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반세기 전인 1959년, 영국의 C.P. 스노우경은 캠브리지 대학의 리드강연에서 ‘두 문화와 과학혁명’이란 주제로 역사적인 강연을 했다. 스노우는 “과학적인 문화와 인문학적인 문화의 심각한 괴리가 사회발전의 근본적인 장애가 되고 있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그 후 반세기가 지났지만 여전히 두 문화 간의 간격은 크게 좁혀지지 않고 있는 듯하다.
‘21세기가 문화의 시대’라는 이야기는 귀가 따갑도록 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현실을 들여다 보면 문화에 대한 대중의 이해는 여전히 조야하다. 이렇게 문화에 대한 대중적 이해의 수준이 낮은 상황에서 더 고차적인 문화인 ‘과학문화’의 중요성을 외친다는 것은 역시 ‘찻잔 속의 태풍’으로 보일 뿐이다.
어쨌거나 문화는 오늘날 가장 중요한 화두 중의 하나다. 과학계도 문화를 이야기하고 있고 인문학자들도 문화를 이야기한다. 이 두 개 지성집단이 이야기하는 각각의 문화는 어떻게 다른가. 그리고 복수형의 두 문화(Two cultures)가 단수형의 문화(Culture)로 융합될 수는 없는 것일까. 이런 문제를 깊이 생각하기 전에 우선 우리는 문화에 대한 근본적인 논의부터 다시 시작해야 할 것 같다.
문화란 무엇인가? 문화는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우리의 일상 속에 뿌리내리고 있고 인류역사와 궤를 같이해 온 것이 바로 문화지만, 사실 문화만큼 정의하기 힘든 개념도 드물 것이다. 사람마다, 민족마다, 시대마다, 지역마다 문화에 대한 정의는 달라질 수 있고, 사실은 문화에 대한 합의된 정의도 여전히 부재한 상태다.
원래 문화라는 용어는 라틴어의 cultura에서 파생된 말이다. 본래의 뜻은 경작(耕作)이나 재배(栽培)였는데, 나중에는 ‘교양이나 예술’ 등의 뜻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문화인은 교양인이나 예술인과 비슷한 의미로 사용되기도 한다.
우리는 문화라는 단어를 일상적으로 사용하는데, 이 문화라는 용어는 맥락에 따라 다른 의미를 갖는다. 우선은 ‘좋은 취미로서의 문화(culture as good taste)’이다. 훌륭한 예술을 알고 오페라 구경을 가고 프랑스 음식을 즐기는 사람을 문화인(文化人)이라고 한다면 이 때의 문화는 ‘고급스런 취향’이란 의미의 문화이다. 두 번째는 ‘한 사회 및 그 사회와 관련된 모든 것을 지칭하는 넓은 의미로서의 문화(culture as everything)’인데 프랑스 문화, 西歐文化 등의 용어에서 사용되는 문화이다. 세 번째는 사회학자들이나 사회과학자들이 문화를 언급할 때 사용하는 ‘문화’이다. 이때의 문화는 ‘지식과 가치체계로서의 문화(culture as knowledge and belief systems)’라는 의미를 갖는다.
또한 사회학에서는 문화에 대한 정의를 크게 광의의 정의와 협의의 정의로 나누기도 한다. 광의의 문화는 사회적 인간이 역사적으로 만들어낸 모든 물질적, 정신적 소산을 말하는 것인데, 이 중 정신적인 산물을 물질문명과 구분하여 ‘협의의 문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좀 단순화시켜 이해하자면 가치나 신념, 사고방식이나 이론, 철학, 생활양식 등 무형의 측면은 문화이고, 기계나 건축물, 발명품 등 물질적 산물은 문명이라고 한다는 것이다.
정신문명, 물질문화라는 말은 어쩐지 어색하고 정신문화, 물질문명이라는 말이 자연스러운 것은 바로 이 때문이다. 물론 이런 식의 구분은 문화와 문명을 구분하는 독일철학의 영향이 크다. 독일어에서는 문화를 의미하는 Kultur와 문명을 뜻하는 Zivilisation가 본질적으로 다른 두 영역이다.
문화에 대해서는 수많은 정의들이 있지만 그 중 가장 빈번하게 인용되고 가장 널리 통용되는 정의는 영국의 인류학자 에드워드 버넷 타일러(Sir Edward Burnett Tylor, 1832-1917)의 정의다. 문화인류학의 창시자로 여겨지는 타일러는 자신의 저서 『원시문화 Primitive Culture(1871)』에서 문화를 “지식, 신앙, 예술, 도덕, 법률, 관습 등 인간이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획득한 능력 또는 습관의 총체”라고 포괄적으로 정의했다.
그렇다면 과학은 뭔가? 과학도 문화인가? 만약 타일러가 지식, 신앙, 법률 등과 함께 과학도 함께 열거했다면 지식인들이 과학도 문화의 중요한 한 부분으로 인식했을 텐데, 그러지 않았기에 문화적 담론을 주도하는 인문학자들에게 있어서 과학을 문화로 받아들이는 데는 여전히 다소의 선입견이 존재하는 듯하다. 하지만 타일러의 정의를 곱씹어 본다면 인문사회학적 관점에서 본 과학은 분명한 문화이다. 그것도 타일러의 정의에 딱 들어맞는 전형적인 문화라고 할 수 있다.
과학은 자연발생적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지적활동의 산물이다. 과학은 인간이 자연을 알고 인식하는 과정의 산물이며 사회의 구성원으로 획득한 능력의 일부이다. 그렇다면 ‘과학도 문화인가’라는 질문은 우문이다. 오히려 과학이야말로 인간이 역사적으로 살면서 만들어낸 문화적 산물 중 가장 중요한 요소다. 과학자들 역시 과학은 인간이 만들어낸 문화 중 가장 중요한 것임을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과학문화는 서로 다른 영역인 '과학'과 '문화'가 만나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과학이 사회 속에서 문화로서 자리잡는 것이다. 스노우경은 과학과 인문학의 차이를 이야기한 것이 아니라 과학적인 문화와 인문학적 문화라는 두 문화의 괴리를 이야기했던 것이다.
- 최연구 과학문화재단 박사
- choiyg@ksf.or.kr
- 저작권자 2005-11-28 ⓒ ScienceTimes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