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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11-29

[데스티네이션]과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 [연재] 과학이 숨쉬는 SF영화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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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연 / 데본 사와, 알리 카터

감독 / 제임스 웡

제작년도 / 2000년

비디오 출시


몇년 전 개봉되었던 영화 <데스티네이션>은 딱히 장르를 구분하기가 모호한 작품이었다. 물론 공포영화임에는 틀림없지만, 등장인물들의 목숨을 차례로 앗아가는 것은 영화의 원래제목인 '최종운명(Final Destination)' 그 자체이다.


잔혹한 살인마가 나오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수수께끼의 외계인이 배후에 있지도 않다. (여담이지만 이 영화는 유명한 TV연속극인 의 스탭들이 모여서 제작한 것이다.)


사람들은 그냥 하나같이 우연한 사고로 죽어간다. 불과 1미터만 비켜 서 있었어도 멀쩡할 것을, '재수없이' 지나가는 차에 치이거나 날아온 금속 파편에 맞거나 하는 식으로. 그 과정에서 모든 일을 어렴풋이 예지하고 나름대로 '운명'을 막아보려는 고교생이 주인공으로 나온다. 아무튼 이 영화는 그 어떤 공포물보다도 섬뜩하고 무시무시한 분위기를 자아내는데 성공한 작품이었다.


<데스티네이션>에서 잘 묘사했듯이, 세상에는 과학으로 설명되지 않는 일들이 많이 있다. 유령이니 초능력이니 하는 것들이 대표적인데, 이런 것들은 '의사과학,사이비과학'이라고 하여 아직까지는 정통과학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러나 어쨌든 과학적 관심의 대상은 되고 있는 셈인데, 반면에 그 정도의 과학적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지조차 모호한 영역들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바로 이 영화에서 다루어진 '우연'이다.


흔히 '우연치고는 너무나 이상한 일'이라는 표현을 쓴다. 실제로 생활하면서 그런 일을 겪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아마 주변 사람들 누구라도 그런 경험을 한두가지씩은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과연 그 모든 것들이 단순히 '우연의 일치'에 지나지 않는 것일까?


저명한 심리학자 칼 융이나 작가 아서 케슬러, 콜린 윌슨, 또 노벨물리학상 수상자 볼프강 파울리 등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에 대해 진지한 고찰을 남기고 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들은 우연의 배후에는 뭔가 아직은 설명할 수 없는 원리가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그들이 조사한 수백 가지의 사례들 중에 다음과 같은 얘기들이 있다.


미국 시카고의 한 컬럼니스트가 런던에 가서 사보이 호텔에 투숙했다. 그가 무심코 객실 책상의 서랍을 열어보니 그 안에 누군가 잊어버리고 두고 간 소지품이 있었는데, 자세히 보니 자기 친구의 것이었다. 그런데 이틀 뒤, 그 컬럼니스트는 바로 그 친구로부터 편지 한 통을 받았다.


'믿기지 않겠지만, 난 지금 파리의 한 호텔에 묵고 있는데, 객실 책상 서랍에서 자네의 넥타이를 발견했다네! 자네 이름이 새겨진 넥타이를 말이야.' 그 칼럼니스트는 몇 달 전 파리에 가서 그 호텔에 투숙한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이런 예도 있다. <갈매니 조나단>으로 유명한 작가 리처드 바크는 취미로 경비행기 조종을 즐겼는데, 1966년에 자신의 비행기를 몰고 미국 중서부 유람을 다닌 일이 있다.


그의 비행기는 1929년에 제작되었으며 통틀어 8대 밖에 생산되지않은 아주 귀한 기종이었다. 하루는 위스컨신 주에서 그의 친구가 그 비행기를 빌려서 몰다가 그만 착륙할 때 곤두박질을 쳐서 기체가 일부 손상되어 버렸다.


바크와 그의 친구는 수리를 해서 망가진 부분을 전부 다 고쳤지만, 단 한 가지 부품만은 도저히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그 기종에 맞는 부품이 아니면 손 쓸 방법이 없었던 것이다.


그런데 그들을 지켜보고 있던 마을 사람 하나가 다가와서 도움이 필요하냐고 물었다. 도움이 될리가 만무했지만 - 37년전에 단 8대 밖에 만들어지지않은 비행기의 부품을 넓은 미국 땅덩어리 아무데서나 구한다는건 사실상 불가능하므로 - , 놀랍게도 그 사람은 터덜터덜 가까운 격납고로 걸어가더니 필요한 부품을 가져다 주었다는 것이다. 이 놀라운 사실을 경험하고서 바크는 <우연은 없다>라는 책을 내기도 했다.


융과 파울리는 이 놀라운 우연들에 대해서 단순히 '우연(coincidence)'으로 표현하지 않고 '싱크로니시티(synchronicity:동시성)'라는 용어를 썼다. 과학자들은 놀라운 우연의 일치들은 뭔가 아직 인간이 밝혀내지 못한 미지의 입자나 두뇌작용 등이 관계되어 있다고 생각한다.


영국의 과학자 돕스는 '사이트론(psitron)'이라는 입자가 시공간을 파도처럼 휩쓸고 지나가면서 현재와 미래의 사건들을 유기적으로 묶는 메신저 역할을 한다고 생각했다. 이 때 인간의 의지나 욕망 등이 개입되지만 두뇌와는 무의식적 차원에서 교감하기 때문에 사람들이 전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융은 인간의 기억들이 모여있는 거대한 저장고가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 보이지 않는 저장고의 그물망이 얽혀서 사람들 간에 무의식적인 통신이 일어나며 그 결과가 우연으로 나타난다는 것이다.


<데스티네이션>에서 주인공은 처음에 비행기 사고로 죽을 운명이었지만, 이룩 직전에 환각을 통해 사고를 미리 보고는 소동을 일으키며 비행기에서 내린다.


그 와중에 소동에 휘말린 다른 사람들도 따라 내려서 모두들 목숨을 건지는데, 그 이후로 살아난 사람들이 하나둘씩 우연한 사고로 죽어가는 것이다. 이에 대해 주인공은 자신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이 비행기 사고때 죽었어야 하지만 운명을 거슬러 살아났기에 다시 죽음의 운명이 찾아온다고 믿었다.


앞서 여러 학자들이 내놓은 가설들을 염두에 두고 보면, 이 영화의 내용은 비록 허구이긴 하지만 우연의 과학을 이론화 할 수 있는 강력한 토대가 되는 셈이다.


'현실은 소설보다도 더 허구적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실제로 세상에는 이 영화보다 더 믿기지 않는 일들이 심심찮게 일어난다. 아마 21세기에는 '싱크로니시티'가 과학의 새로운 영역이 될 지도 모를 일이다.


박상준 (SF/과학해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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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작권자 2004-11-2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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