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자리를 '만드는' 인류
실망이 앞설 사람들도 있을 것이고, 이미 알고 있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사실, 오리온자리를 이루는 별들은 서로 가깝지 않다는 사실을 말이다.
이들은 오히려 정말 멀리 떨어져 있다. 오리온의 허리띠를 이루는 세 별 중 하나인 알니타크는 지구에서 약 800광년 떨어져 있고, 옆의 알닐람은 무려 약 1,340광년 떨어져 있다. 같은 허리띠에 나란히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우주 공간에서 500광년 이상 떨어진 전혀 다른 별들이다. 별을 구성하고 있는 성단도 매우 다를뿐더러, 실제로도 아무 관련들이 없는 별들이다. 이는 우리가 밤하늘에서 보는 별자리는 3차원 우주를 2차원으로 투영했을 때 우연히 만들어진 패턴이며, 앞선 설명처럼 실제로 그 별들은 서로 '아무런' 물리적 관계가 없다.
그런데도 인간은 그 사이에 선을 그었다. 그리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오리온은 우리가 아는 가장 용감한 사냥꾼이 되었고, 큰곰은 하늘을 돌았고, 북극성은 언제나 북쪽을 가리켰다. 그 이야기들로 수천 년을 항해했다. 실제로 연결되어 있지 않은 별들 사이에 그은 선이, 인류를 대륙에서 대륙으로 이어주었다. 나침반이 없던 시절, 폴리네시아의 항해자들은 별자리만으로 태평양을 건넜다. 허구의 선이 실제의 항로가 된 것이다.
의미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천문학을 공부하다 보면 별자리에 대해 묘한 감각이 생긴다. 사실 '별자리' 자체에 대해서 연구하는 '낭만적인' 천문학 분야는 없지만, 그렇다고 별자리를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지 않는 천문학자들은 없을 것이다.
다만 별자리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 인류가 직접 하늘에 그린 것이다. 그리고 흥미롭게도, 문화마다 같은 별들을 다르게 연결했다. 서양에서 오리온이라고 부르는 별들을 한국에서는 삼태성이라고 불렀고, 이집트에서는 이를 오히려 오시리스의 허리띠로 보았으며, 또 다른 문화권에서는 전혀 다른 이야기로 연결했다. 별들은 그대로였지만, 선은 달랐다. 같은 하늘을 보면서 서로 다른 우주를 살았던 것이다.
이것이 처음에는 별자리가 허구라는 말처럼 들릴 수 있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별자리가 인간의 발명이라는 사실이 오히려 더 경이로운데, 아무런 물리적 연결이 없는 별들 사이에서, 인간은 패턴을 찾고 이야기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이야기가 실제로 작동했다. 다른 문화권에서 만든 다른 별자리들은 인류의 항해를 가능하게 하고, 계절을 알려주고, 공동체를 하나로 묶어주었다. 의미는 발견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만들어진 의미도 충분히 실재한다.
삶의 별자리를 만드는 것
돌아보면 우리도 삶에서 별자리를 만들고 있다. 우리는 늘 그래왔다. 흩어져 있는 사건들 사이에 선을 긋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것을 의미라고 부른다. 어린 시절의 어떤 경험이 지금의 나를 만들었다는 것. 우연히 만난 사람이 삶의 방향을 바꿨다는 것. 실패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은 다른 길로 가는 입구였다는 것. 이 이야기들이 우리가 스스로에게 들려주는 별자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이 이야기들이 객관적으로 옳은지를 증명하기는 어렵다. 어쩌면 그 사건들은 오리온자리의 별들처럼, 실제로는 아무런 연결 없이 그냥 일어난 일들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이에 선을 긋고 이야기를 만드는 것이 우리를 앞으로 나아가게 한다. 의미가 있기 때문에 걷는 것이 아니라, 걷기 위해 의미를 만드는 것이다. 그 의미가 우리 안에서 실재하는 한, 그것은 충분히 진짜일 수 있다.
실제로 심리학 연구들은 자신의 삶에 일관된 이야기를 부여하는 능력이 정신 건강과 깊이 연관되어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건들이 연결되어 있다는 감각, 내가 어디서 왔고 어디로 가는지에 대한 이야기. 이것이 없으면 삶이 파편처럼 느껴진다. 별자리 없는 밤하늘처럼, 점들만 가득하고 방향이 없는 것처럼. 즉, 별자리를 만드는 것은 사치가 아니라 생존일 수 있다.
어떤 선을 긋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같은 별들이지만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별자리가 만들어지듯이, 같은 사건들이라도 어떤 선을 긋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이야기가 된다. 같은 실패를 두고 "나는 안 되는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고, "이 경험이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라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같은 이별을 두고 "나는 사랑받을 수 없는 사람이다"라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고, "내가 맞지 않는 것을 알게 되었다"라는 이야기를 만들 수도 있다. 별들은 그대로이지만, 선이 다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이것이 삶의 이야기를 함부로 완성하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아직 관측이 끝나지 않았는데 섣불리 별자리를 확정하면, 나중에 새로운 별이 발견됐을 때 수정하기 어려워진다. 지금 내가 보고 있는 점들이 전부가 아닐 수 있다. 아직 보이지 않는 별들이 있고, 그 별들이 더해졌을 때 전혀 다른 그림이 그려질 수도 있다. 지금 힘든 경험이 나중에는 전혀 다른 의미로 읽힐 수 있다. 그래서 어떤 이야기도 아직 최종본이 아니다.
또 한 가지, 우리는 때때로 타인이 그어준 선으로 자신의 별자리를 만들기도 한다. 누군가가 "너는 이런 사람이야"라고 말했을 때, 그 선을 받아들여 자신의 이야기로 삼는 것이다. 하지만 별자리는 스스로 그릴 수 있다. 같은 별들이지만 다르게 연결할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자신의 이야기를 타인이 그어준 선으로 살아갈 필요는 없다.
선을 긋는다는 것의 용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을 긋는 것은 필요하다. 완전한 그림이 완성될 때까지 기다리다가는 아무것도 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고대의 항해자들도 별자리가 완벽한 진실이 아니라는 것을 몰랐지만, 그 불완전한 지도로 대양을 건넜다. 지금 가진 점들로 선을 긋고, 그 선을 따라 걷고, 새로운 점이 발견되면 선을 고치는 것, 그것이 삶을 살아가는 방식이다.
선을 긋는다는 것은 어떤 의미에서 용기 있는 행위이다. 아직 모든 것을 알지 못하는 상태에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내 이야기라고 말하는 것. 이 경험들이 연결되어 있다고, 내가 어디로 가고 있다고 믿는 것. 그 믿음이 틀릴 수도 있다. 하지만 믿음 없이는 항해할 수 없다.
우주는 광활하고 우리는 작다. 하지만 이 작은 존재들이 수십억 광년 밖의 빛을 포착하고, 별들 사이에 선을 긋고, 이야기를 만들고, 그 이야기로 살아간다. 그것이 경이롭지 않은가.
'진짜' 별자리는 하늘에 없다. 우리가 만든다. 그리고 그 만들어진 것들이 우리를 여기까지 데려왔다. 오늘 밤, 당신은 어떤 선을 긋고 있는가.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7-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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