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5세기경 활동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중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란 인물이 있다.
시인, 교사, 의학자이기도 했던 그는 세상이 4원소, 즉 물(water)‧공기(air)‧불(fire)‧흙(earth)의 사랑과 다툼 속에서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이후 등장한 철학자 탈레스(Thales)는 세상만물의 근원을 물로, 아낙시메네스(Anaximenes)는 공기로, 헤라클레이토스는 불로 보았다. 반면 엠페도클레스는 물‧공기‧불‧흙을 서로 동등한 차원에서 사랑과 다툼의 관계를 갖는 세상의 근원으로 받아들였다.

인류 최초로 4원소 주기율표 작성
4일 ‘사이언스 뉴스’에 따르면 엠페도클레스의 주장은 고대‧중세를 거쳐 근대에 들어서면서 강한 영향력을 발휘했다.
만물의 근원을 물질에서 찾았던 고대 그리스 밀레토스 학파의 대를 이은 자연철학자들은 물‧공기‧불‧흙의 4원소를 통해 우주의 물질세계를 설명하려 했다. 최초의 주기율표(periodic table)로 받아들인 셈이다.
문제는 이 주기율표에 들어 있는 원소의 수가 4개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실제로 엠페도클레스는 우주에 118번에 달하는 원소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그의 글을 꼼꼼히 들여다 보면 21세기 들어 매우 건전한 과학적 개념들로 인정받고 있는 과학적 진리들을 전달해주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사이언스 뉴스’의 전 편집장이자 현재 과학저술가로 활동하고 있는 톰 지그프리드(Tom Siegfried) 씨는 “엠페도클레스가 근본적으로 물질과 힘(matter and force)에 대한 현대적 개념을 충분히 이해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실제로 그는 모든 물질을 4원소로부터 비롯된 결과물로 보았다.
그는 4원소를 모든 물질이 탄생할 수 있었던 ‘근원(roots)’이라고 호칭하고 이들 원소들이 합쳐지고 헤어지는 과정을 통해 어떤 물질과 생명이 탄생하는지 이해하고 있었다.
그는 사람들이 이 4원소에 대해 잘 이해할 수 있도록 신화에 등장하는 제우스(Zeus), 헤라(Hera), 아이도네우스(Aidoneus), 네스티스(Nestis)란 이름을 4원소에 대입시켰다.
그리고 이 원소들이 갈등을 지속하고 있으며, 끊임없이 지속되는 이 과정을 통해 창조와 파괴(creation and destructure)가 이루어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었다. (아직까지 어떤 원소에 어떤 이름을 대응시켰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그는 이 모든 변화 과정에서 원동력이 되는 것을 ‘사랑(love)’과 ‘다툼(strife)’으로 보았다. ‘사랑’은 모든 것을 완성하고, ‘다툼’은 모든 것을 파괴해 원소를 뿔뿔이 흩어지게 하는 원인으로 보았다.
4원소의 사랑과 다툼으로 우주 생성
엠페도클레스에 따르면 우주 속에서 탄생하고 있는 새로운 물질들, 그리고 새로운 생명들은 물‧공기‧불‧흙 등 4원소 혼합(mixture)에 의한 결과였다.
그는 유기체가 형성되는데 있어서도 이 4원소가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자연선택(natural selection)이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었다.
자연선택이란 같은 종류의 생물이라고 하더라도 생존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환경에 적응해 자손을 남길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생물이 살아남게 된다는 이론이다. 19세기 찰스 다윈 (Charles Robert Darwin)에 의해 다시 확인돼 진화론의 중요한 근거가 된다.
놀라운 것은 그가 살아있을 당시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의 이론을 받아들였다는 사실이다. 특히 위대한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le)가 그의 이론을 받아들였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영향력은 이후 모든 교육 과정에 이 4원소 이론을 채택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중세가 끝나갈 때까지 각종 교육 기관에서는 어김없이 4원소 이론을 가르치고 있었다.
고대 중국에서도 이 이론에 동의하고 있었다. 4개의 원소 중 물‧불‧흙 등 3개 원소에 금속(metal)과 나무(wood)를 추가해 5개 원소로 우주의 생성과 소멸 원리를 설명하고 있었다. 그러나 중국인들이 5개 원소의 본질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고 있다.
엠페도클레스가 4원소 이론을 주장하게 된 데는 그보다 20년 정도 앞서 일원론을 주장한 파르메니데스(Parmenides)의 영향이 컸다.
파르메니데스는 그 어떤 경우에도 엠페도클레스가 주장한 생성(creation)이 불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는 “존재하는 것은 생성되지도 소멸되지도 않으며, 나누어질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더 많이 있지도 않고, 더 적게 있지도 않은 하나의 연속적인 전체”라고 주장했다.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자(一者)’를 말한다.
자연과학적인 시각에서 생성이 불가능하다는 그의 주장이 이상하게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당시 그의 이론은 광범위하게 받아들여졌다. 소크라테스 역시 파르메니데스의 이론을 수용하고 있었다.
엠페도클레스는 파르메니데스의 일원론을 자신의 4원소에 적용했다. 이 원소들은 영원히 변하지 않는다고 보았다. 그러나 이 원소들이 결합하고 헤어지면서 새로운 물질을 끊임없이 탄생시키고 있다고 주장했다.
21세기 과학자들은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 이론이 지금의 주기율표에 기록된 원소를 설명하는데 매우 중요한 요소가 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어떤 과학자들은 물질세계의 생성과 분해를 설명하는데 있어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다툼 이론을 적용하고 있는 경우도 발견되고 있다. 동종의 원소들이 서로 결합하는 성향을 보이고 있지만 또 다른 다툼으로 인해 새로운 물질이 탄생하고 있다는 것.
기원전 5세기 활동했던 그리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의 4원소 이론이 2500년이 지난 지금 새로운 평가를 받고 있다.
- 이강봉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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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9-04-0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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