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이 일상에 미치는 영향이 커지면서 과학을 대중들에게 어떻게 전달할 것인지도 중요한 과제가 되었다. 과거에는 과학자가 책을 쓰거나 강연을 하는 것이 대표적인 과학 소통 방식이었다면, 최근에는 유튜브와 팟캐스트는 물론 예능 프로그램에서도 과학자들을 어렵지 않게 만날 수 있다. 다만 대부분은 스튜디오에 앉아 과학 지식을 설명하거나 출연자들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이다. 그런데 EBS에서 방송되는 <최후의 인류>는 조금 다르다. 과학자들이 직접 현장에 들어가 실험하듯 미션을 수행하는 방식으로 과학을 보여준다. 과학 생존 리얼리티라는 낯선 형식에 도전한 <최후의 인류>를 따라가며, 프로그램 속 미션에 담긴 과학을 살펴보자.
과학 생존 리얼리티 프로그램 <최후의 인류>
프로그램의 세계관은 2038년, 기후재난으로 지구 시스템이 무너진 미래에서 시작된다. 일곱 곱의 생존자는 새로운 생존 기지를 찾아 미국 애리조나 사막에 모인다. 최후의 대원으로 선발된 이들은 배우 유승호, 코미디언 이은지, 가수 비비와 뇌과학자 장동선, 의사 겸 작가 이낙준, 화학자 장홍제, 지구과학자 김한결이다. 연예인과 과학자, 의사가 한 팀을 이루었다는 점부터 일반적인 생존 예능과는 분위기가 사뭇 다르다. 서로 처음 만난 어색함을 느낄 틈도 없이 이들에게는 곧바로 가장 시급한 문제가 주어진다. 바로 마실 물을 확보하는 일이다.
사막 한가운데서 대원들이 발견한 물은 흙과 불순물로 뒤섞여 그대로 마시기 어려운 상태이다. 이들은 물을 필터로 거르고 가열한 뒤, 수증기를 다시 물로 모으는 과정을 거쳐 식수를 만든다. 여과와 끓이기, 증류는 얼핏 비슷해 보이지만 서로 다른 문제를 해결한다. 여과는 구멍이 작은 체로 물을 거르는 과정인데 흙이나 부유물처럼 눈에 보이는 불순물을 없애는 데 효과적이다. 끓이기는 물속의 세균과 바이러스 같은 병원체를 줄이는 데 효과적이지만, 소금이나 중금속처럼 물에 녹아 있는 물질은 그대로 남는다. 증류는 물을 수증기로 바꾼 뒤 다시 식혀 모음으로써 끓이기의 한계를 보완한다. 다만 휘발성이 높은 일부 물질은 수증기와 함께 이동할 수 있어서 증류 역시 모든 오염을 해결하는 만능 기술은 아니다.
작은 지구, 바이오스피어 2
식수 확보 미션을 통과한 대원들은 사막 한가운데 서 있는 거대한 유리 구조물에 도착한다. 이곳은 프로그램의 주 무대인 바이오스피어 2(Biosphere 2)이다. 실제 바이오스피어 2는 미국 애리조나주 오라클 인근 사막에 지어진 대형 인공 생태계 연구시설이다. 지구 전체를 하나의 생물권, 즉 바이오스피어 1로 보고, 그와 비슷한 시스템을 인공적으로 만들어보겠다는 의미에서 시설 이름을 바이오스피어 2라고 붙였다. 1991년에는 남녀 네 명씩 모두 여덟 명의 대원들이 이곳에 들어가 외부와 물질 교환이 차단된 상태로 2년간 생활하기도 했다. 참가자들은 직접 작물을 키우고 물과 공기, 폐기물을 순환시키며, 외부에서 새로운 물질을 공급받지 않고 인간이 살아갈 수 있는지를 시험했다. 당시 실험은 우주 식민지나 장기 우주여행을 염두로 둔 자급자족 밀폐 생태계의 가능성을 검증하기 위한 연구로 주목받았다. 현재는 미국 애리조나대학교가 운영하며 기후변화와 물 순환, 생태계 상호작용을 연구하는 대형 실험실로 활용되고 있다. <최후의 인류>는 바로 이 역사적인 시설 내부에서 촬영되었다.
프로그램에서 대원들이 바이오스피어 2에 들어간 첫날 밤, 기지의 기압에 이상이 생긴다. 밀폐 공간에서는 물과 음식만큼이나 공기의 균형이 매우 중요하다. 유리로 둘러싸인 시설 내부의 공기는 낮에 가열되면 팽창하고 밤에 식으면 수축하는데, 이 변화가 그대로 기압 차이로 이어질 경우 유리창과 밀폐 구조물에 큰 힘이 가해질 수 있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에서 시설의 ‘폐’와 같은 역할을 하는 거대한 가변형 공간이 등장한다. 우리가 숨을 들이마시고 내쉴 때 가슴이 움직이는 모습과 비슷하게, 이 공간은 큰 원판과 막이 위아래로 움직이면서 내부의 공기 부피와 압력을 조절한다.
물과 공기를 해결했다면 다음은 식량이다. 대원들에게는 기지 안에서 구할 수 있는 재료만으로 가장 완벽한 한 끼를 만드는 미션이 주어진다. 폐쇄 생태계에서 식량 문제는 단순히 먹을 것을 찾는 일이 아니다. 칼로리, 영양분, 물 사용량, 다음 작물을 위한 씨앗까지 모두 계산해야 한다. 실제 바이오스피어 2 실험에서도 식량은 가장 큰 과제 중 하나였다. 내부 농업 시스템이 전체 식단의 약 80%를 공급했지만 예상치 못한 일조량 감소와 해충 등으로 인해 생산량은 기대치보다 줄어들었고, 참가자들의 체중도 초반에는 약 16% 감소하였다. 식량을 얻는 데 필요한 노동도 만만치 않았다. 농사를 짓고 가축을 돌보며 수확한 곡식으로 요리는 하는 일까지 모두 대원들의 몫이어서, 전체 활동 시간의 약 45%가 식량을 얻는 행위에 사용되었다. 오늘날 우리는 쌀 한 봉지와 달걀 한 판을 사기 위해 마트에서 몇 분이면 되지만, 폐쇄 생태계에서는 씨앗을 심는 일부터 식탁에 음식을 올리는 과정까지 전부 생존 업무가 된다.
최후의 인류는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프로그램은 이 밖에도 무너진 생태계를 되살리기 위해 손상된 산호초를 인공 구조물로 복원하고, 배설물과 음식물 찌꺼기를 퇴비로 만드는 내부 자원 재활용 과정을 다룬다. 아직 공개되지 않은 후속 회차에서 대원들은 또 어떤 문제와 마주하게 될까. 1991년 바이오스피어 2 실험에서 가장 심각했던 위기는 산소 부족이었다. 실험 시작 당시 약 21%였던 산소 농도는 16개월 뒤 14.5%까지 떨어졌다. 해발 약 4천 미터의 고산지대와 비슷한 산소 조건이다. 원인 중 하나는 유기물이 풍부한 토양 속 미생물들이 예상보다 많은 산소를 소모했기 때문이다. 결국 외부에서 산소를 주입해야 했고 완전히 닫힌 생태계라는 실험 조건은 훼손됐다. 계속되는 식량 부족과 저산소 상태, 과도한 노동, 운영 방식을 둘러싼 의견 차이는 대원들 사이의 갈등도 유발했다. 거대한 방탈출 게임과 같은 <최후의 인류>에서 대원들은 남은 미션을 잘 수행하여 끝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까. 남은 회차를 통하여 대원들이 어떤 기지와 선택으로 위기를 헤쳐 나갈지 끝까지 함께 따라가 보자.
- 정회빈 리포터
- acochi@hanmail.net
- 저작권자 2026-07-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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