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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03-11

자연과 과학의 조우, 미국 자연사박물관 정혜경 동의대학교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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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센트럴 파크 서쪽에 위치한 ‘미국 자연사박물관(American Museum of Natural History)’은 9만 평방미터의 면적에 수십억 년 지구 역사의 예술품들이 가득한 보고다.


3200만 점이 넘는 전시 컬렉션은 북아메리카·아프리카·아시아 포유동물의 생태계 표본, 공룡 100여 종의 골격과 화석, 29 미터 실물크기의 푸른 고래모델, 세계 최대의 사파이어인 ‘인도의 별(Star of India, 563 캐럿)’ 등 지구상의 생물권과 환경권의 자료는 물론 토템 기둥, 150cm 단신 하이다(Haida)족의 조각상, 북서 아메리카인의 전투용 카누 그림 등 인간 문명의 산물까지 포함하고 있다.


아울러 대형 스크린의 아이맥스 영화관, 지름 23m에 이르는 스카이 시어터 등의 부대시설은 미국 자연사 박물관을 뉴욕 시민은 물론 수백만 뉴욕 방문객들의 필수 방문 코스로 만들고 있다.


뿐만 아니라 설립 이래 세계 자연탐사 활동의 일선에 직접 나섬으로써 자연사 및 자연과학 연구와 관련한 박물관의 위상을 강화시켜 왔으며, 자연과 과학의 의의와 가치에 대한 사회 대중의 이해와 참여를 증진시키는 교육기관의 역할 역시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을 통해 21세기 지식기반 사회의 과학기술 인프라로서 박물관이 지향해야 할 역할과 위상에 대해 살펴보자.


미국 자연사박물관은 뉴욕시가 자연과학 연구와 지식의 보급에 기여하고자 1869년에 설립한 것이다. 당시 19세기 후반은 자연사에 대한 각계의 고조되는 관심에도 불구하고 아직 그에 대한 포괄적인 이해는 요원한 시기였다. 즉, 다윈의 『종의 기원』이 발표된 지 겨우 10년으로 진화론과 생명에 대한 자연사적 규명이 과도기적인 혼란을 겪고 있던 상태였고, 지구 역사 및 생명체의 유기적 구조에 대한 통시적인 지식체계는커녕 동시대 지구상의 공간에 대한 탐사조차 채 완결되기 전이었다.


수집이 용이한 조류·패류의 박제와 표본이 주를 이루었던 아마추어 수준의 컬렉션에서 출발한 미국 자연사 박물관은 그러나 19세기 말과 20세기 초 세계 자연탐사의 황금기를 통해 직접 탐사대를 파견하는 등 적극적으로 수집물의 성장과 확대를 이루어 나갔다.


이러한 탐사활동의 대표적인 것으로는 북서 아메리카와 시베리아 원주민 고유의 문화를 조명한 보애스(Franz Boas)의 인류학 탐사, 최초로 공룡 티라노사우루스의 발견을 가져온 브라운(Barnum Brown)의 미 서부대륙 탐사, 공룡 화석의 보고인 고비(Gobi)사막의 빗장을 연 앤드류(Roy Chapman Andrew)의 탐사 등을 들 수 있다. 특히 아프리카 대륙의 거대한 생태계를 애클리(Carl Akeley)의 탐사를 토대로 재현해낸 디오라마(diorama) 전시는 오늘날에도 박물관의 자랑거리의 하나이다.


설립 이래 125년에 걸쳐 추진·파견한 100여 건 이상의 탐사 결과를 토대로, 미국 자연사박물관은 박물관의 기본 요건인 전시 콘텐츠의 확대를 이루어냈을 뿐 아니라, 질적으로는 자연 서식지와 동식물의 생태를 보여주는 입체·실물 모형 제작과 현지탐사 장면의 전시분야를 개척하였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은 위와 같은 과정을 통해 축적한 기초 자료를 전시 외연의 확대 뿐 아니라 생물 유기체의 구조 및 생명체의 진화, 문화의 다양성을 둘러싼 새로운 이론의 탐색 원천으로 활용하였다. 이는 박물관 자체적으로 연구 조직과 인력을 갖추고 연구기관으로서의 기능을 강화시켜 나감으로써 가능한 일이었다.


미국 인류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보애스(Franz Boas)의 제자이자 현대 인류학의 거두인 미드(Margaret Mead)를 비롯하여, 1940년대에 다윈의 진화론을 유전학, 고생물학, 생태학 및 분류학과 결합시켜 이른바 종합진화설로 발전시켜 현대생물학의 등장에 커다란 역할을 수행한 마이어(Ernst Mayr)와 심슨(George Simpson)등이 바로 이 박물관의 수뇌들이었다.


나아가 1970년대와 80년대 미국 자연사 박물관의 과학자들은 생명체의 분기적 패턴의 진화 관계, 종간 관계 및 분류상의 배열 규명에 혁명적인 접근법을 제공하는 분류학상의 다양한 성과를 제시하여 새로운 차원의 진화과학의 가능성을 열었으며, 동시에 박물관의 연구 외연을 기존의 고생물학으로부터 비교분자생물학으로까지 확대시킴으로써 ‘박물관’의 이미지에 부여된 연구영역의 한계를 스스로 타파해 나갔다.


대학이 아닌 박물관에서, 과거 유물에 대한 되새김질만 되풀이하고 있으리라는 편견과 장벽을 깨고 자체적으로 인적·사회적 네트워크를 활용하여 새로운 분야의 개척에 나선 것이다.


1990년대 이후로는 박물관에서의 과학연구가 IT/BT기술의 응용과 학제간 연구경향의 대세에 발맞추어 컴퓨터 DB기술, 영상기술, 게놈연구 등의 첨단 기술과 이론을 수용함으로써 그 질과 경쟁력을 강화하고 있다. 이제 미국 자연사 박물관은 유전자의 비밀, 생물상(biota), 지구의 기능과 역사, 생명다양성, 종의 보존과 진화, 문화다양성 등 역동성으로 가득 차 있는 새로운 연구 분야에 대한 방향을 설정함으로써 과거의 유산에 첨단의 도전을 더하고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중요한 면모로 자연사를 매개로 한 과학대중화 프로그램을 들 수 있다. 특히 눈길을 끄는 『Ology』는 초중등 연령층을 대상으로 자연세계의 경이로움을 체험케 하고 과학적 호기심을 고양하는 프로그램이다.


‘자연의 심층연구’라는 의미를 가진 Ology 프로그램은 고생물학, 천문학, 고고학, 유전학, 해양생물학, 물리과학 등의 분야에서 박물관이 축적해 온 연구결과, 체험자료, 전시물 등을 게임, 과학자와의 만남, 토론, 독서 지도, 퀴즈 놀이라는 레크리에이션의 틀로 잘 포장하고 있다. 이를 통해 인체의 경이로움, 동식물상, 대양의 생물, 생물다양성, 신세계 원주민의 문화, 우주의 신비 등에 관한 체험 제공과 의미 부여를 실현하고 있는 것이다.


이러한 과학대중화 프로그램은 박물관 건립 취지와도 맞닿아 있는 것으로, 당시 급속하게 진행되던 과학의 전문화 담론과 일반대중의 교육 및 계몽 사이의 접점 추구가 박물관 설립운동을 통해 가능해진 것이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은 자연사를 도구삼아 대중교육과 레크리에이션 서비스가 결합된 자연과학의 진흥 활동을 펴는 사회간접 자본으로서의 역할을 수행하고 있는 것이다.


21세기 지식기반사회에 대응하기 위해 전세계가 과학기술에 대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미래의 과학기술 공급자이자 수요자인 어린 세대들의 과학에 대한 자연스러운 접근을 가능케 하는 교육이 갈수록 화두가 되고 있다. 자연에 대한 이해는 바로 인류의 역사를 이해하는 시발점이며, 자연의 체계와 원리를 알아야 인류와 함께 과학이 발전해 온 길을 이해할 수 있다는 측면에서 자연사 박물관은 미래 세대를 위한 핵심 과학시설인 것이다.


미국 자연사박물관의 방대한 자연 표본과 문화유산들은 지구상 7대륙에 걸친 오랜 탐사와 연구의 산물이며, 자연의 발견과 문화의 의미를 규명하면서 일반 시민의 보편적 과학적 소양을 고양하고자 하는 일련의 활동들은 오늘날 박물관을 죽어 있는 전시물의 집합소가 아니라 자연과 과학의 조우가 이루어지는 장소로 만들고 있다. 아직까지 국립 자연사박물관을 보유하지 못한 우리로서는 참고할 만하다.

저작권자 2005-03-11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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