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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가을 송 군의 어머니로부터 기사제보와 관련해 우연찮게 한 통의 전화를 받고 안타까워하던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송 군의 어머니는 당시 "만 12세까지 검정고시를 볼 수 없다는 교육부의 방침에 맞서 연령 제한을 풀어 달라는 행정소송까지 냈다"며 영재를 받아들이지 않는 우리 사회에 대해 울분을 쏟아냈다.
송 군은 결국 부모의 투쟁(?)덕에 단 9개월만에 검정고시로 초·중·고교 12년 과정을 끝냈고, 얼마 후에는 수시 모집 등을 통해 당당히 대학생 반열에 오를 것으로 보인다. 영화 `해리포터'에서 하늘을 나는 마법자동차를 본 뒤 어떻게 하면 하늘을 날아다니는 자동차를 만들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물리학의 세계에 빠져들었다는 송 군을 보면서 어린 영재를 진정한 과학자로 키워내야 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몫이라는 생각이 든다.
불과 네 살의 나이에 4개 국어를 구사하고 미적분을 풀어 신동으로 불렸던 IQ 210의 김웅용이라는 천재를 떠올리면 더욱 그렇다. 1960년대에 '천재 탄생' 소동을 일으키며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그 천재는 그 뒤 평범한 생활인으로 변해 지금은 '잊혀진 사람'이 되고 말았다.
최근 한성과학고 교장 출신의 한 교육자가 펴낸 '이것이 과학고다'라는 신간 서적이 화제가 되고 있다. 요즘 우수학생들이 몰린다는 과학고의 실상을 정확히 짚어낸 데다 창조적 교육의 중요성과 인성(人性)을 강조한 대목이 특히 공감을 얻는 것 같다. 이 책을 읽으면서 전국 1% 수준의 과학영재를 선발해 놓고도, '수능준비학교'로 전락할 위기에 처한 과학고의 현실에 답답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과학고가 국내 과학영재 배출과 관련해 일익을 담당하고 있다는 긍정적 평가도 만만치 않다. 현재 전국에 걸쳐 17개의 과학고와 1개의 영재고가 설립, 운영중인 가운데 2006년 울산과학고, 2008년 서울지역에 신설될 과학고 등 앞으로 과학고 수는 더욱 늘어날 전망이다. 1983년 국내 최초의 과학고인 경기과학고가 처음 개교한 지 벌써 20년이 넘었다는 점에서 과학에 대한 국가적 관심도 이미 '약관'은 훌쩍 넘어섰다는 느낌이다.
외국의 사례도 참고할 만하다. 미국은 1932년부터 영재교육을 시작했으며, 1988년에 영재교육법을 제정할 정도로 인재양성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50개 주 가운데 32개 주가 영재교육을 의무화할 정도로 영재 육성에 적극 나서는 것이 오늘날 미국의 저력이라는 지적에 공감이 간다. 상위 3% 안에 드는 학생을 대상으로 초등학교때부터 영재교육을 실시하는 이스라엘이나, 초등학교 3학년생 가운데 1%에 해당하는 500명을 선발해 영재교육을 펴고 있는 싱가포르 등의 사례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
최근 한국과학영재학교로 이름을 바꾼 부산과학고는 그간 국내 영재학교의 모델 구실을 해왔다. 지난 2003년 3월 개교한 이 학교는 부산시 교육청과 과학기술부, 교육인적자원부 등의 적극적 지원 아래 과학영재교육의 요람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삼성전자 윤종용 부회장이 올 초에 교육인적자원부 직원을 대상으로 한 특강에서 "소수의 영재가 국가를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는 만큼 부산과학고와 같은 학교를 전국에 5개쯤 만들었으면 좋겠다"고 언급한 것도 과학영재 육성의 중요성을 강조한 말이다.
아울러 교육부 내에 영재교육 전담부서조차 없는 우리의 교육 현실에 대해서도 한번쯤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잠재적 천재성을 지닌 영재는 적지 않지만 그가 지닌 천재성을 발현시켜 알찬 결실을 거둘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일이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체계적인 지원 시스템과 법·제도적 장치가 뒷받침돼야 함은 물론이다.
얼마 전 과학기술부가 창의적 개인연구의 지원을 확대한다는 방침 아래 기초연구예산 중 38.6% 수준인 개인연구 지원 비중을 2008년까지 60%까지 늘리기로 한 것은 과학계에는 단비와 같은 희소식이었다. 특히,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갖고 있으나 연구비 조달에 어려움을 겪는 20-30대 신진 연구자의 연구비 수혜율을 50%까지 확대키로 한 것은 바람직한 조치라고 평가하고 싶다.
아울러 과학영재의 체계적 육성을 위해 과학영재교육원(초등학교)―과학영재학교(중학교)―과학고등학교 및 국제과학올림피아드(고등학교)―대통령과학장학생사업(대학) 등 전주기적 육성 체제를 구축함으로써 평생관리가 가능한 추적관리시스템(TMS)을 구축키로 한 것도 때늦은 감이 있지만 이제라도 국가적으로 더욱 관심을 기울일 만한 분야라고 판단된다.
지난해 전북 완주에 설립된 게임과학고처럼 분야별로 특화된 전문과학고도 앞으로 좀 더 신설할 필요가 있다. 게임과학고는 컴퓨터 게임 프로그래머와 미래 프로게이머를 전문적으로 양성한다는 점에서 앞으로 유망학교로 떠오를 공산이 크다. 이처럼 분야별 영재가 둥지를 틀고 마음껏 자신의 소양을 펼칠 수 있는 교육의 장이 사회적으로 충분히 마련돼야 한다.
인재는 태어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과학 영재는 특히 그렇다. 끊임없는 시행착오를 거쳐 다듬어지고 훈련되지 않는다면 단순한 선천적 천재성은 '잠재력'에 그치고 말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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