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정부가 앞장서서 과학문화란 말을 쓰기 시작한 지도 여러 해가 되었다. 이제는 '과학문화'가 전혀 낯설지 않은 말이다. 그러나 학계에서는 도대체 과학문화가 무엇이냐를 둘러싸고 말이 많다.
나는 과학문화를 정확히 정의하려는 노력을 부질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문화란 말을 가장 즐겨쓰는 사람들은 일본사람들인것 같다. 정치, 경제, 체육... 아무데나 문화를 붙인다. 대학의 과이름에도 문화가 많이 들어있다. 문화가 덧붙여지면 뜻이 모호해지지만 딱딱한 말이 부드러워지는 효과가 있다.
'과학'하면 접근하기 어렵다고 보는 것이 일반일들의 통념이다. 그런데 '과학문화'는 어쩐지 따뜻하고 친근감이 간다. 이것 하나만 보아도 '과학문화'는 쓸모있고 좋은 말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몰라도 좋다. 차디찬 과학을 따뜻하게 하고 인간미마저 풍기게 하니 얼마나 좋은 말인가!
과학문화는 과학을 인간화하는 것이다. 다시말해 과학에 인문학적인 요소를 도입하는 것이다. 본디 과학은 출발할 때 우주론으로서 철학과 독같은말이었다. 소크라테스때 윤리가 철학에 추가되었지만 오랫동안 철학과 과학은 한덩어리의 지식을 가리키는 말이었다. 16,17세기에 일어난 과학혁명은 과학과 인문학이 분열하게 된 비극의 시작이었다. 과학은 그때부터 인문적인 냄새를 없애면서 무서운속도로 수학화, 기계화의 길을 달렸다. 그러나 케플러의 천문학은 점성술, 신학, 철학, 음악과 뒤범벅이었고 뉴튼 물리학은 연금술, 신학, 철학과 뗄수 없는 관계 였다.
18세기 라마르크의 진화론을 다룬 책 이름은 '동물철학'이었다. 19세기 돌튼의 '화학철학의 새 체계'는 화학적 원자론이었고 오스트발트의'가치철학'은 에너지 보존법칙이었다. 오늘날에도 스코틀란드 대학에서는 물리학을 자연철학이라 부른다.
1959년 영국의 물리학자겸 작가 스노우는 '두문화'의 문제를 제기했다. 과학과 인문학이 나누어져 서로 이해하지 못하고 갈등을 일으킴을 개탄한 것이다.
'두 문화'의 위기는 과학과 인문학이 대립을 그치고 협조함으로써 극복할 수 있다. 이것이 쉬운일은 아니나 두 분야가 오랫동안 둘이 아닌 하나였다는 사실을 문제해결의 실마리가 될 수 있다.
20세기 후반 등장한 '과학기술학(STS)'은 과학기술과 인문·사회과학의 경계영역으로서 갈라진 문화의 화해를 크게 도울 수 있다. 과학기술학에는 과학사, 과학철학처럼 오래된 분야가 있지만 '과학과 문학' '과학과 미술' '과학과음악' 같은 새로자라나는 분야들도 있다. 과학문화가 무엇이냐고 논란을 벌이기 보다는 과학기술학을 키워 과학문화의 기초를 다지는 일이 급하다. 세기말 과학기술부의 결단으로 출발한 과학문화연구센터가 이일을 맡아 줄 것이다.
<송상용 한양대 석좌교수, '과학문화' 기고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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