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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들이 과학기술의 방향을 정하는 시대 영화 속 패션 산업의 변화로 살펴본 과학기술 발전의 방향 전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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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 포스터 Ⓒ월트 디즈니 컴퍼니 코리아

20년 전 전 세계 관객을 사로잡았던 영화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가 후속편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로 다시 돌아왔다. 2006년 개봉한 1편에서 주인공 앤디는 전설적인 패션잡지 ‘런웨이’에 입사한 무경력 신입 비서였고, 미란다는 런웨이를 이끄는 편집장이자 패션계를 움직이는 막강한 권력자였다. 평범한 옷차림으로 면접장에 들어선 앤디는 화려하고 냉혹한 패션 업계의 관습에 적응하지 못해 고군분투하지만, 결국 미란다의 기대를 뛰어넘는 능력을 보여주며 성장해 나간다. 올해 개봉한 2편에서는 시간이 흘러 각자의 자리에서 다시 변화를 마주한 두 사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앤디는 뉴욕에서 인정받는 기자로 성장했고 미란다는 여전히 패션계에서 카리스마를 보여주지만, 급변하는 미디어 환경 속에서 새로운 압력과 마주한다.

 

패션 유행을 정하는 주체의 변화

1편과 2편을 비교해 보면 지난 20년 사이 패션계가 얼마나 극적으로 바뀌었는지 실감할 수 있다. 1편에서 패션은 선택받은 소수의 전문가들이 주도하는 영역처럼 그려졌다. 런웨이의 편집장과 디자이너, 사진작가, 에디터 등 업계의 권위자들은 무엇이 아름다운지, 무엇이 유행이 될지를 결정했고, 대중은 그 결과를 받아들이고 소비했다. 똑같아 보이는 청록색 벨트 두 개를 두고 고민하는 런웨이 사람들을 비웃던 앤디에게, 미란다가 “네가 입고 있는 파란색, 정확히는 세룰리안 블루 스웨터 역시 네가 그토록 무시하는 패션 산업의 선택이 쌓인 결과”라고 일침을 놓는 장면은 대표적인 명장면으로 꼽힌다. 아름다움과 멋에 대한 판단은 패션 업계 권위자들의 선택을 거쳐 구체화되었고, 소비자들은 그들이 정한 흐름을 따라가는 위치에 가까웠다.

20년이 흐름 지금 사람들은 패션 정보를 얻기 위해 더 이상 종이 잡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Getty Images
20년이 흐름 지금 사람들은 패션 정보를 얻기 위해 더 이상 종이 잡지에만 의존하지 않는다. ⒸGetty Images

2편에서는 시간이 흘러 그 위계가 무너졌음을 보여준다. 이제 유행은 잡지 에디터의 판단이 아닌, SNS, 온라인 쇼핑몰, 인플루언서, 알고리즘 추천에 의해 만들어진다. 사람들은 옷을 사거나 정보를 얻을 때, 종이 잡지와 같은 전통 매체보다는 영상 플랫폼과 온라인 평가 서비스에 더 크게 의존한다. 특히 소셜미디어가 생겨나면서 과거 유명 디자이너가 맡았던 유행 생성 기능이 일반 소비자에게 넘어갔다. 앤디가 몸담고 있던 언론 업계도 마찬가지다. 구독자 감소와 광고 수익의 변화 속에서 종이 신문과 잡지는 디지털 전환을 모색해야 하고, 기자들은 기사 작성뿐 아니라 영상과 SNS를 동시에 다뤄야 하는 현실에 놓여 있다. <악마는 프라다를 입는다 2>는 이러한 변화 한가운데 서 있는 미란다와 앤디가 어떻게 자신만의 방식으로 대응하며 위기를 헤쳐 나가는지 보여준다.

 

국가 발전 도구에서 사회문제 해결로의 과학기술

패션에서 확인된 이러한 변화는 우리나라 과학기술계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과거에는 정부가 과학기술 발전의 큰 방향을 정하고, 연구기관과 전문가가 이를 수행하는 이미지가 강했다. 1970년대 한국 경제 성장을 이끈 포항종합제철(현 포스코) 건설은 국가 주도 과학기술의 대표적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철강 산업은 국가 경제를 뒷받침할 핵심 기반 시설로 여겨졌고, 이에 따라 대규모 투자가 이루어졌다. 연구자들 역시 산업화라는 국가적 목표에 맞춰 연구개발을 진행했다. 당시 과학기술은 국가 발전을 위한 대형 프로젝트였고, 그 핵심 기술은 소수 전문가들의 전유물로 여겨졌다. 패션계에서 소수의 권위자가 유행을 정하고 대중이 이를 따라갔던 것처럼, 과학기술 개발로 시민들의 삶은 크게 나아졌지만 그 방향과 과정은 시민으로부터 출발하지 않았다.

과거에는 철강 산업과 같이 정부가 과학기술 발전의 큰 방향을 정했다. ⒸGetty Images
과거에는 철강 산업과 같이 정부가 과학기술 발전의 큰 방향을 정했다. ⒸGetty Images

반면 오늘날의 과학기술은 점점 더 시민의 삶과 밀접하게 연결되고 있다. 과학기술의 발전 방향은 사회가 무엇을 필요로 하는지, 시민들이 어떤 불편과 위험을 마주하고 있는지가 기준이 된다. 코로나19 팬데믹을 겪으며 우리는 백신 개발과 방역 기술이 사회적 요구에 얼마나 빠르게 부응해야 하는지를 경험했다. 기후변화, 미세먼지, 신재생에너지처럼 시민들이 일상에서 마주하는 문제들도 과학기술 연구의 중요한 우선순위가 되었다. 전기차 배터리와 인공지능 같은 신기술 역시 소비자의 요구와 환경 규제에 따라 발전 방향이 달라진다. 대중들의 집단적 취향이 SNS와 온라인 플랫폼을 통해 패션 유행을 만들어내듯, 이제는 시민의 요구와 사회적 가치가 연구개발의 방향을 결정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과학이 시민들과 가까워질수록 과학자의 역할도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연구자가 논문을 쓰고 기자가 이를 보도하는 방식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연구자가 직접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거나 팟캐스트, 공공 강연을 통해 대중과 소통하며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대학과 연구기관도 언론 보도에만 의존하기보다 시민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강연과 체험 프로그램을 늘려가고 있다. 이런 활동들을 통해 과학이 연구자들만의 언어에 머무르지 않고 시민들이 이해하고 질문할 수 있는 공공의 언어로 자리 잡을 때, 사회는 과학기술이 나아갈 방향을 더 현명하게 결정할 수 있다.

이제는 연구자가 직접 대중과 소통하며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Getty Images
이제는 연구자가 직접 대중과 소통하며 과학 커뮤니케이터의 역할을 수행하기도 한다. ⒸGetty Images

 

변화 속에서도 지켜져야 할 것들

물론 세월이 흐르더라도 계속 지켜져야 할 가치도 있다. 패션 거물의 권위가 약해지고 패션잡지의 영향력이 줄어들더라도, 패션이 지닌 본질적 가치, 즉 창의성과 장인정신, 아름다움에 대한 안목은 여전히 중요하다. 영화 속 미란다의 권위는 예전만큼 절대적이지 않지만, 그녀가 쌓아온 안목과 경험은 정보가 넘쳐나는 이 시대에서 오히려 필요한 전문성이다. 과학기술도 마찬가지이다. 시민과 소통하며 과학기술 정책을 세우고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과학기술의 역할을 강조한다고 해서, 기초연구의 가치가 줄어들거나 소홀해져서는 안 된다. 코로나19 백신, 반도체 혁명, 인공지능 기술은 모두 오랜 시간 이어진 연구와 수많은 실패 위에서 탄생했다. 과학기술을 바라보는 시선과 소통 방식은 변하고 있지만, 과학자들의 호기심, 실패를 허용하는 문화, 장기적 안목의 기초연구 지원은 계속 지켜져야 한다. 과학과 패션은 끊임없이 변화하는 환경 속에서도 전통과 혁신의 균형을 찾아야 한다는 점에서 닮았다.

시대가 변하더라도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은 지속되어야 한다. ⒸGetty Images
시대가 변하더라도 기초연구에 대한 지원은 지속되어야 한다. ⒸGetty Images
정회빈 리포터
acochi@hanmail.net
저작권자 2026-05-2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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