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회에서 직업을 대하는 태도는 그 사회의 문화를 반영한다. 직업구조의 변화나 새로운 직업의 발생으로 ‘미래의 유망직업’을 분류하는 기준은 물론, 직업 위계와 직업 위신은 더욱 그렇다. 필립 셀즈닉(Philip Selznick) 버클리대학교 사회학 교수는 “직업 위신은 사회구성원들이 어떤 직업에 대해 일반적으로 가지는 권위, 중요성, 가치, 존경에 대한 인식과 평가”라고 정의한 바 있다. 따라서 직업에 대한 사회적 인식, 순위, 선호도 등은 한 사회의 지표이기도 하다.
그런데 최근 아주 오랫동안 고착화한 인식에 대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노동시장에서 관행처럼 여겨졌던 성별직업분리 인식이 바로 그것이다. 성별직업분리는 특수성과 숙련도, 전문성 등과는 별개로 성별 요인에 따라 직업이 나눠지는 현상을 말한다. 여성과 남성의 직무 및 직업을 분리해서 특정 직업에 과잉·과소 분포되는 이 현상이 사회 전체의 질적문제 패러다임으로 해석되면서, 정부의 정책과 산업계 전반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했다. 특히 성별직업분리가 심각했던 과학계와 기술계는 ‘성별’이 아닌 ‘역량’에 초점을 둔 인재를 유입시켜 혁신성장 가속화를 위한 환경을 조성하고 있다.
사이언스타임즈는 정부가 추진 중인 ‘제4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이 마무리되는 시점에 맞춰 현재 산업현장에서 활발하게 일하고 있는 두 명의 ‘여성 리더’를 만났다. 아마존웹서비스코리아(이하 AWS) 이수정 에듀테크사업 총괄과 박혜영 솔루션즈 아키텍트 수석이 그들이다.

Q.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이수정(이하 ‘이’): 안녕하세요. 이수정입니다. 27년간 글로벌 IT 기업들에서 근무했고, 지금은 AWS 에듀테크 및 K12사업 총괄을 맡고 있습니다.
박혜영(이하 ‘박’): 안녕하세요. AWS 솔루션즈 아키텍트 수석 박혜영입니다. AWS에서 근무한 지는 5년 6개월이 됐습니다.
Q. 현재 맡고 있는 업무와 해당 분야를 설명해주세요.
이: 저는 클라우드 인프라를 통해 초중고교 학생과 교사가 사용할 수 있는 교육 솔루션 개발을 하고 있습니다. 넓게 보면 에듀테크 분야라고 할 수 있는데요. 코로나 팬데믹 이후 이 분야에 관심이 집중되기는 했지만, 사실 저희는 그 이전부터 미래 교육형태로서 연구와 개발을 해오고 있습니다.
최근에 이 분야의 세계적인 추세는 교육 콘텐츠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안전과 정신건강, 학교의 보안 등을 통합한 인프라 구축에 주력하고 있어요. 여기에 생성형AI를 접목한 서비스, 게이미피케이션으로 재미와 몰입도를 높이는 콘텐츠 등이 속속 개발돼 에듀테크가 굉장히 고도화되는 분위기입니다.
박: 솔루션즈 아키텍트는 기업들의 기술개발에 대한 가이드와 솔루션을 지원하는 일입니다. 저는 재생에너지, 지속가능기술 등의 이머징테크 분야에서 개발자로 일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기술에서 생성형AI를 빼고는 얘기를 할 수 없을 텐데요. 이머징테크 솔루션에도 생성형AI가 세계적인 핵심 트렌드입니다. 대부분의 기업들이 고객경험 향상과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기 위해 생성형AI를 도입하고 있고, 저희도 비즈니스 혁신에 동력을 불어넣기 위한 컴퓨팅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습니다.
Q. AWS가 내놓는 선도적인 기술은 어디에서 영감을 얻고, 어떤 것들을 벤치마킹하나요?
박: 훌륭한 기업과 좋은 기술들도 많지만, 저희는 내부에서 행하는 다양한 실험을 통해 영감을 얻는 것 같습니다. 기업의 문화도 그런 방향을 추구하는데요, 자유롭게 실험하고 실패와 성공을 경험하면서 인사이트를 얻고, 프로세스 노하우와 기술을 고도화하는 것이 저희가 일하는 방식입니다.
이: 첨언하면 원천 소스는 ‘고객의 목소리’예요. 필요는 결국 고객과의 소통에서 발견되고, 그것이 결국 우리의 기획과 개발의 목표이기 때문입니다. 니즈와 목표가 분명해지면 워킹백워드 방법론으로 일을 합니다. ‘이미’ 개발된 상황을 가정해 완료부터 되짚어 내려오면서 불필요와 이슈를 해결하고 제거합니다. 이 과정에서는 사람들의 의사소통, 의사결정 역량이 매우 중요해요, 결국 선도적 기술이라는 것은 ‘사람’에게 닥친 문제를 ‘사람’들이 논의해서 해결해 가는 ‘사람’을 위한 기술이라고 생각합니다.
Q. 앞선 답변에 이어지는 질문입니다. 신기술 개발에 기술과 사람의 균형점은 어떻게 잡고 있나요?
박: 현재 기술뿐만 아니라 가장 큰 화두인 것은 맞습니다. 특히나 생성형AI가 등장하면서 인간과 기계의 공존을 위한 윤리적 쟁점이 대두됐고, 개발자들도 여전히 답을 찾아가는 과정입니다. AWS 사례를 얘기하면, 기존에 어떤 모델보다도 인간 중심으로 설계하는 엔트로픽에 투자도 하고 컴퓨팅 인프라를 구축 중입니다. 관련 기술을 보유한 기업 간 경쟁구도로 보는 시선도 있지만, 분명한 것은 기술의 초점이 사람이 되어야 하고 기술이 그런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 인류가 불을 사용한 이후 기술 발전의 역사를 보면 항상 리스크를 동반합니다. 인공지능도 똑같은 상황을 만나게 될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교육 분야에서는 어떻게 하면 학생들의 연령과 수준에 맞는 안전한 인공지능, 그리고 가장 적절한 데이터와 인공지능을 제공할 수 있을까를 고민합니다.
Q. 두 분 앞에 ‘여성 리더’, ‘여성 기술인’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데요, 여성으로서 기술 분야의 일을 한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요?
이: 과학기술분야에서 일하는 여성 인력에게 여전히 ‘여성’이라는 단어를 붙이고 있어요. 마치 ‘여성과학기술인’이 다른 직종처럼 느껴지기도 하는 지점이죠. 아주 오랫동안 과학기술 분야는 남성들이 독점해왔고, 지금도 그 비율이 역전되지는 않았습니다. 미국의 경우 여성 비율이 24%인데, 우리나라는 더 적은 수치지요.
다만, 사회가 변하면서 이 분야에서 필요한 인재의 기준이 성별에서 역량 중심으로 바뀌고 있는 분위기는 감지할 수 있습니다. 저는 글로벌 IT기업들에서 27년간 일을 해왔는데요, 최근 더 할 일이 많아지고 있음을 느끼고 있어요. ‘여성’이라서기 보다는 기술, STEAM 등의 분야가 점차 특정 성별을 요구하지 않는 젠더중립에 가까워지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Q. 그럼에도 여전히 과학기술 분야에 성비불균형 현상이 존재하는데, 정부도 나서서 이를 완화하기 위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습니다. ‘제4차 여성과학기술인 육성·지원 기본계획’이 대표적인데요, 현장에서 정책 실효성을 느끼시나요? 또, 새롭게 시작될 제5회 기본계획에 포함되기를 바라는 정책 방향이 있다면요?
이: 다행히 최근에는 사회의 많은 분야에서 성평등 인식이 확산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정책의 실효이기도 할테고, 오랫동안 고착화된 문화가 여러 사회적 요인들로 인해 조금씩 변화하고 있다는 증거이기도 할 겁니다. 하지만 여전히 성별을 특정 짓는 문화가 만연한 것도 사실이에요. 그래서 지금까지 젠더이슈가 드라마틱하게 변화되지 않았다 할지라도, 기저의 인식변화를 견인할 ‘스몰스텝’을 지속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제도적인 뒷받침이 필요한데요, 저는 경력보유자들이 노동시장에 유연하게 유입될 수 있는 정책이 보완되면 좋겠습니다. 출산율 저하와 인구구조 변화로 점차 노동시장에 양질의 인력풀이 고갈되고 있습니다. 이에 대한 대안으로서 사회적 편견으로 기회를 갖지 못한 인재들이 능력을 펼칠 수 있는 기회를 주고, 그런 기업들에 대한 인센티브를 주면서 산업구조를 확대해 나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박:‘ 여성을 위한, 여성을 대상으로 한 정책들이 추진되면 오히려 역차별이라는 비판의 목소리도 있죠. 하지만 이것은 형평성 개념에서 접근해야 한다고 봅니다. 담 너머의 풍경을 똑같은 눈높이에서 보게 하려면 키가 작은 사람에게 디딤돌을 대주는 게 형평성이잖아요. 정책수립과 사회적 인식에 이런 개념이 전제되었으면 좋겠어요.
여성은 상대적으로 약자예요. 한참 역량이 오르는 30대 중후반이 되면 여성의 경우 출산과 육아 때문에 경력 단절이 생기게 돼요. 지금은 기업환경과 인식이 좋아졌다고는 하지만, 여전히 되돌아오는 게 쉽지 않습니다. 특히 빠르게 변하는 과학기술 분야는 현장성이 중요하다 보니 6개월, 1년의 단절을 사실상 메우기 어려운 경우가 많습니다.
AWS가 경력보유 여성들을 위한 교육을 시작할 예정인데요. 신청자들 대부분이 석박사 출신의 경력보유자들이었습니다. 산업현장뿐만 아니라 연구, 강연, 강의 등으로 능력을 펼치던 사람들이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말그대로 ’단절‘ 상황에 놓인 거죠. 그래서 저는 그들이 노동시장에 재유입될 수 있는 실질적인 프로그램이 추진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Q. 미래 직업으로서 과학기술 분야에서 일하고 싶어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세요.
이: 대학생을 대상으로 특강이나 대회를 개최하면 학생들이 ‘취업’을 전제로 질문을 하는데요, 고스펙을 가지고 기술을 잘 다루는 사람이 미래사회가 바라는 인재상이라고 할 수는 없는 것 같아요.
과학기술 분야는 정말 넓고, 긴 호흡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하는 것은 정말 작은, 일부분이에요. 때문에 이 분야에 대한 자신의 관심과 흥미가 분명하다면, 하나의 프로젝트를 직접 진행하는 것을 추천합니다. 작은 것 하나를 만들기 위해 기획부터 프로세스 전반을 다루는 것은 사실 굉장한 창의력이 필요하거든요. 그런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발견하고 역량을 키워나가는 것이 과학기술뿐만 아니라 미래 직업을 선택하는 눈이 되어야 합니다.
Q. 마지막으로 나에게 ’이 일‘이란?
이, 박(요약정리): 기술 분야에서 무언가를 만들어 내는 일이 참 흥미롭고 재밌습니다. 저희가 상대하는 고객의 층이 학생부터 기업까지 매우 다양한데요, 그들이 우리가 개발한 무언가를 통해 조금씩 발전하고 있다는 것은 늘 놀랍고, 또다시 우리에게 영감을 주기도 합니다. 열심히 일하면 그 결과가 직관적으로 눈에 보이고, 그럼으로써 보람을 느끼면서 그 에너지가 일에 재투입되면서 선순환을 하죠. 그래서 우리에게 이 일은 도전해도, 실패해도 괜찮은 또 다른 우리인 것 같습니다.
- 김현정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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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3-11-0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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