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대 잡으려다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있다. 작은 문제를 해결한답시고 무모하게 나섰다가 더 큰 손해를 본다는 뜻이다. 그러나 달리 생각해보자. 빈대가 오죽 처치 곤란이면 집에 불까지 지를까. 살충제로 간단히 해결된다 말하지 말자. 빈대는 그렇게 쉽게 퇴치할 수 없다.1950년대 이후로 사라진 듯 보였던 빈대가 몇 년 전부터 미국 일부 도시에서 다시 나타나기 시작했다. 지난 여름에는 인구가 밀집한 대도시뿐만 아니라 캐나다와 프랑스 등 이웃 나라에까지 번지고 있다. 지난 2년간 빈대 신고 건수가 67%나 증가한 뉴욕시는 ‘빈대와의 전쟁’을 선포하고 수천만 달러의 비용을 투입해 방역을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빈대의 숫자는 줄어들지 않았다. 이제는 병원, 백화점, 호텔, 극장에까지 빈대가 출몰하며 도심의 대형 쇼핑몰, 엠파이어스테이트 빌딩, 방송국, 5성급 호텔도 문을 닫은 채 대대적인 방역과 리모델링을 실시하고 있다. 지난 학기에는 미국 내 학교 중 1천여 곳에서 빈대를 발견했다는 제보가 들어오기도 했다. 유명 연예인들의 고급 주택에도 빈대가 기승을 부려 비싼 가구를 내다 버리는 일도 잦다.
가려움증에 시달리다 신경과민에 걸리기도
크기가 5밀리미터 정도에 불과한 빈대는 낮 동안 매트리스, 소파, 카페트에 숨어 있다가 밤이 되면 기어 나와 잠든 사람의 살을 깨물고 피를 빨아 먹는다. 취침 시간 동안에 활발히 움직여 베드벅(bedbug) 즉 ‘침대 벌레’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긴소매 옷을 입고 자도 손목과 발목에 수십 군데의 붉은 자국이 생길 정도로 공격성이 강하다.빈대는 심각한 전염병을 옮기는 해충은 아니지만 후유증과 스트레스가 커서 문제다. 빈대가 문 자리에는 붉은 자국이 단추만큼 부풀어 오르는데, 처음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겨도 상처가 오래 지속되기 때문에 피부질환으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또한 참을 수 없는 가려움증을 동반하기 때문에 극심한 ‘공포’에 시달리다 신경과민에 걸리기도 한다.
이, 벼룩과 함께 3대 실내 해충으로 불리는 빈대. 흔히들 집안이 지저분하기 때문에 벌레가 생긴다고 추측하지만, 최근 들어 빈대가 기승을 부리는 이유는 ‘위생’과 전혀 상관이 없다. 집안의 매트리스와 소파를 새것으로 교체해도 신발이나 옷에 붙어서 집안으로 들어오기 때문이다. 더구나 먹이를 전혀 먹지 않고도 1년 가까이 생명을 유지하기 때문에, 장기간의 소독과 방역에도 끈질기게 살아남아 다시금 식구들을 괴롭힌다. 일종의 ‘슈퍼 해충’인 셈이다. 더구나 책상 서랍이나 문고리 틈새 등 생각지도 못한 곳에 숨어 있기 때문에 일일이 찾아내기가 쉽지 않다.
빈대가 살아남는 비결로 강력한 내성을 꼽기도 한다. 1939년 스위스 과학자 파울 헤르만 밀러가 DDT라는 강력한 살충제를 개발한 이후, 해충의 숫자는 해마다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벤젠과 염소가 결합해 만들어진 DDT는 사람과 동식물에는 피해를 주지 않으면서 해충만 없애기 위해 만들어졌다. 곤충이 옮기는 발진티푸스와 말라리아를 퇴치한 공로로 인해 뮐러는 1948년 노벨 생리학상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쉽게 분해되지 않는 성질을 지닌 DDT를 과도하게 사용하면서 부작용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생물의 체내에 남겨진 DDT의 축적 정도가 먹이사슬의 위쪽으로 갈수록 심해지기 때문이다. 1970년대 이후 DDT가 사용 금지된 이후로 대체 약품이 효과를 거두지 못하면서, 해충들의 내성도 크게 증가해 웬만한 살충제로는 끄떡도 하지 않는다.
여행객 늘어나며 빈대 확산 속도 빨라져
일부 전문가들은 이동수단의 발달로 여행객의 숫자가 늘어난 것도 빈대를 확산시킨 원인으로 지목한다. 도심 지역에서 빈대의 숫자가 늘어나는 것도 여행을 자주 다닐 만한 경제적 능력이 되는 계층이 거주하기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1980년대 이후로 빈대 퇴치국으로 불렸다. 그러나 지난 2008년에 미국에서 살다 입국한 30세 여성의 집에서 빈대가 발견됐다. 빈대가 여행짐을 통해 이동한다는 사실이 밝혀진 것이다.
아직까지 국내의 빈대 활동은 걱정할 만한 수준이 아니지만, 최근 빈대는 여행객들 사이에 숨어들어 유럽에까지 세력을 넓히고 있다. 프랑스의 르피가로(LeFigaro)지는 지난주 ‘뉴욕에 이어 파리도 빈대의 재앙에 직면했다(Paris et New York face au fléau des punaises de lit)’는 기사를 통해 유럽에까지 번지기 시작한 빈대의 심각성을 경고했다.
르피가로에 의하면, 스마시(SMASH)로 불리는 파리 시청의 위생보건담당국(Service Municipal d'Actions de Salubrité et d'Hygiène)의 방역 활동이 1998년 56건에서 2009년에는 730건으로 10년새 10배로 증가했다. 담당 국장인 마르크 에벤(Marc Even)은 “9월 30일 집계 결과로는 올해에만 609건”이라고 밝혔다. 그는 “요즘 빈대는 배관을 타고 번져 나간다”며, “한두 집이 아닌 건물 전체를 방역해야 할 지경”이라고 하소연했다.
위생보건담당국의 방역 서비스는 2회에 90유로(한화 약 14만원)의 비용이 든다. 공공서비스의 민간기업 의존도가 높은 미국은 이보다 비싸다. 방 2-3개의 사무실을 소독하는 데는 750달러(한화 약 80만원)가 소요되며, 빈대 탐지견이나 고온살균 서비스까지 덧붙이면 수천만원이 청구될 수도 있다. 덕분에 빈대 퇴치 산업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불리고 있으며, 정보를 교환하고 소비자의 눈길을 끌기 위해 업체들이 모여 박람회를 개최하기도 한다.그러나 소독이나 방역 후에도 빈대가 다시 나타나는 일이 잦아지자 아예 리모델링 공사를 하는 업주들도 늘어나고 있다. 파리에서 호텔을 운영하는 플로랑스 뒤부아(Florence Dubois) 씨는 “6개월 동안 연막탄, 스프레이 등 온갖 약품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며, “결국은 모든 방을 뜯어내고 새로 공사를 해야 했다”고 밝혔다. 그 뒤로는 투숙객들이 빈대로 인해 고생하는 일이 없지만 고민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그는 “빈대가 손님들의 짐에 숨어들어 다시 돌아올지도 모른다”며 걱정에 시달리고 있다.
살충제와 유전자를 연구하는 과학자들과 해충 전문가들이 머리를 맞대고 연구를 진행 중이지만 아직까지는 뾰족한 수가 없다. 결국 빈대를 제대로 퇴치하기 위해서는 손으로 잡아 없애거나 가구나 침구에 불을 질러 태우는 수밖에 없다. 왜 ‘초가삼간 다 태운다’는 속담이 생겨났는지 이해가 간다.
- 임동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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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0-10-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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