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밴더빌트(Vanderbilt) 대학교의 데이비드 슈발츠 연구원(David Schwartz, 아동심리학)은 최근 어린이들을 대상으로 매우 색다른 연구를 한 적이 있다. 서로 몰랐던 아이들을 모아 게임을 진행하면서 그 놀이가 진행되고 있는 상황을 모니터했다.
두 번째 게임이 다 끝나기 전에 또래 괴롭힘(bullying) 현상의 징조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일부 어린이들이 복종적인 태도를 취하기 시작했다. 이런 순종적인 자세는 괴롭힘을 당하고 있는 피해자들에게 나타나는 공통적인 모습이다.
순종적으로 변한 어린이들은 게임을 하고 있는 또래들에게 어떤 요구나 제의, 설득하는 일을 극도로 자제하고 있었다. 어떤 어린이들은 대답만 하고, 질문을 꺼내는 일조차 없었다. 전적으로 위축돼 수동적인 자세를 보이면서 게임을 즐기기보다는 따라하고 있었다.
힘의 역학관계, 긍정적으로 풀어야
이런 모습은 또래 괴롭힘 행위에 있어 또 다른 측면을 보여줬다. 괴롭힘의 가장 큰 원인은 가해자들이지만 피해자들 역시 사태를 악화시키는 요인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은 사태를 더 악화시킨다.

슈발츠 연구원은 “수동적이고, 소극적인 또래들이 늘어나면서 괴롭힘 행위는 더 늘어난다”고 말했다. 괴롭힘 행위에 재미를 느낀 일부 가해자들이 스스로 더 많은 희생자들을 찾아나서기도 한다는 것.
심리학자들은 점차적으로 또래 괴롭힘 행위가 학생들의 성격에서 비롯된 것이라기보다는 학생들 간의 힘의 역학관계에 의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서로 상호작용을 하면서 묶여 있다는 것이다.
때문에 많은 심리학자들은 또래 괴롭힘(bullying) 문제를 풀기 위해 이 힘의 역학관계를 긍정적으로 변화시켜 나가야 한다고 주장한다. 양측이 서로 책임감을 느끼는 상호 유기적인 관계를 말한다.
그러나 이런 유토피아를 만들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다. 토론토 대학의 데브라 페플러(Debra Pepler) 박사는 “괴롭힘 행위는 자신의 힘을 잘못 사용하는 데서 비롯된다”며, 이 문제가 학생들 간의 윤리, 더 나아가 어른들이 사는 사회의 윤리도덕과 연관돼 있다고 주장한다. 사회적 책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저명한 심리학자인 제럴드 패터슨(Gerald Patterson) 박사는 범죄적 행위를 저지르고 있으면서도 이익만을 강조하는 사회구조를 지적하고 있다. 이런 사회 분위기는 또래 괴롭힘과 같은 부작용을 일으키면서 결과적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막대한 부담을 안기고 있다는 것.
그러나 더 심각한 것이 있다. 노르웨이 베르겐(Bergen) 대학교 댄 올베우스(Dan Olweus, 심리학) 교수는 이런 괴롭힘 행위들이 인간의 자유를 파괴하고 있다고 주장한다. 더 나아가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놓고 있다는 것이다.
학생들 간에 싸움이 일어날 수도 있다. 그래서 한 친구가 다른 친구를 이길 수도 있다. 그래서 민주국가에서 대통령 선거를 하는 것처럼 악수를 하고 헤어질 수도 있다. 그러나 괴롭힘 행위에서는 그런 과정이 허용되지 않는다.
희생자에게 자유를 허락하지 않고 있다가 기회가 되면 상대가 안 되는 피해자를 여럿이서 폭행하는 도발적이고 폭력적인 행위가 비일비재 하다.
어른들…이전보다 더 큰 관심 기울여야
이런 문제들을 해소하기 위해 미국 심리학회(APA)에서는 괴롭힘 행위를 막기 위한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먼저 학생들 입장에서 가해자들과의 관계를 가능한 피하도록 권고하고 있다. 만일 괴롭힘을 당할 상황에 처하면 유머를 사용해 분위기를 바꿀 필요가 있다고 조언하고 있다.
여학생인 경우는 강한 톤의 말로 위기에 대처할 수 있다. 큰 소리로 “정신 좀 차려!(Get a life!)"라고 소리치고 유유히 다른 곳으로 걸어 나갈 경우 오히려 더 큰 효과를 거둘 수 있다고 충고한다. 주변의 여러 친구들을 사귀는 것도 방법 중의 하나다. 그러나 더 좋은 방법은 좋은 친구를 사귄 후 그들과 좋은 우정관계를 지속하는 일이다.
부모 입장에서는 자신의 자녀가 놀이터에서 공격을 받고 있는지 주의 깊게 살펴봐줄 것을 권고하고 있다. 어릴 적부터 괴롭힘 행위가 나쁜 행위라는 것을 거듭해 당부하는 일 역시 매우 강조하는 부분이다. 자녀들과의 대화도 매우 중요하다.
교육적 측면에서도 어린 학생들에게 이 문제를 스스로 해결토록 내버려두지 말라고 당부하고 있다. 이 괴롭힘 행위는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는 것. 오랜 기간 동안 지속돼 왔으며, 앞으로 계속 이어질 행위로 학생들에게 이 책임을 전가하는 일은 극히 무책임한 행위라고 질책하고 있다.
어른들이 이를 항상 지켜보면서 학생들이 이뤄놓은 사회가 순조롭게 돌아가는지 파악하고 어른들의 역할을 감당할 필요가 있다고 충고한다. 그러나 이 문제를 개인적 차원에서 보지 말아야 한다. 그룹 차원에서 봐야 한다는 것.
모든 학생들이 괴롭힘이 나쁜 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교사들 입장에서 연령별로 어떤 행위가 도를 넘어선 것인지 파악하고 있어야 한다. 중요한 것은 학교 분위기를 바꾸는 일이다. 심리학자들은 학교 차원에서 괴롭힘이 존재할 수 없는 분위기를 만드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보고 있다.
지금 세계 교육계는 점증하는 학교폭력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한국 역시 마찬가지다. 지난 2월 6일 정부는 늘어나는 학교폭력 근절을 위해 종합대책을 발표했다. 골자는 교사와 학부모의 책임을 강화하고, 예방교육을 확대하고, 게임·인터넷 중독 대책을 세우는 것 등이다.
그러나 가장 심각한 또래 괴롭힘 행위를 보면 윤리적이고, 심리적·사회적 측면들과 결부돼 있어 쉽게 풀어나가기 힘든 부분이 있다. 강경대책이든 대화방식이든 학생들 간에 일어나는 미묘한 부분들은 해결하기 힘들다.
무엇보다 중요한 일은 아직 성장단계에 있는 학생들의 상황에 어른들이 관심을 기울이는 일이다. 어린 학생들을 위해 이 사회가 윤리적으로 무엇을 해야 할지, 교사들이 무슨 일을 해야 할지, 학부모가 무슨 일을 해야 할지, 국가는 무슨 일을 해야 할지 서로 책임을 지려 하는 풍토가 조성됐으면 한다.
- 이강봉 객원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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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2-09-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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