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적 질문은 미지의 세계로의 여행이다. 각 단계의 진전은 전혀 예측하지 못한 새로운 발전을 이루었고 비일상적이며 때로는 전혀 다른 개념으로 우리의 정신에 도전해왔다.” -폴 데이비스-
이미지는 메시지다. 실제 우리가 종종 우를 범하는 것은 이미지는 단지 허상으로만 머무는 것으로 이해하는 ‘오류의 이해’다. 따라서 영상에서 보이는 이미지는 또 다른 문자이며 논리이자 주장이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는 영화가 우리에게 미치는 의식적, 무의식적인 영향력을 고려해 볼 때 그 안에 나타난 과학의 이미지를 되돌아보는 작업은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방금 위에서 말한 것처럼 영화에서 과학의 이미지는 어떠한가?
밀레니엄이라는 말이 이제는 별 두려움 없이 받아들여지고 있지만 사실 밀레니엄을 몇 년 앞두고 우리 사회에 전해진 2000년은 매우 소란스러웠고 다소 공포와 우려가 함께 나타난 시기였다. 이름이 널리 알려진 예언가의 말을 빌어 지구종말론을 이야기하는 사람도 심심치 않게 등장하고 Y2K라는 컴퓨터 오류인식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혼란이 극심해져 금융공황 및 경제대란 그리고 종국에는 커다란 전쟁까지 발발할지 모른다는 호들갑스러운 진단 등 그야말로 유난스러운 시절이었다.
그 시절에 나온 두 편의 영화를 보자. 하나는 브루스 윌리스 주연의 <아마겟돈>(1998)이었고 다른 한 편은 미미 레더의 <딥 임팩트>(1998)였다. 그 두 영화 모두 재난영화라고 범주를 분류할 수 있는 장르이며 다른 한 편 그 당시 우리 시대의 불안한 심리를 영상으로 재현한 심리적 영화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기에서 우리가 주목하고 바라보아야 할 것은 이 영화가 그 당시 밀레니엄을 두고 사람들이, 시대가 안고있는 심리가 드러난 면이 아니라 그 영화에서 과학자 혹은 과학이 상징하는 이미지에 대한 것이다.
우선 많은 재난영화 혹은 과학과 필연적인 관계를 맺을 수밖에 없는 영화에 나타난 과학의 이미지는 ‘쓸모없음’이다. 즉 밀레니엄 시대 혹은 이런 유사 재난영화들은 과학자들을 결코 중요한 자리에 올려놓지 않았다. 대부분의 그들은 인간의 오만이나 기술에 대한 만능을 비판하는 시각을 부각시켜 오히려 지금껏 인류가 지키면서 쌓아온 지식과 기술에 대한 업적을 인정하지 않는 방향으로 흐름을 이어간 것이다.
위에 예를 소개한 <딥 임팩트>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 영화에서 지구를 위기로 몰고 가는 혜성을 발견한 것은 과학자가 아니라 14세의 레오 베이더만이다. 또한 마이클 베이의 <아마겟돈> 에서 인류가 위기상황에 닥칠 때 모든 것을 책임지고 영웅이 되는 인물은 그 상황을 가장 정확하고 제대로 이해하고 있는 과학자가 아니다. 홀로 딸을 키우며 사는 거칠고 무식하기 이를 데 없는 굴착전문가 해리 스템퍼가 인류를 구원한다. 혜성과의 충돌을 통해 인류의 위기를 보여주는 두 편의 영화에서 과학을 천대시하는 것은 인류의 지식이 무용지물이다라는 설정에 출발한다. 이렇듯 영화에서 보여지는 과학의 이미지는 ‘오만 혹은 결정적일 때는 무용지물’이라는 편견에 사로잡혀 있다. 사실 이러한 편견은 비단 이 영화에만 지배적으로 담겨있는 것은 아니다.
<고질라>나 <미믹>,
그러나 이러한 편견의 그림자를 정확하게 통찰한 내용은 1959년 스노우가 쓴 유명한 저서 <두 문화와 과학혁명>에 잘 담겨있다. 이 책에서 스노우는 문과계열의 지식인과 이과계열의 지식인이 전혀 다른 세계에 살고 있으며 상대를 전혀 이해하려 하지 않을 뿐 아니라 적대감과 혐오감까지 가지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또한 “유럽에서 현명한 인물로 평가받는 사람들 대부분은 물리학에 대해서 석기 시대 사람들 정도의 통찰력밖에 가지고 있지 않다”고 지적하고 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가 이러한 영화 속의 과학이미지를 통해 무엇을 이해해야 하는 것일까? 그렇다. 결국 우리에게 자문을 던질 것은 영화 안이든 밖이든, 현실이든 상상에서든, 우리가 지니고 있는 과학에 대한 이미지이다. 이제 우리는 '과학의 정체성'에 대해서 자각할 때가 되었다. 디지털이 이제는 결코 사이버스페이스에서만 존재하지 않는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워쇼스키형제의 <매트릭스>처럼 이러한 다양한 과학기술의 정체성도 결코 추상에만 존재하지 않고 우리 사회구조와 가치관, 제도에서 명확하게 그 모습을 자립잡고 있음을 깨달아야 한다.
그것은 과학에 대한 사이비 비판의식은 우리 사회와 세계에 고통을 가중시키고 처참하게 만들었으며 또한 인간에게는 새로운 병을 만들어 내고 서글픈 퇴보를 가져오는 '영화속의 현실'때문이다. 따라서 이제 우리는 과학이 우리 정신과 제도에 뿌리를 둔 후손이라는 깨달음이 필요하다. 그래서 영화 속에 나타난 과학의 이미지가 더 이상 과학적 지식을 오도하지 않고 정확한 과학지식의 이해에 기반을 둔 현실을 반영할 때 지금 우리 사회가 앓고 있는 많은 병리적 문제를 회피가 아닌 과학적이고 지혜로운 접근으로 우리시대의 창조력과 상상력을 이끌어 갈 수 있을 것이다. 결국 과학이미지는 지금 우리 현실의 이미지인 것이다.
/양대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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