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요함이 자원이 되는 세계
하와이의 마우나케아, 칠레의 세로 파라날, 스페인의 카나리아 제도 등의 산꼭대기에는 천문대들이 존재한다. 이 장소들은 전파가 아닌 빛을 관측하는 광학 천문대들이다. 이들은 공통점이 있다. 인적이 드물고, 대기가 안정적이며, 무엇보다 어둡다는 것이다. 가시광선과 적외선으로 우주를 보는 천문학자에게 어둠은 반드시 필요한 자원이다. 외부의 빛이 없어야 수십억 광년 밖에서 날아오는 희미한 신호를 포착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주변이 밝으면 그 신호는 잡음에 묻혀 사라진다. 보고 싶은 것이 희미할수록 망원경의 성능은 매우 민감해야 하지만, 무엇보다 기본적으로 지켜야 할 점은 주변이 고요해야 한다는 점이다.
하지만 우리는 알고 있다. 세상은 점점 밝아지고 있다는 사실을. 도시는 매일매일 팽창하고, LED 조명이 보급되고, 위성 군집이 밤하늘을 가로지른다. 국제 밤하늘 협회(IDA)에 따르면 지구 인구의 80퍼센트 이상이 이미 빛 공해의 영향을 받는 하늘 아래 살고 있다고 한다. 아쉽게도 은하수를 맨눈으로 본 적 없는 사람이 세상의 다수가 되었으며, 이에 우리는 고요함을 잃어가고 있다.
고요함을 잃으면 무엇을 잃는가
빛 공해가 천문대만의 문제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생태계 전반에서 그 영향이 보고된다. 철새의 이동 경로가 교란되고, 야행성 동물의 행동 패턴이 변화하고, 해변에서 부화한 바다거북이 도시 불빛을 따라 바다 반대 방향으로 걷는다. 희미한 신호를 따라 살도록 설계된 것들이, 더 강한 신호에 압도되어 방향을 잃고 있는 것이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다. 인공조명은 생체 리듬을 교란한다. 멜라토닌 분비가 억제되고, 수면의 질이 낮아진다. 더 밝고 더 많은 자극으로 채워진 세상 속에서, 우리는 오히려 제대로 쉬지 못하고 있다. 도파민에 중독되어 자극을 없애면 쉬어질 것 같지만, 자극을 끊지 못해서 쉬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여백이 있어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천문학자들은 어둠을 지키기 위해 적극적으로 나선다. 빛 공해 지도를 만들고, 조명 설계 가이드라인을 제안하고, 국제 밤하늘 보호구역을 지정하는 운동을 벌인다. 외부 자극을 줄여야 희미한 신호가 보이기 때문이다.
반면, 현대 사회는 반대로 움직인다. 빈 시간이 생기면 채우려 한다. 이동 중에는 이어폰을 끼고, 식사 중에는 영상을 틀고, 잠들기 전까지 화면을 들여다본다. 가만히 있는 것을 비효율로 여긴다.
하지만 수십억 광년 밖의 희미한 빛이 포착되는 것은 주변을 비워냈기 때문이듯이, 우리 안의 희미한 것들 -자신에 대한 진짜 이해, 삶의 방향에 대한 깊은 성찰, 오래된 감정의 실체- 도 자극이 잦아든 고요한 순간에야 비로소 모습을 드러낸다. 끊임없는 자극 속에서는 그것들이 잡음에 묻혀 들리지 않는다.
밤이 있어야 별이 보인다
로컬 관측소나 천문대에서 관측을 위해 밤을 새울 때, 새벽 2~3시에 혼자 망원경 앞에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있다. 아무 알림도 없고 아무 소음도 없는 그 시간에 하늘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고요함이 온다. 수십억 광년 밖의 빛이 지금 내 눈에 닿고 있다는 것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그 빛이 보이는 것은 주변이 비어 있기 때문이다.
사실 이런 고요함은 누구에게나 필요하다. 늘 바쁘고 늘 연결되어 있어야 한다는 압박 속에서, 잠시 멈추는 것이 게으름처럼 느껴질 때가 있다. 하지만 보고 싶은 것이 희미할수록 주변이 고요해야 한다는 것은, 물리적 사실인 동시에 삶의 진실이기도 하다. 천문학자가 고요함을 지키려는 것처럼, 우리도 삶에서 의도적으로 여백을 만들 필요가 있다. 그것이 낭비처럼 느껴질 때, 어쩌면 그 순간이 가장 희미하고 중요한 것들이 비로소 보이기 시작하는 때일지도 모른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6-1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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