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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초·응용과학
심재율 객원기자
2018-02-19

하얀 비단 옷이 여름에 시원한 이유 첨단 의공학 재료로 활용 가능성 매우 높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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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얀 비단으로 만든 옷은 여름에 시원하다는 느낌을 준다. 왜 그럴까?

우리 한민족은 예전부터 무더운 여름 하얀 비단으로 만든 옷을 즐겨 입었다. 미국 퍼듀대 (Purdue University) 최승호 박사와 김영래 교수 연구진은 우리가 평소에 어렴풋이 느끼던 ‘여름에 시원한 실크'의 신기한 기능의 비밀을 앤더슨 응집이론을 통해 규명해 주목을 끈다.

연구진은 이 신기한 기능의 비밀을 실크 섬유의 나노 구조가 가진 특성때문임을 규명했다. 비단의 물질 구조는 메타물질과 같아서, 빛을 초고밀도로 모으거나 또는 강하게 반사하여 ‘거울 또는 블랙홀 같은 옷’과 같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밝혀냈다.

일반적으로 빛을 초고효율/고밀도로 모아 공진시키기 위해서는 메타물질 또는 메타구조가 필요하다. 메타구조는  물리적 이론에 따라 설계되고 첨단 기술로 미세하고 정교하게 제작된 구조로서, 자연에는 존재하지 않는 물리적 특징을 가졌다.

그러나 정교하게 제작된 규칙적인 구조없이도 빛의 공진이 가능한 예외적인 경우가 있는데, 이를 앤더슨 응집(Anderson localization) 현상이라고 한다.

앤더슨 응집현상은 노벨 물리학 수상자인 필립 앤더슨(Phillip Anderson)이 1958년 발견한 것으로, 파동의 전도성이 불규칙한 구조에 의해 사라지고 내부에 갇힌다는 응집물리분야에서 오랫동안 연구 되어온 현상이다.

누에고치 ⓒ Purdue University
누에고치 ⓒ Purdue University

비단의 물질 구조에서는 바로 이 앤더슨 응집현상이 빛에서도 발생하는 ‘앤더슨 광응집현상’이 나타나는 것이다. 이같은 ‘앤더슨 광응집 현상’이 나타나기 위해서는 산란된 빛의 파동 사이에 간섭이 일어나야 한다.

불규칙하게 밀집된 나노구조는 빛을 산란시켜야 하며, 산란된 빛의 파동은 보강 혹은 상쇄 간섭을 겪어야 한다. 우연히 보강 간섭이 강하게 발생할 경우 빛은 나노구조 내부에서 높은 에너지를 형성하며 응집한다.

빛 가둬두는 ‘앤더슨 광응집 효과’ 밝혀

연구진은 천연 누에고치의 나노구조가 앤더슨 광응집현상을 발생시키는데 필요한 특수한 구조를 가졌다는 것을 세계최초로 물리적으로 증명했다. 불규칙적인 누에고치의 나노구조는 빛을 오래동안 가둬주는 역할을 하는 것이다.

역사적으로, 생체조직에서 산란된 빛은 간섭성이 약해 생체내부에서 공진되지 않고 분산된다고 알려져 왔지만, 연구진의 발견은 이 오래된 경험 법칙을 깨뜨렸다.

앤더슨 광응집현상은 산란이 강한 반도체 구조에서조차도 어렵게 관찰되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산란이 훨씬 약한 생체 조직에서 관찰된 이번 발견은 이론적으로도 예상하기 힘든 결과이다.

천연누에고치의 섬유는 앤더슨 광응집현상을 잘 발생시킬 수 있는 구조를 갖고 있다. 지름 10~20마이크론(1 마이크론은 1/1000mm) 실크 섬유는 내부에 지름이 100나노미터(nm, 1나노미터는 1/10⁹m)인 또 다른 나노 섬유 수천 개로 구성되어 있다.

이 실크섬유 내부의 나노 섬유는 개별 산란체로서 작용하며, 앤더슨 응집현상은 이 내부의 나노 섬유 때문에 생기는 빛의 산란으로부터 발생한다.

누에고치 섬유 내부에 나노구조가 있을 경우 섬유 내부에서 빛이 공진한다 (좌). 반면, 섬유 내부에 나노구조가 없을 경우 빛은 분산한다 (우). ⓒ Purdue University
누에고치 섬유 내부에 나노구조가 있을 경우 섬유 내부에서 빛이 공진한다 (좌). 반면, 섬유 내부에 나노구조가 없을 경우 빛은 분산한다 (우). ⓒ Purdue University

앤더슨 광응집현상은 산란된 파동간의 간섭이 잘 일어나거나 산란의 세기가 강할 때 잘 일어 나는데, 실크섬유는 이 두 가지 조건을 모두 만족한다.

첫째, 나란히 정렬된 나노 섬유는 빛의 산란 방향을 정렬하여 산란된 파동이 결맞음이 잘 맞아 높은 확률로 서로 간섭되도록 한다.

둘째, 빛의 파장과 비슷한 크기를 갖는 여러 개의 나노 섬유 산란체는 산란 세기를 극대화 시킨다.

만약 이러한 나노 섬유 산란체가 없으면 실크와 유사한 마이크로 섬유구조가 있어도 앤더슨 광응집현상이 일어나지 않고 빛이 분산된다는 것을 연구진은 다른 유사구조의 천연소재를 통해 확인했다.

이번 연구결과는 지난 1월 31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 저널에 ‘Anderson light localization in biological nanostructures of native silk’라는 제목으로 게재됐다.

논문의 주저자인 최승호 박사는 “대부분의 실크 표면에서는 빛이 투과하지 못하는데, 놀랍게도 작은 영역에서 앤더슨 응집효과에 의해 아주 선명하게 소량의 빛이 응집된 모드를 타고 강하게 흐르는 것을 관찰했다. 이 응집된 모드는 생체조직 내에 에너지를 전송하는 특별한 경로로 사용될 수 있을 것” 이라고 말했다.

대부분의 실크 표면에서는 빛이 투과하지 못하지만, 임의의 영역에서 앤더슨 응집효과에 의해 빛이 응집된 모드를 타고 강하게 전송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앤더슨 광응집 현상은 초강산란 구조를 갖는 메타물질에서만 제한적으로 관찰되었기 때문에 자연상태의 물질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왔다. 그러나 이번 연구에서 누에고치 같은 생체조직에서도 앤더슨 광응집 현상이 관찰되었다는 점은 이 물리현상의 응용가능성에 대한 비약적인 확장을 예상하게 한다.

이로써 순수물리 연구에 머물러 있던 앤더슨 응집현상을 실생활에 광범위하게 응용하는 학문적 바탕이 마련됐다.

연구를 주도한 최승호 박사와 김영래 교수 연구진은 누에고치에서 발견한 이같은 특징을 이용해서 진단, 치료, 바이오센서, 복제 불가능한 생체이식 암호 등 다양한 의료용 기술을 개발할 예정이다.

광섬유의 경우, 일반 광섬유는 빛을 가두고 전송하기 위해 반사성 코팅 피복인 클래딩 재료를 입혀 특수 제작되지만, 실크섬유는 빛의 앤더슨 응집현상 덕분에 정교한 공학적 구조 없이도 빛을 가두고 전송하는 것이 가능하다. 즉, 광섬유와 유사한 기능이 자연이 설계한 불규칙한 디자인에 의해 구현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바이오 센서의 경우, 앤더슨 광응집 현상에 의해 생체소재와 빛사이에 강력한 상호작용이 생기는데, 이 증폭된 광반응을 이용하면 생체내 존재하는 입자들을 아주 민감하게 감지하는 것이 가능하다.

한국적인 연구가 세계적인 연구 

이 연구의 말미에는 여름에 시원한 실크의 신기한 기능의 비밀 또한 구체적으로 규명했다. 앤더슨 광응집 현상이 일어날 때 가시광 파장의 아주 작은 일부분은 실크 내부에 응집하지만 대부분 파장의 빛은 실크 표면에서 강하게 반사된다.

이러한 앤더슨 광응집 현상에 의한 강한 가시광 반사 특성이 천연실크 단백질의 높은 적외선 방출 특성과 결합될 경우 실크는 자신이 흡수한 열 보다 더 많은 열을 복사함으로써 전력없이 시원한 효과를 만들 수 있다.

최승호 박사(왼쪽), 김영래 교수 ⓒ Purdue University
최승호 박사(왼쪽), 김영래 교수 ⓒ Purdue University

이같은 자가냉각 효과를 갖는 물질 역시 자연상태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여겨지던 '메타 물질'로 분류되므로, 이번 연구는 기술적 그리고 과학적으로 다양한 의미를 갖는다.

천연누에고치는 메타물질과 비슷한 특성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경제적으로 대량생산이 가능하다는 점에서 최근 개발된 자가 냉각효과를 가진 고성능 메타소제들을 대체할 지 모른다.

김 교수는 “이 연구는 본질적으로 생체내의 파동현상에 대한 원천연구이기 때문에 앤더슨 응집현상이 바이오 엔지니어링 및 공학분야와 융합되면 ‘완전히’ 새로운 의공학적인 분야를 열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가장 한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인 것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좋은 예” 라고 덧붙였다.

심재율 객원기자
kosinova@hanmail.net
저작권자 2018-02-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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