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1일은 동일본 대지진이 일어난 지 2년이 되는 날로 이날 일본 전역에선 크고 작은 추모행사가 열렸다.
하지만 비슷한 시간에 지구촌 곳곳에선 원전 반대 시위가 잇따라 대조적인 모습을 보였다. 2년이 지난 지금, 지진보다 방사능 유출의 끔찍한 모습이 더욱 뇌리에 각인되고 있는 가운데 방호복과 마스크로 중무장한 후쿠시마 원전 작업원들의 비참한 모습은 원전 반대 시위에 더욱 불을 당기고 있다.
지난해 7월 일본 국회조사위는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자연재해가 아니라 명백한 인재였다”고 최종 보고서를 냈다. 이에 반대론자들이 "원전은 대재앙의 시한한폭탄일 뿐이다"며 가일층 반대의 목소리를 높이는 가운데 “원자력 발전은 지구촌 에너지 고갈의 유일한 해결사”라고 주장하는 찬성론자들과의 줄다리기가 더욱 팽팽해지고 있다. 과연 어느 쪽이 옳은 것인가?
100여 개의 경보장치 도움 안돼
1979년 미국 펜실베니아 주 외각에 있는 ‘TMI(Three Mile Island)’ 2 원자력 발전소에서 주급수펌프가 자동 정지했다.
전문가들은 “원자력 발전의 경우에는 냉각수 계통에 문제가 생기면 원자로가 녹는 최악의 피해를 막기 위해 비상 노심 냉각 계통을 통해서 물을 강제적으로 주입하는 기능을 갖고 있다”고 설명한다.
가압경수로를 채택하고 있는 TMI 2 원자로는 주급수 계통이 고장나면 보조급수 계통에서 물을 자동으로 공급한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처음 8분 동안은 보조급수가 이뤄지지 않았다. 정비 후 밸브를 열어놓고 원위치 시키지 않았던 실수가 나중에 드러났다.
냉각수가 공급되지 않으면 원자로 내부의 1차 계통에 흐르는 냉각수의 증기 압력과 온도가 올라간다. 이로써 압력을 떨어뜨리기 위한 가압기의 동력구동밸브(PORV)가 자동으로 열리고, 이곳을 통해서 냉각수가 빠져나가게 된다. 이후 냉각수 양이 줄어들고 압력이 떨어지게 되면 비상 노심 냉각시스템이 자동으로 작동하는 구조로 이뤄져 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이 동력구동밸브가 고장으로 닫히지 않았으며 주조종실의 계기판에는 이 밸브가 닫힌 것으로 나타난 것. 비상 주입된 냉각수가 빠져나가고 있는데 운전원은 가압기가 물로 찰 것을 우려해 비상냉각시스템을 수동으로 정지시켜 버린 것이다.
결국 원자로 내부에 물이 보충되지 않으면서 냉각수 부족으로 원자로가 녹고 방사능 물질이 원자로 건물 안에까지 흘러나오는 사고가 일어났다. 사고 당시 주 제어실에는 100개 이상의 자동경보장치가 작동, 수없이 소리를 울려댔으나 운전원들은 그 경보를 이해하지 못했다. 하드웨어 고장, 계측기 고장, 운전원 실수 등이 빚어낸 총체적인 사고였던 것이다. 그러나 이는 7년 후에 터진 사고의 전주곡에 불과했다.
인재는 막을 수 있다
1986년 4월 26일 소련 연방의 키에프시 남방 130km에 소재한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의 4호기 지붕이 거대한 굉음을 내며 날아가 버렸다. 8톤의 방사능 물질도 동시에 대기 중에 확산됐다. 이 역시 설계 잘못과 냉각수 펌프를 관리하는 운전원들의 판단 미스, 무리한 안전검사 등이 빚어낸 최악의 원전 참사로 기록됐다.
이날 밤 체르노빌 원전 4호기에는 정전과 같은 비상시에 대비한 안전검사가 예정되어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날 당직 운전원들 사이에는 원활한 업무 협조가 전혀 이뤄지지 않았음이 사고 후에 밝혀졌다.
사고가 있던 날, 두 명의 운전원이 4호기의 작동과정을 교대로 감시하고 있는 가운데 한 쪽에선 안전검사가 이뤄지고 있었다. 통상적으로 운전원들은 원자로의 압력과 온도 그리고 냉각수 공급의 균형을 맞추는 일을 한다. 압력과 온도가 올라가면 냉각수 공급을 조절, 제어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날 안전검사로 인해 냉각수 공급은 정상 때와 달랐다. 대체 냉각수를 끌어오고 이를 보조펌프로 4호기에 공급하는 중에 냉각수의 공급 속도가 너무 빨라지면서 터빈의 회전에 문제가 생긴 것. 전문가들은 “계통에서 물이 너무 빨리 흐르게 되면 터빈을 돌릴 수 있는 충분한 양의 증기 생성이 이뤄지지 않는다”고 설명한다.
이때 운전원이 증기 생성을 위해 제어봉을 규정치 이하로 줄였고, 같은 시각에 안전검사를 하던 검사원은 터빈의 공급 스위치를 끈 것이다. 결국 노심에 흐르던 냉각수는 완전히 멈췄고, 핵분열은 계속 이뤄지는 초유의 사태가 빚어졌다. 그 결과는 고온, 고압에 의한 엄청난 노심 폭발로 이어졌다. 사고 후 현장에 있던 운전원들은 10년의 장기 징역에 처해졌고, 관련자들도 모두 처벌을 면치 못했다.
지난 2011년 발생한 후쿠시마 원전 사고도 결국 자연재해에서 인재로 밝혀지면서 원전 사고를 줄일 수 있다는 희망의 불씨도 점차 타오르고 있다. 세계 각국에서 향후 대형 참사로 이어질 수 있는 원전 사고의 인재를 줄이기 위한 연구가 다각적으로 이뤄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과학기술원의 성풍현 교수는 “원전의 주제어실의 계기판은 기존 아날로그에서 디지털 방식으로 바뀌고 있다”며 “상황 판단을 돕기 위한 고장진단시스템, 운전절차서, 올바른 운전을 위해 시스템이 판단하고 그 영향을 평가하는 장치 개발을 통해 운전원의 실수를 사전에 방지할 수 있는 연구가 이뤄지고 있다”고 말했다.
- 조행만 객원기자
- chohang3@empal.com
- 저작권자 2013-03-1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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