들은 점점 대담해졌다. 감염자들은 깜짝 놀라거나 흥분해서 땀을 흘리는 사람, 뛰어가는 사람, 우는 사람, 소리를 지르며 화를 내는 사람 등 감정을 표현하는 사람들을 하나둘 끌고 가기 시작했다.

외계 종족은 왜 인간의 감정을 제거하려 하나

분노, 슬픔, 두려움, 질투 등 모든 감정이 제거된 인간들이 살아가는 사회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사람들은 항상 침착하고 차분하게 이성적인 행동을 할 수 있다. 분노와 탐욕, 시기와 질투와 같은 감정이 사라진다면 남의 것을 탐하거나 내가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느끼는 좌절감과 상실감도 없을 것이다.

층간 소음 때문에 열받아 사람들과 다투지도 않을 것이다. 나보다 잘 사는 누군가에 대해 시기와 질투, 미움이 사라질 것이다. 남의 것을 탐하지 않으니 범죄가 사라진다. 어쩌면 전쟁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아들은 감염되지 않는 면역항체를 가졌다. 캐럴은 아들을 지켜야 했다. ⓒ 워너브라더스

“인간은 항상 싸운다. 분열과 갈등이 사라지지 않는다. 어쩌면 인간의 감정이 소멸된다는 것이 그렇게 끔찍한 일인 것은 아니다. 인류가 더 나은 사회를 만들 수도 있다.”

주인공인 정신과 의사 캐럴 버넬(니콜 키드만 분)을 감염시키려는 이들은 이런 논리를 펼친다. 그들은 “감정이 사라지면 나무가 숲을 이루듯 사람들끼리 서로 조화와 균형을 갖추고 함께 살아갈 수 있다”며 캐럴을 설득하려 한다.

캐럴은 감염자들의 논리에 동화되어 감염자 대열에 서는 듯했다. 하지만 문제는 아들이었다. 아들은 ADEM(급성 파종성 뇌척수염, acute demyelinating encephalomyelitis)에 걸린 경험이 있었는데 이로 인해 외계 세포에 면역반응을 보였다. 아들은 감염될 수 없는 존재였던 것.

영화 인베이젼은 1956년도에 제작된 돈 시겔 감독의 ‘신체 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을 원작으로 리메이크된 영화다. ⓒ SUPERSCOPE

면역항체가 있는 아들은 감염자들의 세계에서는 ‘쓸모없는’ 인간이었다. 감정을 계속 지닌 인간은 ‘처리’돼야 했다. 아들을 지키기 위해서라도 캐럴은 잠이 들어 감염자가 돼서는 안됐다. 결국 캐럴은 감염자들을 총을 쏴서 죽인 후 도망친다.

외계 생식세포의 침입이라는 원작의 신선한 아이디어는 급조된 듯한 결말로 퇴색된다. 과학자들은 백신을 1년도 안 돼 개발해 모든 일을 원래대로 돌린다. ⓒ 워너브라더스

결론은 어딘가 어설픈 해피엔딩이다. 캐럴의 아들에게서 얻은 항체로 백신이 일사천리 만들어 보급된다. 감염자들은 백신 주사로 과거에 있었던 일을 꿈처럼 여기고 원래대로 돌아온다. 불과 1년 후 모든 일이 원상 복귀된다.

하지만 ‘급조한 것 같은 어설픈 해피엔딩’이 지금 우리 현실에는 너무나 절실하다. 현재 일어나고 있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Covid-19) 사태도 영화와 같이 빠르게 백신이 만들어져 종식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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