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일 스페이스엑스 크루(SpaceX crew) 2에 탑승한 4명의 우주비행사는 6개월간의 과학 임무를 마치고 미국 플로리다 멕시코만에 무사 귀환했다. 그들은 국제정거장에서 다양한 과학실험을 수행했고 이제 지상에서 테스트할 일만 남았다.
특히, 이번 우주비행사들은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 수행한 우주 식량작물 프로젝트인 ‘식물실험(Plant Habitate, 이하 PH)-04’ 에서 최초로 고추 재배에 성공했다.
재배에 성공한 고추는 뉴멕시코 주립대학에서 육종한 ‘뉴맥스 에스파놀라(NuMex ‘Española Improved’라는 교배 품종이다. 나사 연구진들이 2년간 전 세계 24개 품종 중에서 고른 것이다. 이 품종은 우주 정거장 내 실험 장치와 같은 시설을 지상에 설치해 테스트한 결과 재배해 가장 잘 적응했다.
나사 연구진은 우주에서 4개월 정도의 재배기간을 계획했다. 고추는 발아하는데 보름 정도, 꽃이 만들어지기까지 90~120일 소요된다. 재배기간이 길어 미세중력 환경에서 재배하기에는 불리한 작물이다.
그나마 자가수분이 가능한 것이 장점이다. 재배 실험 당시 식물재배장치의 팬 바람을 이용하거나 꽃을 흔들어 수분율을 높였다. 우주비행사 메건 맥아더는 “지구에서 식물을 가꾸는 작업과 비교해 훨씬 집중력을 가져야 했다”고 재배 소감을 밝혔다.
우주비행사들은 48개의 씨앗을 심고, 10월 말과 11월 초 두 번에 걸쳐 수확했다. 분석을 위해 고추 20개를 알루미늄 포일로 싸서 –80도 냉동고에 보관한 상태로 지구 귀환 시 가져왔다. 여분의 물량은 기호 검증을 위해 우주 임무 수행 당시 연구원들에게 제공됐다. 맥아더 연구원은 선실 내에서 수확한 고추와 소고기와 토마토소스를 곁들인 ‘타코(tacos)’를 만들어 트위터에 공개하기도 했다.
우주 식량식물로 가능성 높은 고추 …미생물 오염도 적고, 비타민 C 풍부
이번 우주 실험에서 왜 고추 종자를 선택했을까. 포장된 식품은 오래 보관할수록 비타민C와 K 등의 영양소가 많이 손실된다. 우주비행사들은 미세중력과 우주방사선이라는 척박한 환경에서 영양소 부족으로 뼈와 근육 손실이 발생할 수 있어 영양 섭취가 중요하다.
고추는 비타민C가 풍부한 작물로 신선한 감귤류의 비타민C 함량을 훨씬 능가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PH-04의 매트 로메인 수석 연구원은 “우주비행사들은 미세중력 환경에서 잠시 미각과 후각 일부를 잃을 수 있다”며 “고추와 같이 색깔과 냄새나는 채소 섭취가 우주비행사의 건강을 개선하는 데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미생물 수준이 낮은 것도 있다. 작물이 성장하려면 토양 미생물의 작용이 영향을 줄 수 있다. 대부분 섭취 시 인체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는 미생물이다. 물론 우주에서 재배 시 소독과정을 거치지만, 단 한 번 오염이 발생하면 우주에서 면역 조절이 원활하지 않은 신체에 악영향을 끼칠 수 있다.
하지만, 고추는 매운맛을 나타내는 캡사이신(capsaicin)이 함유되어 곰팡이나 기타 균류의 접근을 막는 항균 효과를 갖고 있다고 보고된 바 있다. 지난해 유럽에서 발표된 논문에서 고추에 함유된 향신료가 인체에 질병을 일으키는 장내 병원균을 제거하는 효과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PH-04의 라쉘 스펜서 책임연구원은 “미세중력에서 다루기 쉽고, 수확 후 복잡한 가공이 필요하지 않다”고 말했다. 그는 “인류가 화성을 정복하는 데 영양가 높은 음식도 중요하지만, 맛도 있어야 한다”며 고추가 우주 식량으로의 가능성을 기대했다.
식물재배장치 개발로 우주 작물 개발에 청신호
고추가 우주 식량으로 가능성을 내비친 것은 재배 시설의 발전도 한몫했다. 우주에서 식물재배를 위해 처음 개발한 장치는 ‘Advanced Astroculture(ADVASC)’와 ‘Biomass Production System(BPS)’이다. 미세중력에서도 재배가 가능한 시설이지만, 식물이 성장할만한 공간이 협소한 단점이 있다.
기존의 장치를 개량한 것이 채소재배장치(Veggie)와 식물재배장치(APH)다. 우주 환경의 악조건을 완화하도록 설계됐다. 채소재배장치는 주로 상추와 같은 엽채류를 재배하는 데 사용됐다.
2014년 4월에 국제우주정거장에서 붉은 로메인 상추를 첫 채소 작물로 재배를 시작으로 적색 케일과 상추, 새싹채소인 경수채, 백일홍 등이 성공적으로 재배됐다. 우주비행사 스콧 켈리는 2016년 밸런타인데이에 맞춰 지구를 배경으로 우주정거장 내부에서 백일홍 꽃다발을 촬영한 사진은 화제가 됐었다.
식물재배장치(APH)는 정밀한 실험측정이 가능한 재배 환경제어를 갖춘 장치다. 광합성 속도와 호흡량 측정이 가능하고 무엇보다 대형 전자레인지 크기로 180여 개의 센서와 기존 장치보다 높은 광도와 물주기, 비료 등을 자동으로 제어할 수 있다. 첫 실험 식물로는 애기장대(Arabidopsis thaliana)로 2018년 봄에 재배에 성공했다. 당시 미세중력에서 영양소 전달 능력이 테스트 됐었다.
2020년 11월에는 식물재배장치에서 애기장대와 같은 십자화 과(Family) 식물인 무 재배에 성공했다. 그리고 올해 고추 수확에 성공해 과채류 작물로는 최초로 우주에서 재배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우주에서 식물은 인간의 생명을 유지하는 주요 공급원 이상의 가치가 있다. NASA 케네디 우주센터 지오이아 매사 박사는 “‘그린섬(green thumb, 식물을 가꾸는 손이라는 의미)’이 우주비행사들이 갇혀 있는 고립된 마음 상태를 완화하는 데 도움이 되는지 24명의 우주비행사를 조사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정승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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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21-11-16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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