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주에는 국경이 없다
국제우주정거장(ISS)에서는 하루에 지구를 16번 돈다. 90분에 한 바퀴이다. 그 속도로 날다 보면 낮과 밤이 45분 간격으로 교차하고, 한 번의 궤도 주기 동안 수십 개의 나라 위를 지나간다. 흥미로운 점은 (어찌보면 당연하지만) ISS 창문 밖으로 내려다보면 국경선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산맥과 강과 사막과 바다가 있을 뿐이다.
우주인들이 우주 궤도에서 지구를 직접 내려다보았을 때 겪는 깊은 심리적 변화를 '조망 효과(Overview Effect)'라고 부른다. 이를 경험한 우주인들은 공통적으로 말한다. 지구에서 내려다볼 때는 인간이 만든 경계들이 얼마나 임의적으로 느껴지는지 모른다고. 하나로 이어진 푸르고 연약한 지구의 모습 앞에서, 국경이라는 것이 얼마나 인간적인 발명인지를 실감하게 된다는 것이다.
우주 조약(1967년)은 우주 공간을 어느 나라의 영토로도 주장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달도, 화성도, 소행성도 특정 국가의 것이 될 수 없다. 우주는 인류 공동의 영역이다. 국경 없는 공간. 언뜻 이상적으로 들린다. 그런데 오래 생각해 보면, 경계가 없다는 것이 꼭 이상적인 상태는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될 수 있다.
우주에도 사실 (아주 희미한) 경계는 있다
인간이 만든 국경선은 보이지 않지만, 우주에는 자연이 만든 경계들이 있다. 태양풍이 성간 물질과 만나는 경계인 헬리오스피어(heliosphere)가 그것이다. 보이저 1호가 2012년에 이 경계를 넘었다. 은하도 중심부에서 바깥으로 갈수록 별의 밀도가 낮아지다가 성간 공간으로 서서히 이어진다. 다만, 이것들은 뚜렷한 선이 아니라 희미해지는 전환 구역이다. 완전히 막힌 벽이 아니라, 안과 밖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경계이다.
경계는 인간만의 발명이 아니다. 자연 어디서나 경계는 존재하고, 그 경계가 있기 때문에 구조가 유지된다. 경계는 분리가 아니라, 형태를 만드는 것이다.
경계 설정이 왜 그렇게 어려운가?
그렇다면 왜 우리는 경계를 긋는 것을 그토록 어려워할까? 세포막처럼 필요한 것은 통과시키고 해로운 것은 막으면 되는 것 아닌가. 원리는 단순하다. 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렇지 않다.
경계 설정의 어려움은 두 곳에서 온다고 생각한다. 하나는 무엇이 해로운 것이고 무엇이 필요한 것인지가 항상 명확하지 않은 상황이다. 세포막은 분자의 크기와 전하로 판단하면 되지만, 사람 사이에서는 기준이 훨씬 흐릿하다. 지금 이 요청이 나를 소모하는 것인지, 아니면 불편하지만 받아들여야 하는 것인지를 그 순간에 판단하기가 어렵다.
또 하나는 경계를 긋는 것 자체가 관계를 위협할 수 있다는 두려움에서 올 수 있다. 거절하면 관계가 틀어질 것 같고,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나쁜 사람이 될 것 같은 느낌. 이 두려움이 경계를 자꾸 안쪽으로 밀어 넣는다.
여기서 한 가지 더 생각해 볼 것이 있다. 우리는 종종 '경계 없음'을 따뜻함으로, '경계 있음'을 차가움으로 혼동한다. 경계를 긋는 사람을 차갑거나 이기적이라고 느끼고, 모든 것을 받아주는 사람을 따뜻하다고 느낀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애석하게도 경계 없이 모든 것을 받아주는 사람은 언젠가 반드시 지치고, 지친 사람은 결국 더 차갑게 닫혀버린다. 처음부터 명확한 경계를 가진 사람이 오히려 더 오래, 더 진심으로 연결될 수도 있는 아이러니 한 상황이 이어질 수 있다.
경계가 없을 때, 경계가 너무 두꺼울 때
앞선 설명대로 경계가 없으면 결국 지친다. 자신의 시간과 에너지와 감정을 보호하지 못하면 정작 자신이 사라진다. 심지어 로봇도 배터리가 닳으면 지치고 충전 전까지 잠시 휴식을 취하게 된다.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서 경계를 포기했다가 결국 아무것도 줄 수 없게 되는 역설이 여기서 생긴다. 이것은 일에서도, 관계에서도 반복되는 패턴이다. 처음에는 괜찮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쌓인 것들이 한꺼번에 무너질 때, 그 무너짐은 예고 없이 온다.
반대로 경계가 너무 두꺼우면 고립된다. 제임스 웹 우주망원경(JWST)이 15개국의 협력으로 가능했던 것처럼, 혼자서는 닿을 수 없는 곳이 있다. 자신을 보호하려다가 성장의 기회를 막아버리는 것이다. 흥미로운 것은, 경계가 없어서 지치는 사람과 경계가 너무 두꺼워서 고립되는 사람 모두 결국 비슷한 감각에 도달한다는 점이다. 연결되지 못한다는 느낌. 방향이 다를 뿐, 도착하는 곳은 같다.
고독과 협업, 그 경계를 오가는 것
이 경계의 문제를 가장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것이 고독과 협업의 관계일 것이다. 천문학에는 두 가지 얼굴이 있다. 밤새 혼자 망원경 앞에 앉아 어둠 속에서 빛을 기다리는 시간, 논문의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는 시간. 이것들은 혼자 하는 일이다. 동시에 JWST는 수천 명이 25년에 걸쳐 만든 망원경이다. 이 두 얼굴은 서로 모순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
고독이 만드는 것은 단순히 깊은 생각만이 아니다. 외부의 자극이 없을 때, 우리는 자기 자신과 만난다. 무엇이 진짜 중요한지, 무엇이 불안한지, 무엇을 원하는지. 타인의 시선과 기대에 맞추다 보면 자신의 것이 무엇인지 흐려진다. 고독은 그 흐림을 걷어내는 시간이다. 그런데 많은 사람이 고독을 원한다고 말하면서도 실제로 혼자가 되면 불편함을 느낀다. 진짜 고독은 단순히 혼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시간을 온전히 자신과 함께 보내는 것이기 때문이다.
협업이 만드는 것은 그와 사뭇 다르다. 내가 오랫동안 혼자 생각하다 보면 특정 방향으로 사고가 편향된다. 동료가 다른 관점에서 질문을 던질 때, 내가 보지 못했던 맹점이 드러난다. 고독이 자기 자신과 만나는 시간이라면, 협업은 자신의 한계와 만나는 시간이다. 그리고 협업에서 얼마나 많은 것을 끌어낼 수 있는지는, 그 이전에 혼자 얼마나 깊이 생각해 왔는지에 달려 있다. 고독의 깊이가 협업의 질을 결정하는 것이다.
투과성 있는 경계를 찾아가는 것
우리는 모두 이 세상이 처음이다. 딱 맞는 경계를 처음부터 잘 긋는 사람은 없다. 그것은 한 번에 설정되는 것이 아니라, 관계와 상황 속에서 계속 조정되는 것이다. 세포막도 상황에 따라 투과성이 달라진다. 필요할 때 열리고, 필요할 때 닫힌다.
중요한 것은 경계를 긋는 이유일 것이다. 타인을 밀어내기 위해서가 아니라, 더 오래 연결되기 위해서. 자신을 지켜야 타인에게 줄 수 있다는 것. 나를 지키면서도 연결되고 싶다는 마음은 모순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이 가장 지속 가능한 연결의 조건이다.
그리고 어쩌면 경계를 긋는 연습이야말로, 관계를 오래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기술인지도 모른다. 세포막이 있기 때문에 세포가 살아있을 수 있는 것처럼, 경계가 있기 때문에 관계가 오래갈 수 있다. 우주에 국경은 없지만, 구조는 있다. 그 구조가 있기에 별도, 은하도, 태양계도 존재할 수 있는 것처럼.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7-03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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