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고의 복서로 시대를 풍미했던 미국의 권투선수 무하마드 알리, 중국 대륙을 움직였던 작은 거인 덩샤오핑, 가톨릭교회의 최고 지도자였던 교황 요한 바오로 2세, 그리고 영화배우인 캐서린 헵번과 마이클 J 폭스…. 이들의 공통점은 퇴행성 뇌질환인 파킨슨씨병을 앓았다는 점이다.
파킨슨씨병은 치매에 이어 두 번째로 빈번하게 유발되는 퇴행성뇌질환으로 노인 100명당 1명꼴로 나타난다. 그러나 현재까지 정확한 질병 발생 원인이 알려져 있지 않아 효과적인 치료제 개발이 미흡한 상태다. 단기적으로 증상을 완화하는 치료제만 개발돼 있어 일단 발병하면 시간 문제가 되는 안타까운 상황이었던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국내 과학자가 파킨슨씨병의 발병과 관련된 유전적인 메커니즘을 세계 최초로 규명하면서 정말 인류가 파킨슨씨병을 치료할 방법을 찾아낼 수 있을지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KAIST 정종경 교수팀은 바이오벤처기업인 (주)제넥셀, 충남대 의대와 협력해 파킨슨씨병 핵심 발병원인 유전자인 '파킨'(Parkin)과 ‘핑크1’(PINK1)의 기능과 상호작용을 밝혀 세계적인 과학저널 네이처 5월 4일자에 발표했다.
정종경 교수팀이 거둔 성과는 크게 두 가지로 나눌 수 있다. 우선 파킨슨씨병이라는 미지의 병의 유전적인 메커니즘을 규명한 것. 연구팀은 파킨슨씨병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진 10여 개의 유전자 중 핑크1에서 파킨으로 이어지는 유전자의 명령체계에 문제가 발생하면 파킨슨씨병이 발생한다는 사실을 알아내는 데 성공했다.
특히 두 유전자가 도파민 뇌신경세포와 근육세포 내에서 ‘미토콘드리아’라는 세포소기관의 정상적인 기능유지에 필요하다는 점을 밝혔다. 이들 유전자가 망가질 경우 급격한 미토콘드리아의 변형과 파괴가 일어나며 결과적으로 파킨슨씨병이 유발됨을 알아낸 것이다. 미토콘드리아의 변형이 파킨슨씨병과 관련돼 있다는 점은 이미 알려져 있었는데, 지금까지 병의 원인인지 결과인지 불분명했었다.
두 번째 성과는 치료제 개발의 구체적인 타켓을 제공했다는 점이다. 실제 정 교수팀은 파킨이 미토콘드리아 기능을 상실시키는 중간 과정을 타켓으로 설정, 이 부분을 막는 신약 후보물질을 이미 찾아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초파리나 세포 수준에서의 치료효과를 확인했다는 후문이다.
정 교수팀은 세계적인 논문 발표와 후보물질 발굴이라는 커다란 성과를 거뒀지만 앞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가장 중요한 문제는 연구팀이 초파리를 대상으로 유전자를 밝히고 치료물질을 찾아냈는데 과연 인간도 똑같겠느냐는 것.
정 교수는 “살아 있는 인간의 뇌 조직을 떼어내 실험을 할 수 없기 때문에 동물 연구는 필수적”이라면서 “쥐를 대상으로도 실험해 봤는데 쥐보다 오히려 초파리가 인간의 파킨슨씨병과 유사한 점이 더 많은 것 같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얘기는 결국 비슷한 것 같다는 주장이지 결코 똑같다는 얘기는 아니다.
또 한 가지 문제는 파킨슨씨병 환자 중 유전적인 원인에 의해 발병하는 것은 불과 10%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정 교수는 “파킨슨씨병 환자의 경우 유전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와 환경적인 원인으로 발생하는 경우 병리적인 증상이 아주 흡사하기 때문에 서로 밀접히 관련돼 있을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나 이 역시 좀더 연구를 진행해 봐야 결과를 알 수 있을 전망이다.
이번 연구성과가 파킨슨씨병을 치료하는 새로운 길을 제시한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길을 따라 걸어갔을 때 정말 파킨슨씨병을 치료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전망이다.
- 김홍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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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06-05-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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