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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할 것들이 흔들릴 때, 흔들린 뒤에야 보이는 것들 열한 번째 이야기 - 인생이 흔들려도 꿋꿋이 버티는 멋진 영혼들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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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43년, 니콜라우스 코페르니쿠스는 태양 중심설을 담은 『천구의 회전에 관하여』를 세상에 내놓았다. 핵심 내용은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 태양 주위를 공전한다는 지동설이었다. 당시 지배적이던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을 정면으로 뒤집는 주장이었다. 흥미로운 점은 코페르니쿠스가 자신의 이론이 불러올 논란을 우려하여 출판을 거듭 미루다가, 결국 사망 직전에야 이 책을 내놓았다는 것이다.

그리고 그의 우려는 현실이 되었다. 수십 년이 흐른 후, 망원경으로 목성의 위성들을 관측한 갈릴레오 갈릴레이는 지동설이 옳다는 확신이 있었다. 하지만 1616년과 1633년, 두 차례 종교재판에 선 갈릴레이는 결국 성경과 교회 교리에 반한다는 이유로 유죄 판결을 받고, 지동설을 철회한 뒤 가택 연금형에 처했다. 가톨릭교회가 공식적으로 잘못을 인정한 것은 그로부터 무려 350년이 지난 1992년의 일이었다.

하지만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수많은 과학적 관측과 이론의 뒷받침 없이, 오직 직관만으로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Getty Images
하지만 솔직하게 생각해보자. 수많은 과학적 관측과 이론의 뒷받침 없이, 오직 직관만으로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Getty Images

지금이야 천동설을 고집했던 사람들을 어리석다고 쉽게 말할 수 있다. 하지만 솔직하게 생각해 보자. 수많은 과학적 관측과 이론의 뒷받침 없이, 오직 직관만으로 '지구는 태양을 돌고 있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발밑의 땅은 전혀 움직이지 않는 것처럼 느껴지고, 태양은 매일 동쪽에서 떠서 서쪽으로 지는데? 그렇게 생각해 보면, 저항이 있었던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당시 사람들이 유독 완고했기 때문이 아니다. 당연했던 것들이 흔들릴 때, 사람은 누구나 저항한다.

 

당연한 것들이 흔들릴 때

우리는 흔히 세계관을 단순한 지식의 모음으로 생각한다. 새로운 사실이 나오면 이전 것을 교체하면 된다고 여긴다. 하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않다. 과학철학자 토머스 쿤이 지적했듯이, 우리가 현실을 이해하는 것은 개별 지식이 아니라 그것들을 꿰어놓은 틀이다. 그 틀 안에서 우리는 질문하고, 해석하고, 판단한다.

틀이 흔들리면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함께 흔들린다. ©Getty Images
틀이 흔들리면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함께 흔들린다. ©Getty Images

문제는 그 틀이 흔들릴 때일 것이다. 틀이 흔들리면 그 안에 있던 모든 것이 함께 흔들린다. 무엇이 중요한지, 무엇을 믿어야 하는지, 내가 어떤 사람인지까지. 단순히 생각 하나가 바뀌는 것이 아니라, 현실을 바라보는 방식 자체가 무너지는 경험이다. 그것이 고통스러운 이유이다.

 

삶에서 당연한 것들이 흔들리는 순간

이런 경험은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오랫동안 옳다고 믿어온 선택이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오는 순간. 깊이 신뢰했던 관계가 생각과 달랐다는 것을 알게 되는 순간. 지금까지 살아온 방식 자체를 처음부터 다시 봐야 할 것 같은 순간. 이것들이 천문학의 언어로는 패러다임 전환이지만, 삶의 언어로는 당연했던 것들이 흔들리는 경험이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Getty Images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Getty Images

그리고 이런 흔들림이 없는 삶은 없다. 겉으로 보기에 완벽해 보이는 사람들, 흔들림이라고는 없을 것 같은 사람들에게도 각자의 방식으로 흔들림은 찾아온다. 누구도 예외가 아니다.

그 순간의 특징은, 이전 방식으로는 현실을 더 이상 설명할 수 없다는 느낌이다. 예전에는 당연하게 보이던 것이 갑자기 이상하게 보이고, 중요했던 것이 사소해 보이고, 보이지 않던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이것이 불편한 이유는 지식이 바뀐 것이 아니라, 현실을 이해하는 틀 자체가 흔들리기 때문이다. 코페르니쿠스 시대의 사람들이 지구가 돈다는 사실 앞에서 느꼈던 것과 본질적으로 다르지 않다.

 

저항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통과해야 한다

그 흔들림 앞에서 저항하는 것은 자연스럽다. 오랫동안 기대고 있던 틀을 내려놓는 것은 쉽지 않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잃는 일이기도 하다. 그 저항을 나약함이나 고집으로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그것은 그 틀이 그만큼 깊이 자리 잡고 있었다는 증거이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결국 받아들여진 것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Getty Images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결국 받아들여진 것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Getty Images

하지만 저항에만 머무르면 전환은 일어나지 않는다.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이 결국 받아들여진 것은 강요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새로운 틀로 설명되는 것들이 너무 많아져서, 이전 틀을 유지하는 것이 더 이상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저항의 시간이 있고, 그것을 통과하는 시간이 있다. 그 과정을 건너뛰는 것은 누구에게도 불가능하다.

 

그리고...흔들린 뒤에야 보이는 것들

당연했던 것들이 흔들리고 난 뒤에는, 이전으로 돌아갈 수 없다. 코페르니쿠스 이후 인류는 더 이상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라는 환상을 갖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그 겸손함 위에서 현대 천문학이 세워졌다. 자신이 우주의 중심이 아니라는 것을 받아들인 이후에야, 비로소 우주를 제대로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했던 것들이 흔들리는 고통을 통과한 사람은 그 이전보다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된다. ©Getty Images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했던 것들이 흔들리는 고통을 통과한 사람은 그 이전보다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된다. ©Getty Images

개인도 마찬가지이다. 당연했던 것들이 흔들리는 고통을 통과한 사람은 그 이전보다 더 넓은 시야로 세상을 보게 된다. 익숙한 틀이 사라지는 것은 아프다. 하지만 그 고통은 더 넓은 세계로 들어가는 입구이다. 일부러 자신을 흔들 필요는 없다. 하지만 크고 작은 흔들림이 찾아올 때, 그것을 피하려 하기보다 통과하려 할 때, 우리는 조금씩 더 넓어진다. 흔들리지 않으면 성장도 없다.

김민재 리포터
minjae.gaspar.kim@gmail.com
저작권자 2026-06-19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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