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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황정은 객원기자
2014-09-23

바람으로 디스플레이를 구동시키다 [인터뷰] 정순문 DGIST 나노바이오연구부문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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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너지는 인류 발전에 있어 반드시 필요한 자원 중 하나다. 하지만 우리가 사용하는 에너지원은 한정된 경우가 많아 보다 안정적으로 무한하게 에너지를 사용할 수 있도록 햇빛, 바람, 물에 대한 연구가 오랜 세월 이어졌다.

이러한 고민은 결국 현대인들이 사용하는 디스플레이로까지 이어졌다. 전력을 사용하지 않고 바람만으로 디스플레이를 구동시킬 수 있다면 어떨까. 다소 엉뚱한 상상 같지만 실제로 국내의 연구진이 이에 대한 연구를 진행했다. 바람으로 구동되는 미케노발광 디스플레이를 개발해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다.

친환경 미케노발광 디스플레이를 개발한 정순문 DGIST 나노바이오연구부문 선임연구원 팀을 만나본다.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에서 아이디어 얻어

정순문 DGIST 나노바이오연구부문 선임연구원 ⓒ DGIST
정순문 DGIST 나노바이오연구부문 선임연구원 ⓒ DGIST

“제가 몸담고 있는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은 대구시 현풍면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현재 연구소 주위에는 다양한 편의 시설이 들어서고 연구기관도 설립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개발이 덜 된 곳이 많지요. 그런 곳에는 주로 보리밭이 있어요.

하루는 동료 연구원들과 점심식사를 한 후 가볍게 산책을 하고 있는데 보리밭의 보리들이 바람에 의해 흔들리는 모습을 보게 됐어요. 당시 연구를 진행하던 중이어서 그 현상을 본 후 미케노발광 재료를 저런 방식으로 배열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물론 바람을 이용하고 싶다는 생각은 그 전에도 하고 있었지만요. 당시에는 생각에 그쳤던 것을 실제 실험실에서 시도해봤는데 예상 외로 구현이 됐습니다. 그 결과 지금의 연구 성과를 낼 수 있었고요.”

정순문 선임연구원은 바람에 흔들리는 보리로부터 그 동안 고민 중이던 미케노발광 재료(ZnS, 황화아연)의 배열문제를 해결할 수 있었다. 미케노발광 재료와 고무의 혼합물을 파이버 형태로 제작해 바람에 의해 이미지가 발광하는 디스플레이를 개발한 것이다.

‘미케노발광’이란 ‘mechanoluminescence’ 라는 영어표현에서 온 단어로, 기계적 힘을 가했을 때 빛이 나는 현상을 의미한다. 정순문 연구원은 “미케노발광은 그 단어를 살펴보면 모든 의미를 찾을 수 있다”며 “‘mechano-’ 라는 접두어에서 알 수 있듯이 기계적인 힘을 재료에 가했을 때 나는 빛이 발생하는 현상을 나타내는 걸 알 수 있다. 즉, ‘mechano-lumiscence’ 라고 생각할 수 있다”고 이야기 했다.

연구팀은 온백색 백열등부터 청백색 형광등까지 다양한 색 온도를 가진 백색 미케노발광을 구현함으로써 미케노발광이 다양한 색의 조명으로 활용할 수 있음을 밝혀냈다. 이는 연구팀이 지난 해 자연현상으로 빛을 발생시키는 미케노발광 필름을 개발한 것에 이어진 내용으로, 정순문 연구팀은 미케노발광을 디스플레이에 적용해 상용화의 길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뿐만 아니라 자연 상에 존재하는 바람 에너지를 이용해 디스플레이 구동에 적용한 만큼, 상용화가 된다면 최근 대두되고 있는 환경 위기 및 자원 위기에 대응할 수 있는 친환경 기술이 될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바람으로 빛을 내는 미케노발광 디스플레이에 대한 개념은 저희 연구팀이 처음으로 제시하는 내용입니다. 따라서 오래전부터 시도돼 왔다든지 이전에 진행됐던 별도의 연구동향은 없다고 할 수 있어요. 다만 미케노발광이라는 현상은 1605년 발표된 바 있습니다. 그 이후로 오랫동안 연구도 돼 왔죠. 그렇지만 현재까지도 정확한 발광 메커니즘은 알려지지 않았고 응용분야 역시 미비한 상태입니다. 응용에 대한 연구가 부족했던 이유는 미케노발광재료에서 발생하는 빛이 밝기나 수명 등에서 매우 부족했기 때문이에요.

이를 극복하기 위해 저희 연구팀은 바람에도 빛이 발생하도록 하기 위해 유연한 고무에 발광재료를 혼합시켜 밝기와 수명을 증가시켰습니다. 더불어 그것에 대한 응용으로 혼합물을 작은 막대기 형태로 배열했고요. 즉 바람이 불면 막대기가 휘게 되고 그 힘으로 인해 빛이 나는 거죠. 또한 색 조절 및 패터닝을 통해 디스플레이로서의 기능을 할 수 있게 됐습니다."

바람으로 구동되는 미케노발광 디스플레이 가상도 ⓒ DGIST
바람으로 구동되는 미케노발광 디스플레이 가상도 ⓒ DGIST

미케노발광 현상, 더욱 파고들 것

정순문 연구팀의 이번 연구결과는 미케노발광 현상을 디스플레이에 접목해 응용한 사례다. 부단한 연구를 거쳐 이러한 응용결과까지 만들 수 있었지만 그 과정은 결코 만만치 않았다. 미케노발광에 대한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활발하지 않다보니 응용의 길을 개척하는 것조차 쉽지 않았던 것이다.

“사실 미케노발광 연구는 우연히 시작하게 됐습니다. 그동안 EL(전계발광) 디바이스를 제작하다가 어느 날 우연히 형광체와 고무를 섞게 됐어요. 그런데 만들어놓은 물질을 나중에 보니 손이나 핀셋으로 건드릴 때마다 빛이 나더군요. 처음에는 정전기 때문에 그런가 싶었는데 그것도 아니었어요. 그래서 혹시 이러한 현상이 원래부터 있는 것인지 인터넷으로 검색을 해봤습니다. ‘마찰’, ‘발광’ 이라는 단어로 검색을 해보니 미케노발광의 일종인 ‘마찰발광(triboluminescence)’이 나오더군요. 당시는 별도의 연구 과제를 수행중이어서 집중적으로 연구하지는 못했어요. 다만 시간적 여유가 있을 때 조금씩 연구를 진행하는 정도였죠. 그러다가 결과가 조금씩 나오면서부터 본격적으로 연구를 시작을 하게 됐습니다.”

그렇게 총 3년의 시간을 들여 이번 연구를 마쳤다. 이렇다 할 선례가 없는 만큼 연구과정도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미케노발광관련 연구가 전 세계적으로 그렇게 활발한 연구 분야가 아닙니다. 연구자가 적다 보니 다른 분야에 비해 논문 출판수도 상대적으로 미비하죠. 현재 한국을 비롯해 전 세계적으로 활발한 다른 연구 분야는 대부분 그 응용이 확실한지 아닌지에 따라서 결정이 되는데, 미케노발광 현상은 아직 확실한 응용이 없다보니 대부분 발표내용이 재료 합성 등에만 국한돼 있습니다.

사실 개인적으로 연구를 수행하면서 여러 가지 우려를 한 게 사실이에요. 기초연구로서는 흥미로운 주제이지만 과연 상용화까지 이어질 수 있을까 싶었던 거죠. 여전히 그러한 고민은 계속 진행 중에 있고요. 물론 지금은 많은 분들이 관심을 가져주시고 흥미롭다고 이야기 하시지만 이러한 관심을 받기 전까지 확신이 없는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하는 게 가장 힘들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면 연구 결과인 해당 디스플레이는 어디서 사용할 수 있을까. 바람이 불어야 하는 구동되는 디스플레이인 만큼 사용처도 다소 한정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에 대해 정순문 연구원은 “주로 옥외에서 사용이 될 것으로 생각된다”며 “다만 일정량의 바람이 항상 부는 곳이 좋을 것 같다. 때문에 아마도 해변 등이 좋은 후보 사용처가 아닐까 생각된다”고 이야기 했다.

“하지만 아직 구체적으로 꼭 어느 곳이 사용하기에 좋다, 라고 말하기는 어려운 상태입니다. 미케노발광을 바람으로 구동한다는 발상은 저희 연구팀이 처음 제시하긴 했지만, 처음인 만큼 아직 더 연구돼야 할 부분이 많거든요. 확실한 사용처라던가 성능개발 면이 바로 그 점이죠. 아쉽지만 아직 성능을 논하기에도 쉽지 않은 단계입니다. 예를 들어 저희가 현재 구현한 디바이스는 소위 태풍이나 허리케인 정도가 불어야 빛이 나는 수준입니다.

하지만 연구팀의 최종목표는 산들바람에도 빛이 나는 디스플레이를 개발하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바람에 잘 휘는 막대기 구조나 바람의 영향에 민감한 구조 등을 개발하는 게 관건이겠죠. 또한 작은 변형에도 빛이 나게끔 미케노발광 재료의 효율을 높이는 것도 필요하고요. 현재는 해당 디스플레이의 성능을 논하기에 좀 이른 단계지만 계속적인 연구를 통해 산들바람에도 빛이 나게끔 할 계획입니다.”

이번 연구는 그간 수백 년 동안 난제로 여겨지던 미케노발광 원천기술의 원리를 밝히고 디스플레이에 적용한 것에 의의가 있다고 볼 수 있다. 정순문 연구원은 “개인적으로는 이번 연구를 통한 시도가 미케노발광 현상을 좀 더 대중적으로도 알릴 수 있는 계기가 됐으면 한다”며 “궁극적으로는 우리팀의 연구가 미케노발광 현상을 상용화 하는데 밑거름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 있다”고 강조했다.

황정은 객원기자
hjuun@naver.com
저작권자 2014-09-2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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