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고양시의 일반계 고등학교 3학년 이모(19)군은 수능시험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았는데, 한 달에 100만 원이 넘는 고가의 수학과외를 계속하고 있다. 이제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차분히 혼자서 정리해야 할 시점이지만, 수학만은 포기할 수가 없다. 다른 과목 성적이 아무리 좋더라도 ‘수포자(수학을 포기한 학생)’는 결코 상위권 대학에 진학할 수 없다는 게 요즘 학부모와 학생들 사이 정설처럼 되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군은 아직도 자신이 왜 수학공부에 매달려야 하는지 의문이다. 자신은 영문학을 전공할 건데 미분, 적분 같은 어려운 수학공부가 무슨 소용이 있느냔 얘기다. 이처럼 수학을 어려워하는 많은 학생들은 "수학을 배워서 나중에 어디다 쓰느냐?"고 볼멘소리를 할 때가 많다. 환율, 이율 등 실생활에 많이 쓰이는 계산은 물론 간단한 사칙연산마저도 계산기로 해결하는 요즘 시대에 수학이 대단히 쓸모없어 보이는 게 사실이다.
수학을 잘해서 전공을 하고 싶은 학생들에게도 수학이 쓸모없어 보이기는 마찬가지다. “수학 전공해서 나중에 뭐 해먹고 살 거냐?”는 질문을 수없이 들어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2012년 미국 산업응용수학회(Society for Industrial and Applied Mathematics, SIAM)에서 발간한 보고서 Mathematics in Industry (MII 2012)에 따르면 미국내 수학 및 통계학 박사의 산업 진출 및 산업에서의 수학의 역할이 90년대에 비해 크게 증가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산업계에서의 수학 역할 크게 증가 추세
미국수학회 데이터에 따르면 2004년부터 2008년 사이의 통계학, 생물통계학을 포함한 수리과학 분야의 미국 박사 졸업생 중 787명(15%)가 산업계에 취직했으며, 이들의 연봉이 학계 임금 수준보다 2배 가까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는 수학적 방법에 기반한 빅데이터 이론은 질병의 진단과 예방에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거나 수학적 최적화 이론은 대도시 교통문제 해결에 돌파구를 만드는 등 수학이 산업현장에 어려운 문제들의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최근에 대두되고 있는 것이 바로 ‘산업수학(Industrial Mathematics)’이다. 이는 산업 현장에서 발생하는 문제들 중 수학으로 해결 가능한 것들이 많고, 문제의 성격과 필요에 따라 순수수학을 포함한 수학의 전 영역을 활용하기 때문에 전통적인 응용수학(Applied Mathematics)과 구분해서 ‘산업수학’으로 통칭하고 있다.
21세기 들어 산업이 고도화된 미국 등 선진국에서는 산업수학이 산업현장의 난제 해결과 혁신적인 상품 개발의 핵심적 요소로 떠오르고 있다. 이에 대해 이준엽 이화여대 교수는 “산업수학은 여러 방면에서 기존 산업의 혁신을 주도해 왔다”며 “확률변수와 미분방정식에 대한 이해에 고속계산기법이 어우러져 금융산업의 혁신을 불러왔고, 수학적 최적경로 알로리즘의 구현을 통해 내비게이션이 널리 활용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때문에 미국, 중국, 일본을 비롯한 유럽의 주요 국가에서는 산업수학을 위한 다학제간연구센터나 연구소를 구성해 운영하고 있으며 국가차원의 산업수학 활성화 프로그램을 통해 다양한 성공사례들을 보이고 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 산업계와의 상호교류 시작이 오래되지 않아 본격적인 문제해결과 인적교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문제헌터’ 수학자들, 국내 ‘산업수학’ 점화
미래창조과학부(장관 최양희)는 17일 수학계가 산업수학을 활용하여 산업현장의 문제를 해결하면서 새로운 유망상품의 개발을 지원할 수 있도록 ‘산업수학 문제헌터’를 출범시켰다. ‘수학이 산업에 도움이 된다’는 공감대 형성을 위해 ‘산업수학 점화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
먼저 21개 대학 100여 명의 수학교수들이 ‘산업수학 문제헌터’가 되어 수학으로 해결 가능한 산업현장의 문제들을 찾아 나서게 된다. 또 ‘산업수학 점화프로그램’을 통해 금융과 의료, 정보‧보안, 농림‧수산 등 다양한 분야의 약 34개 기업을 대상으로 공동프로젝트를 추진하게 된다.
이와 관련해 미래부는 “산업수학 육성이 미래 먹거리와 경쟁력 확보는 물론 대중화에도 기여하는 윈윈(win-win) 정책”이라며 “올해 연말까지 21개 대학에 27억 원 지원을 시작으로 앞으로 국내에서 이제 막 점화된 산업수학이 성과를 낼 수 있도록 지원할 것”이라고 밝혔다.
- 김순강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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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5-08-18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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