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음성 기사 듣기 : https://www.youtube.com/watch?v=AeSa_xsoSfA ※ 해당 음성은 하단 인터뷰 내용을 사이언스타임즈 리포터가 대독한 기사 전문입니다.
4월 20일 장애인의 날 인터뷰 특집, 그 두번째로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 김용기 교수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2살 때 소아마비를 앓아 갖게 된 신체적 장애는 한 사람의 학자를 꿈꾸고 또 살아가는 김용기 교수를 얽어맬 수 없었다. 연구 뿐 아니라 천문학의 대중화와 교육에도 열정적인 김용기 교수는 늘 긍정적인 에너지를 주위에 나누어주며 많은 이들의 희망이 되고있다.

Q : 안녕하세요! 간단히 자기소개 부탁드립니다!
김용기 교수 :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에서 천문학을 가르치는 김용기 교수입니다. 학생들이 천문학을 즐겁게 배우고 배운 천문학을 기쁨으로 공유할 수 있기를 소망하며, 가르침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Q : 교수님의 전공이신 천문학은 어떤 매력이 있는 학문인가요?
- 우주에 숨겨진 비밀찾기
김용기 교수 : 인간은 사고능력을 갖추게 되면서부터 하늘을 바라보았고, 그 하늘의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며 기록했고, 천변현상이 실생활에 어떤 관계가 있는지 알아보려는 호기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런 호기심을 충족시켜보려는 노력이 과학이라는 형태로 형성되어 지금까지 발전되어왔죠. 그러니 천문학은 과학과 철학, 더 나아가 삶까지 모든 학문의 시작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우주 속에 숨겨진 비밀을 찾아보는 그 자체가 매력이지요!
Q : 교수님께서 하고 계시는 연구나 활동을 간단히 소개해주시겠어요?
- 국내 소형 망원경 네트워크 구축, 대중천문학 신설
김용기 교수 : 저는 X-선을 방출하는 백색왜성(수명이 다한 별이 도달하는 마지막 단계로 매우 뜨겁고 고도로 밀집된 천체)에 대한 연구로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귀국해서는 광학관측과 자료분석을 통해 백색왜성과 같은 천체들의 주기변화와 진화양상에 대해 연구하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천문대가 보유하고 있는 소형망원경에 자동관측시스템을 구축함으로써 외계행성, 소행성, 인공위성 추적 등의 관측을 활발하게 수행하고 있습니다. 또한 서울대, 경희대, 충북대, 한국청소년우주센터 등 국내에 보유하고 있는 소형망원경 관측 활성화를 위해 '소형망원경네트워크 사업'에 공동연구원으로 참여하여 노력하고 있습니다.
2000년대 초부터 국내 지방자치단체들이 천문과학관을 건립하는 추세에 맞추어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대학원에 대중천문학 석사과정과 박사과정을 설치했습니다. 천문학으로 과학이 무엇인지 잘 설명해주는 대중천문학자들을 양성하면서, 천문교구와 천문교육프로그램 개발연구에 임하고 있습니다. 천문대중화 연구에 많은 천문학도들이 관심을 갖고 신경써주시길 기대하고 있습니다.
Q : 국내 또는 해외에서 천문학의 앞으로 전망은 어떤가요?
- 국내 천문학은 세계적인 수준, 더욱 발전할 것
김용기 교수 : 우리나라의 천문우주학 연구수준은 세계적인 수준이라고 판단합니다. 블랙홀 연구나 은하·우주 분야에서 국제적인 연구를 선도하고 있는 학자들도 많이 있습니다. 인간이 우주에 대한 호기심을 갖고 있는 한, 천문학은 국내외적으로 앞으로 더욱 꾸준한 발전에 발전을 거듭할 것으로 전망합니다.
사실 요즘 4차산업혁명시대의 핵심기술로 여겨지는 인공지능과 빅데이터 연구는 천문학에서 이미 오래 전부터 활용된 분야입니다. 이 분야의 발전 결과가 천문학에 다시 응용될 때, 아직까지 풀리지 않은 우주의 수수께끼들이 더 많이 풀릴 것으로 기대합니다. 천문학은 무궁무진한 신비의 도가니이기에, 후배 천문학자들이 캐내야 할 신비보따리들이 아주 많은 것이지요.
Q : 연세대학교 천문기상학과를 졸업하신 후에 베를린공과대학에서 학위공부와 연구활동을 하셨는데요. 외국에서 공부와 연구를 하시는 데에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 한국의 문제풀이식과는 다른 독일의 문제해결식 교육
김용기 교수 : 제가 연세대학교에서 천문학을 공부할 때엔 우리말로 표현된 교과서들이 없어서 영어원서로 공부했습니다. 그런데 국내 정치 상황이 불안정했을 때라 휴강이 잦아서 진도가 원서의 절반 정도만 나가고 한 학기가 마무리되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학부 졸업 후 바로 독일 유학을 떠났기 때문에 천문학 뿐만 아니라 기초가 되는 물리와 수학과목의 기본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개념 이해를 중시하고 졸업시험도 필답고사가 아닌 3명의 교수 앞에서 문제해결능력을 보여야하는 독일식 교육에 적응하는 것이 아주 힘들었습니다. 저는 대학에서 문제를 잘 풀어 모범해답을 제시하면서 성적을 잘 받았는데, 독일에서 공부할 때는 시험문제의 개념부터 해결해가는 과정을 논리적으로 설명해야했기에 무척 힘들었습니다.
연구하는 방식도 지도교수가 교육과정(course-work)을 통해 가르쳐주는 것이 아니라, 강의를 들을 때와는 달리 연구과제를 던져주고, 스스로 해결하고, 성과가 있을 때 교수님과 대화를 통해 그 다음 단계의 문제를 해결하는 순서로 진행됐습니다. 때문에 한국에서 문제풀이식 훈련을 받은 저로서는 적응하기가 너무 힘들었지요.
장애로 인한 상처를 버틸 수 있게 해준 힘

Q : 신체적 어려움에도 굴하지 않고 학문을 계속하며 교수님께서 일궈내신 것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학자로서의 길을 계속해서 나아갈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이었는지 말씀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용기 교수 : 천문학은 저에게 생명을 건져준 학문입니다.
장애인으로 한의사가 되어 자립하기를 원했던 저는 서울소재 한의대를 지망하고, 해당대학 약학대 필기시험에 합격했었습니다. 곧이어 치러진 신체검사에서 '수학에 지장이 없음을 사료함'이라는 소견을 받고 예비약대생이 된 기쁨에 젖어있었죠. 하지만 1주일 뒤, 신체검사 불합격통지를 받고 좌절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두 달여를 좌절 속에 있다가 '서울의 다른 약대에 들어가보겠노라' 다짐하면서 재수학원에서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듬해 서울의 약대들을 찾아가 "시험에 합격하면 신체검사에서 문제삼지 말아달라"고 사정해보았지만, 어느 대학도 저에게 시험 자격을 주지 않았습니다.
장애인이기에 대학도 못들어간다는 좌절 속에서, 자연과학, 우주의 신비를 공부해보자 생각하고 연세대학교 천문기상과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천문교과서 첫 부분에는 우주의 시작인 빅뱅 후 137억 년 역사를 1년으로 환산한 우주 달력이 나옵니다. 그 달력에서 인류는 12월 31일 늦은 오후에 지구에 출현하죠. 우주는 나를 지구 땅에 만들어내기 위해 364일 23시간 가량을 별과 은하 등 모든 우주 만물을 다 만들면서 심혈을 기울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는 우주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임을 알게 되었고, 그래서 얼마나 내가 귀한 존재인지 깨닫게 되었습니다. 바로 이 사실이 지금까지 모든 어려움을 헤쳐가며 학자의 길을 이끌어준 원동력입니다.
20대 후반 유학 시절, 결혼을 할 때 장애가 걸림돌이 되었던 것은 큰 상처가 되었어요. 상대의 부모님이 "장애인과 결혼하면 결혼생활에 지장이 있고 자녀도 불구가 될 수 있다"며 반대해서, 가지고 온 혼수품들을 집에 놓고 독일로 돌아간 적이 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결혼도 할 수 없으니 박사 학위를 받으면 뭐하고 교수가 되면 뭐하나'고 생각하며 삶을 끊어버리려 했던 적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바로 천문학을 공부하면서 '나는 우주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것이 생각나 삶을 끊을 수가 없었어요. 이 우주가 만들어지고 내가 최고의 걸작품으로 만들어졌다면, 나의 장애를 받아주는 이를 허락해달라고 막연하게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지금의 아내를 만나게 됐고, 33년 전에 결혼해서 지금은 감사하게도 2남 4녀의 아버지로 살고 있습니다. '나는 최고의 걸작품'이란 사실을 알지 못했다면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Q : 여러 부분에서 정말 부당하고 안타까운 차별을 많이 받으셨습니다. 한국에서 신체적 장애가 있는 과학도가 겪는 어려움에 대해 더 말씀해주실 수 있으실까요?
김용기 교수 : 장애가 있는 과학도가 겪는 어려움은 "장애인이 어떻게 그런 걸 할 수 있어?"라는 편견입니다.
저는 2급 지체장애인인데, 제가 약학대학에 합격하고도 '지체 장애인은 실험실습을 할 수 없다'는 편견 때문에 신체검사에서 불합격이 되었었죠. 연세대학교에 입학할 때에도 당시는 지구과학계열로 지질학과와 천문기상학과 학생을 같이 선발했습니다. 신체검사위원회에서 지질학과 교수님께 연락했는데, 지질학과는 지체장애인 학생을 받을 수 없다고 했답니다.
다행히 천문기상학 교수님은 '장애인이라고 공부할 기회를 박탈하면 안 된다'고 주장해 주셔서 간신히 천문기상학과에 입학할 수 있었습니다. 장애인이라고 무엇을 할 수 없다고 판단하기 전에, 일단 기회를 주고 적응하지 못한다면 적응할 수 있는 전공을 찾아나설 수 있도록 유도해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Q : 신체적 장애인에 대한 지원이나 인식 측면에서, 한국의 현 주소는 어느 정도 와 있다고 생각하시나요? 벤치마킹할 만한 해외 시스템이나 사례가 있으면 소개해주시겠어요?
김용기 교수 : 제가 80년대 초 독일에 유학갈 때만 해도 저는 장애인이기에 운전할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독일에서는 장애인이 비장애인에 비해 몇%정도의 장애를 지니고 있는지 의사의 정밀진단으로 판단 후, 사회에서 그 격차를 줄여가며 살아갈 수 있도록 행정적인 지원을 해줍니다.
저는 90% 지체장애인 판정을 받았기에 독일 정부에서 장애인 특수자동차 운전면허 연수비용을 지원해주었습니다. 제가 사는 아파트 앞과 제가 공부하는 대학연구소 앞에는 제 차가 주차할 수 있는 주차장도 확보해주었습니다. 제가 내는 세금에서는 비장애인의 세금보다 훨씬 많은 액수를 연말정산에서 환급해주면서 90%의 장애를 극복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해주고 있었습니다.
한국의 경우 당시 장애인에 대한 지원체계가 전혀 없었던 것에 비하면, 현재는 장애인에 대한 행정적인 지원 측면에서 굉장히 나아졌습니다. 그럼에도 사회에서 장애인에 대한 인식은 전체적으로 더 개선되어야 할 것으로 생각됩니다.
제가 유학시절 독일에서 엘레베이터가 없는 6층 아파트에 살았습니다. 그 곳에 60이 넘으신 할머니들이 많이 사셨는데, 학교에 갔다오면서 마주치면 제게 '나보다 젊으니 먼저 올라가라'고 권하십니다. 그 할머니는 저를 장애인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젊은 학생으로 봐주신 것이지요. 아직도 그것이 뇌리에 남아 사리지지 않습니다. 장애인이지만 젊기에 할머니보다 빨리 올라갈 수 있다는 가능성을 먼저 봐주는, 이러한 인식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생각됩니다.
Q : 한국에서 신체적 장애를 가진 학생들과 과학도들을 위해 어떤 방안들이 필요할까요?
김용기 교수 : 장애학생들이 어떤 것을 공부한다고 하면 일단 기회를 부여해보고 할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주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난 후 '내가 이 일을 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해 스스로 판단하도록 하고, 만일 적응하지 못했을 때 스스로 다른 방향을 생각해 볼 수 있도록 체계적으로 가이드해주는 방안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장애인들을 바라볼 때 '이것을 할 수 없어'의 관점이 아니라, '저것을 하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도와주지?'라는 관점으로 관심을 가져준다면, 피해의식을 느끼지 않고 장애인들의 능력을 잘 발휘할 수 있을 것이라 판단합니다.
상처입은 이들과 과학을 꿈꾸는 이들을 위해
Q : 신체적 장애가 있는 학생들을 위한 사업이나 천문학 대중화 등 여러 활동들을 하고 계신데요. 계획이나 현황을 소개해주실 수 있을까요?
김용기 교수 : 충북대학교 장애지원센터의 운영위원으로서, 장애학생들의 학업을 도와주는 학교 정책의 입안과 방향에 의견을 제시해주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두란노아버지학교 강사로서 장애인아버지학교 일을 하기도 했고, 교회나 사회단체에서 장애인들을 위한 특강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습니다. 장애인으로 살아왔던 저의 삶을 공유하면서 장애인들이 소망을 가지고 행복한 가정을 꾸리며 살아갈 수 있도록 돕고 있습니다. 저 역시 장애로부터 받은 상처를 극복하는 과정에서 여러 어려움을 겪고 , 그 열등감과 분노로 가족들을 불행하게 만든 적이 있었습니다. 나 자신을 바로 보게 되기 시작하면서, 행복한 가정으로 변화해가는 경험들을 공유하고, 장애학생들과 가정을 회복시키는 일을 기회가 닿는대로 하고 있습니다.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 대학원에 대중천문학전공과정이 개설된 지 15년이 넘었습니다. 그 사이 많은 학생들이 대중천문학자가 되어 전국의 천문과학관 등 관련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천문학으로 과학을 대중화시키는 전문 과학커뮤니케이터들이 더 많이 배출될 것입니다.
다양한 메이커장비를 구축한 창작 및 창업 지원공간, 메이커스페이스 전문랩인 '충북Pro메이커센터'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고 천문기기들을 연구하고 3D 프린터로 복원해 폭넓게 보급함으로써, 우리 조상의 높은 과학 정신을 대중에게 알리는 노력을 하며 천문대중화에 앞장서 볼 계획입니다.
Q : 올해 2022년 한국 부산에서 열리는 국제천문연맹 총회(IAUGA2022)와 연계하는 대중천문학 사업 공고가 있었는데요. 선정된 2곳 중 한 곳이 스타트업인 '룩업'으로, 청각장애인과 가족을 대상으로 한 천문관측 행사와 천문 용어 수어 제작 등 신체적 장애가 있는 학생과 가족들을 위한 프로그램이 선정됐다고 합니다. 어떤 측면에서는 무척 고무적인 변화인데,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용기 교수 : 아주 반가운 소식입니다. 기회가 된다면 룩업 사업에 참여해서 기여를 하고 싶습니다. 장애인을 위한 천문강의를 기획하고 있고, 또 3D 프린터로 태양내부구조 모형을 만들어서 시각장애인 인식개선을 위한 STEAM 프로그램을 개발한 적도 있습니다.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배워보도록 하겠습니다.
Q : 교육과 대중화에 독보적으로 많은 관심을 기울이시는데요. 혹시 특별한 이유가 있을까요?
김용기 교수 : 학부졸업을 하고 독일 유학을 갔을 때의 일입니다. 1년 반 동안 독일어공부를 마친 후에는 한국에서 배운 4년의 대학과정을 인정받는 구두시험을 통과해야 했습니다. 일반물리학, 고전역학, 일반천문학 3과목을 도서관에서 쪽잠을 자가며 하루종일 공부했습니다. 어떤 날은 진도가 2-3쪽을 넘기기 힘들었습니다. 500쪽 넘는 책을 넘기며 독일어로 공부하는데 능률이 오르지 않았습니다. '나는 공부를 포기해야 되나?'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 이유를 찾아보았습니다. 독일어는 잘하는데, 책의 내용에 나오는 개념들을 우리말로 제대로 표현하지 못하는 저를 발견했습니다. 독일학생들은 적어도 석사과정까지는 독일어로 공부를 하고 논문을 쓰고 있었습니다. (지금은 독일학생들도 석사 논문을 영어로 쓰는 경향이 있지만요) 그래서 내가 유학을 마치고 귀국하면 후학들이 한국식 사고로 한국말로 천문학 내용을 잘 이해하고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그래서 충북대학교 천문우주학과에 교수로 자리잡은 후 천문교과서 번역에 노력을 기울이기 시작했고, 자연스럽게 천문 대중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아직도 부족하지만, 천문학을 배우는 젊은 학생들이 천문 내용을 우리말로 확실하게 이해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보고 싶습니다.
전하고 싶은 말
Q : 교수님의 앞으로의 목표에 대해 말씀해주시겠어요?
- 상처많은 장애인이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김용기 교수 : 제가 혹 천문학자로 유명해진다 하더라도, 제가 교수이기에 어느정도 경제적으로 여유있게 살아갈 수 있다 할지라도, 돈과 명예로는 결코 행복해질 수 없다는 것을, 상처많은 장애인으로 살아가며 뼈저리게 알게 되었습니다. 관계에서 성공할 때 비로소 행복해진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관계의 가장 기본은 가정인데, 우린 가정에서 가장 많은 상처를 쉽게 주고받는다는 것을 알게 되었죠.
그래서 저는 천문학에서 배우는 '나는 우주가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란 것을 통해 자아정체성을 확립하는 것을 돕고 싶습니다. 내자 장애인으로서 받은 상처 때문에 가족들을 힘들게 했던 경험, 그것을 회복하기 위해 노력해왔던 점들을 바탕으로 노력하려 합니다. 상처로 힘들어하는 현대인들의 가정을 과학과 심리학을 접목하여 각 개인과 가정이 회복될 수 있도록, 조금이라도 돕는 조력자가 되는 것이 저의 개인적인 목표입니다.
Q : 한국의 장애인 과학도와 관련하여 추가로 제언하고 싶으신 바가 있으실까요?
- 다음 세대의 장애인 과학도들을 위해
김용기 교수 : 장애인 과학자들은 삶속에서, 그리고 장애에 대한 편견 속에서 과학의 꿈을 실현하기 위한 순수한 마음으로 노력하는 과학자들입니다. 장애인들이 여러가지 힘든 여건 속에서 고군분투하며 과학연구를 하는 점을 감안해주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연구비 수혜 기회를 넓혀주면서, 조금이라도 장애의 벽을 쉽게 넘으며 과학활동을 구가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으면 좋겠다는 제언을 해보고 싶습니다.
저는 이제 기성세대가 되어 혜택을 받지 않아도 하고싶은 과학을 구가할 수 있지만, 장애의 벽을 넘고 과학을 하고자 하는 다음 세대 장애인 과학도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언이길 바랍니다.
Q : 마지막으로 신체적 어려움에 굴하지 않고 과학자를 꿈꾸는 학생들을 위해 한마디 해주신다면?
김용기 교수 : "행복해지는 것을 포기하지 말자"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어떤 고난이나 역경이 엄습해도 나는 1년 중 364일하고 23시간동안 우주가 심혈을 기울여 만든 최고의 걸작품이라는 사실을 잊지 않고, 역경의 터널을 통과하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희망을 잃지 맙시다. 최고의 걸작품인 우리에게 맡겨진 단 하나뿐인 역할이 있습니다. 그 역할대로 살아갈 수 있다는 희망을 잃지말고, 지금 나에게 맡겨진 일들을 하나씩 하나씩 잘 감당해나가다 보면, 어느새 그 역할을 해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파이팅합시다!
- 김미경 리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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