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의 과학 교육은 영혼이 없었다고 감히 말할 수 있다”
지난 금요일(23일), 대전 국립중앙과학관에서 열린 '제5회 세계과학관심포지엄'을 마무리하는 기조강연에서 장대익교수(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가 한 말이다.
장대익 교수는 “과학 커뮤니케이션의 진화: 재미를 넘어 의미로”라는 주제로 한국 과학 교육과 커뮤니케이션에 대해 얘기하며 과학이 갖춰야 할 가치와 의미의 중요성에 대해 연설했다.
그는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과학에는 ‘가치’가 빠져있었다고 주장한다. “과학은 ‘사실’의 영역에 대해서는 얘기할 수 있지만 생활의 내적 동기가 되는 가치나 실존, 의미, 규범 등에 대해서는 침묵한다고 여겨지고 있다”며 과학 커뮤니케이션에 대한 인식과 방법에 개혁이 일어나야 함을 강조했다.
과학은 객관적인 사실만을 얘기하는 학문이라는 인식은 비단 한국에서뿐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퍼져있다. 장 교수는 “하지만 이 말이 곧 과학이 실존이나 가치, 의미의 문제에 대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는 점을 지적했다.
이번 과학관심포지엄에 모인 전 세계의 과학관 담당자, 과학 커뮤니케이터, 과학 교육자들이 특히 강조했던 부분도 바로 과학과 예술의 융합, 대중적이 즐길 수 있는 과학의 중요성이었다.
과학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학제간 융합, 대중과의 소통이 강조되고 있는 시대에서 이 같은 가치를 얻기 위해 과학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무엇일까?
과학은 ‘어떻게’를, 종교는 ‘왜’를 묻는다 - 아인슈타인
장 교수는 그 동안의 과학 커뮤니케이션이 단순히 호기심을 채워주는 수준에 그쳤다는 점을 문제로 꼽았다. 학교에서 배우는 과학은 모두가 알아야 할 아주 기초적인 내용만을 담고 있었고, 대중들에게 있어 과학은 궁금증을 해결해주는 도구로 이용되는 데서 그 역할이 끝나고 말았다.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 인간의 존재 가치와 삶의 궁극적인 의미를 찾는 데 과학이 아무 역할도 하지 못했던 것이다.
장 교수는 “과학은 ‘어떻게’를, 종교는 ‘왜’를 묻는다.”는 아인슈타인의 말과 “실험은 과학의 영역이며 궁극적 의미와 도덕적 가치는 종교의 영역”이라는 진화생물학자 스티븐 제이굴드의 말을 언급하며 '과학이 가치에 대해서 말 할 수 있는 것은 없다'는 인식은 고전적인 것이며 현대에는 맞지 않음을 역설했다. 이 같은 생각이 고쳐지지 않는다면 과학은 어렵고 차갑다는 기존의 통념이 고쳐지기 어렵다는 점도 언급했다.
"예전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모두 혁명적 사상가였다"
장 교수는 자신의 연구분야인 진화와 과학철학, 인지과학의 연구 결과들을 예로 들어가며 과학이 할 수 있는 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사실을 업데이트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실 진술들만으로는 가치 진술을 만들어낼 수 없다'는 철학자 데이비드 흄과 에드워드 무어의 말을 인용하며, "그들의 말도 옳지만, 그렇다고 하더라도 과학은 인간의 실존에 대해 얘기할 수 있다”고 말했다.
사실 진술들만으로 가치 진술을 만들어낼 수는 없지만, 가치 진술 역시 사실 진술의 존재 없이는 만들어질 수 없다. 즉, 과학을 통해 만들어진 새로운 사실 진술을 이용하여 기존의 가치 진술을 올바른 방향으로 수정해나가고 또 새로운 가치를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또 예전의 위대한 과학자들은 모두 혁명적 사상가였다는 사실을 지적하며 "단순히 호기심을 해결하고 원리를 설명하는 것을 넘어서 인간의 삶의 의미와 우주 속에서 인간 존재의 가치에 대해 계속 관심을 기울이는 방향으로 과학 탐구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인간의 삶의 의미와 가치에 대해 말할 수 있어야 진정한 과학커뮤니케이션이 이루어질 수 있다"며 과학자들이 연구를 하는 데 있어서도 사실 너머에 존재하는 가치와 의미를 찾아내는 방향으로 더 많은 노력을 기울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을 드러냈다.
장대익 교수는 카이스트에서 기계공학을 전공하고 서울대학교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철학에 대해 공부했다. 이후 일본 교토대학교 영장류연구소, 또 미국 터프츠대학교의 인지연구소에서 다년간 연구원 생활을 하면서 인간과 영장류의 인지능력과 진화에 대해 연구했다.
현재는 서울대학교 자유전공학부에서 교수로 재직하고 있으며, <다윈의 식탁>(김영사, 2008), <종교전쟁>(사이언스북스, 2009), <뇌과학, 경계를 넘다>(바다출판사, 2012) 등 다양한 과학 서적을 저술했고, <통섭>(사이언스북스, 2005) 외 다수의 책을 번역했다. 이 같은 활동을 인정받아 제 11회 대한민국과학문화상, 제 27회 한국과학기술도서상 저술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 박솔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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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10-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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