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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에너지
김현정 리포터
2025-05-19

“‘보노보노’는 불가사리 없으면 홍합 먹어요” 생태계 상호의존 확인 불가사리 감소 → 홍합 증가 → 해달 개체 수 확대로 이어진 생태계 연결 고리 밝혀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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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별'이 사라지자 해달이 움직였다?

일본 애니메이션 ‘보노보노(ぼのぼの)’의 캐릭터로도 유명한 해달은 귀엽고 영리한 해양 포유류다. 만화 속에서 항상 엉뚱한 질문을 던지며 친구들과 바닷가 숲속을 배회하지만 실제로는 그보다 훨씬 복잡하고 중요한 생태적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해달은 한때 인간의 해양 모피 수요로 인해 거의 절멸 직전까지 내몰렸다가 현재 국제자연보전연맹(IUCN)에 의해 멸종 위기종으로 지정됐다. 특히 미국 캘리포니아 연안에 서식하는 종인 남부 해달(Enhydra lutris nereis)은 현재도 미국 정부의 법적 보호를 받고 있으며 매우 제한된 지역에서만 그 모습을 볼 수 있다.

이처럼 보호가 절실한 해달의 개체 수가 최근 캘리포니아 몬터레이만 연안에서 오히려 증가하고 있다는 사실이 보고되었다. 

2013년 북미 서해안에서 발생한 대규모 질병이 조간대 생태계의 핵심 포식자인 불가사리를 급감시키자 불과 몇 년 만에 그 하위 먹이인 홍합의 개체 수와 분포가 폭발적으로 증가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 먹이 자원이 해달에게 도달하면서 식이 패턴은 물론 개체 수까지 큰 변화를 가져왔다. 이는 단순한 개체 수의 회복이 아니라 생태계에서 발생한 급격한 변화가 인접한 생태계의 최상위 포식자에게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몬터레이 아쿠아리움의 연구원인 조슈아 스미스 박사와 해양생태학자들은 이러한 현상을 ‘핵심종 상호의존(keystone interdependence)’으로 설명하며 국제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 저널에 발표했다. 이는 포식자-피식자의 관계로만 설명했던 기존의 생태이론을 넘어 생물 다양성과 보전 전략의 새로운 관점을 제시한 것으로 관심을 모으고 있다. 

애니메이션 캐릭터 ‘보노보노’로 유명한 해달은 가슴에 돌을 얹은 채 물 위에 떠 있다가 조개를 깨 먹는다. ⓒ“ぼのぼの” Take Shobo

애니메이션 캐릭터 ‘보노보노’로 유명한 해달은 가슴에 돌을 얹은 채 물 위에 떠 있다가 조개를 깨 먹는다. ⓒ“ぼのぼの” Take Shobo


불가사리의 전멸과 홍합의 확산, 포식자 해방 효과

연구진이 제시한 ‘핵심종 상호의존’ 개념은 포식자 해방 효과의 전형적인 사례다. 먹이를 조절하던 포식자가 사라지자 그 피식자는 빠른 속도로 번식하면서 생태계 내 공간을 점유하게 된 것이다. 사라진 포식자는 불가사리, 그 자리를 메운 건 홍합이다. 

2013년 북미 태평양 해양 전역에서 갑작스럽게 발생한 바이러스성 질환이 수천 킬로미터에 걸쳐 불가사리 대량 폐사를 발생시켰다. 이 질병으로 불가사리는 단 몇 주만에 조직이 녹듯이 괴사되었고 몸통이 분리되는 증상을 보였다. 

미국 해양생물학자들은 이 현상이 캘리포니아 연안을 포함한 서해안 전역에서 최소 20여 종 이상의 불가사리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보고했다. 특히 조간대의 핵심종인 보라불가사리(Pisaster ochraceus)는 지역에 따라 90% 이상 감소하거나 아예 자취를 감췄다고 분석했다. 2001년부터 2007년까지 안정적으로 증가하던 개체 수가 2013년 이후에는 관측 자체가 거의 불가능할 정도가 되자 해양 생태계 먹이망 구조에 큰 균열이 생겼다.

이렇게 불가사리가 사라지면서 그동안 포식 압력에 눌려 있던 홍합은 급속히 번식하고 확산하기 시작했다. 

2009년부터 2021년까지 장기 조사 결과에 따르면 홍합의 분포는 기존의 상부 조간대에서 더 아래쪽인 하부 조간대까지 확장되었다. 평균적으로 홍합이 분포하는 하한선은 9.59미터에서 12.1미터로 이동했고, 개체의 평균 크기도 37.5mm에서 47.6mm로 증가했다. 그뿐만 아니라, 해안 암반에서 차지하는 홍합의 면적 비율도 5.36%에서 18.4%로 3배 이상 증가하는 등 급격한 생태계 구조의 변화가 관측되었다.

불가사리의 급감으로 인해 조간대 하부로 홍합이 확산되면서 해달의 먹이 자원이 증가했다. 이 과정은 불가사리와 해달 사이의 간접적인 생태계 연결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Monterey Bay Aquarium

불가사리의 급감으로 인해 조간대 하부로 홍합이 확산되면서 해달의 먹이 자원이 증가했다. 이 과정은 불가사리와 해달 사이의 간접적인 생태계 연결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Monterey Bay Aquarium

 

해달의 식이 변화, “불가사리 없으면 홍합 먹지요”

불가사리가 해안에서 사라진 지 3년쯤 후에 해달의 식이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연구팀은 2008년부터 2023년까지 약 20년간 관찰된 해달의 포식 행동 데이터를 바탕으로 연도별 먹이 구성과 에너지 섭취량의 변화를 분석했다. 

2013년 이전에는 해달이 주로 성게(17.2±0.6%)를 잡아먹었고 홍합은 6.9±0.4%에 불과할 정도로 관심을 덜 가졌다. 그때의 홍합은 크기가 작고 물이 빠져나갔을 때에만 노출되어 접근이 까다로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6년부터 해안가의 조간대에 크고 쉽게 잡을 수 있는 홍합이 대량으로 생겨나면서 해달의 먹이 선택 비율에서 홍합이 17.7±2.1%로 두 배 이상 증가했다. 이는 연구진은 이 변화가 홍합의 크기 증가 및 접근 가능성 향상과 관련 있음을 지적했다. 

조슈아 스미스 박사는 “해달은 에너지 효율이 높은 먹이를 우선적으로 선택하는데, 불가사리 붕괴로 대형 홍합이 하부 조간대까지 퍼지면서 해달에게 새로운 먹이 자원이 열린 셈”이라고 설명했다. 

또한 해달은 홍합과 함께 성게도 계속해서 사냥하고 즐겨먹은 것으로 나타났는데 그 이유도 따로 있었다. 2014년경 북태평양에서 발생한 해양 열파(Marine Heatwave)로 인해 켈프 숲이 줄어들자 성게들은 먹이를 찾아 더 많이 움직이게 되었고, 그만큼 해달에게 더 잘 보이고 잡히기 쉬운 상태가 되었다. 해달은 이 기회를 놓치지 않았고 성게와 홍합 모두를 적극적으로 포식하기 시작한 것으로 분석된다. 

연구팀이 계산한 에너지 섭취량 모델에 따르면 해달의 평균 섭취 열량은 2014년부터 2019년 사이에 유의미하게 증가했다. 연구진은 성게와 홍합이 동시에 풍부했던 시기에는 에너지 섭취율이 최고 수준에 도달했으며 만약 홍합이 늘어나지 않았더라면 해달은 이 시기에 훨씬 적은 에너지를 얻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연구진은 이 분석을 통해 해달이 먹이의 품질과 접근성을 고려해 유연하게 식단을 바꾸며 생존 전략을 조정한다는 사실을 입증했다.

2013년 불가사리 집단 폐사 이후 해달의 먹이활동에서 성게와 홍합을 획득하기 위한 잠수 비율이 모두 증가했으며 홍합에 대한 포식 비중이 시간 경과에 따라 뚜렷하게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Monterey Bay Aquarium

2013년 불가사리 집단 폐사 이후 해달의 먹이활동에서 성게와 홍합을 획득하기 위한 잠수 비율이 모두 증가했으며 홍합에 대한 포식 비중이 시간 경과에 따라 뚜렷하게 상승하는 추세를 보였다. ©Monterey Bay Aquarium


성게+해달 풍부→해달 개체 수 증가, 핵심종 상호의존 입증

먹이가 증가하자 해달의 개체 수에도 변화가 나타났다.

연구팀이 몬터레이만 인근에서 2000년부터 2023년까지 실시한 장기 개체군 조사 결과에 따르면 2000년부터 2012년까지 해달의 평균 개체 수는 73±49마리였다. 반면, 2014년부터 2024년까지는 평균 535±91마리로 뚜렷한 증가세를 보였다. 이는 먹이 자원이 급격히 풍부해진 것이 해달의 생존과 번식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었음을 보여주는 수치다.

연구팀은 조간대에서 불가사리가 사라지면서 홍합이 늘고 해달이 이를 새로운 에너지 자원으로 삼아 개체군을 확대하는 일련의 과정을 ‘핵심종 상호의존(keystone interdependence)’으로 제시했다. 

기존의 생태 이론은 하나의 핵심종이 자신의 생태계 안에서만 강한 영향을 미친다고 보았다면 이번 연구는 한 생태계에서 핵심종이 사라지면서 벌어진 변화가 인접한 생태계의 또 다른 핵심종에게 자원 보조(subsidy)처럼 작용할 수 있다는 사실을 실증적으로 보여주었다.

공동 저자인 미셸 스태들러 박사는 “기존의 먹이사슬 구조만으로는 설명하기 어려운 복잡한 생태계 상호작용의 실례”라고 평했다. 하나의 종이 줄거나 늘어나는 문제가 아니라 생태계 간 경계를 넘나들며 일어나는 연결 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이다.

연구팀은 이 개념이 향후 생물 다양성 보전과 생태계 관리 전략에 중요한 함의를 가질 것이라고 강조했다. 

조슈아 박사는 “단일 종을 보호하는 데 그치지 않고 연결된 생태계 전체의 동적 관계를 고려해야만 지속 가능한 보전이 가능하다”고 말했다. 특히 기후변화, 해양 열파, 전염병 등 복합적인 교란이 잦아지는 시대에는 생태계 내부만이 아니라 이웃 생태계와의 연결 구조를 이해하는 것이 필수적이라는 설명이다. 

이번 연구는 해양 생태계가 보여주는 복잡하고 정교한 연쇄작용을 밝힌 중요한 전환점이며 향후 보전 생물학, 생태 모델링, 그리고 정책 수립에 있어 새로운 기준점을 제공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캘리포니아 스틸워터 코브에서 불가사리 붕괴 전후의 동일 위치를 비교한 결과 홍합의 분포가 확장되었고, 해달이 이 홍합을 사냥하는 모습이 함께 관찰되어 생태계 변화의 시각적 증거를 제공한다. ©Monterey Bay Aquarium

캘리포니아 스틸워터 코브에서 불가사리 붕괴 전후의 동일 위치를 비교한 결과 홍합의 분포가 확장되었고, 해달이 이 홍합을 사냥하는 모습이 함께 관찰되어 생태계 변화의 시각적 증거를 제공한다. ©Monterey Bay Aquarium

김현정 리포터
vegastar0707@gmail.com
저작권자 2025-05-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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