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묵도 정보를 담고 있다?
1977년 발사된 보이저 1호는 현재 지구로부터 약 240억 킬로미터 떨어진 성간 공간을 날고 있다. 그 탐사선에서 보내오는 신호는 빛의 속도로 달려도 지구에 닿는 데 약 22시간이 걸린다. 보이저에 무언가를 명령하고 그 응답을 받으려면 하루가 훌쩍 넘게 기다려야 한다는 뜻이다. 탐사선을 운용하는 팀은 그 긴 침묵 동안 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었는지, 탐사선이 정상적으로 작동하고 있는지를 알 방법이 없다. 오직 기다리며 지켜볼 뿐이다.
우주 탐사는 기다림의 연속이다. 망원경이 천체를 관측하는 데 걸리는 시간, 데이터가 지구에 전달되는 시간, 그 데이터를 분석하는 시간. 결과를 손에 쥐기까지 때로는 몇 달, 심지어 몇 년이 걸린다. 이 기다림을 견디지 못하면 천문학자가 되기 어렵다. 그런데 오래 기다리다 보니 한 가지 깨달은 것이 있다. 침묵이 단순한 공백이 아니라는 것이다. 침묵도 정보를 담고 있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정보이다
전파천문학에서는 천체가 특정 주파수에서 내보내는 신호를 탐지한다. 분자마다 고유한 주파수에서 전파를 방출하는데, 일산화탄소(CO)는 특정 주파수에서, 수증기는 또 다른 주파수에서 신호를 낸다. 그런데 흥미로운 것은, 신호가 없는 것 자체도 정보가 된다는 점이다. 특정 주파수에서 방출이 관측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 천체에 해당 분자가 없거나 특정 물리 과정이 일어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려준다. 물론 이는 전파천문학에서만 해당하는 이야기는 아니지만, 어찌 되었든 천문학자는 신호뿐만 아니라 침묵을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이 비단 우주 이야기만은 아니다. 사람 사이에서도 침묵은 정보를 담는다. 누군가가 특정 주제에 대해 말을 아끼는 것, 질문에 곧바로 대답하지 않는 것, 화제를 슬그머니 돌리는 것. 이 침묵들은 모두 무언가를 말하고 있다. 잘 듣는 사람은 말해진 것만큼이나 말해지지 않은 것에 귀를 기울인다. 오랫동안 함께한 사람들 사이에서 굳이 말하지 않아도 통하는 것들이 생기는 것도, 말했어야 했던 것들이 쌓여 침묵이 결국 벽이 되는 것도, 모두 같은 원리이다. 침묵은 공백이 아니라 정보이다.
기다림은 그 침묵을 능동적으로 다루는 행위이다
문제는 우리가 침묵을 불편해한다는 것이다. 현대 사회는 기다림을 비효율로 취급한다. 즉각적인 응답, 실시간 피드백, 빠른 결과. 무언가를 보내고 답이 오지 않으면 불안해진다. 침묵을 관계가 끊겼다는 신호로 읽거나, 문제가 생겼다는 신호로 읽는다. 그래서 우리는 그 침묵을 빨리 채우려 한다. 서둘러 말을 보내고, 서둘러 결론을 내리고, 서둘러 다음으로 넘어간다.
그러나 보이저 신호를 기다리는 팀을 다시 보자. 그들은 손을 놓고 기다리지 않는다. 신호가 오는 동안 이전 데이터를 분석하고, 다음 명령을 준비하고, 탐사선의 상태를 시뮬레이션한다. 침묵의 시간을 능동적으로 사용하는 것이다. 관측 제안서를 내고 망원경 시간을 배정받기까지 1~2년이 걸리는 경우도 있다. 그 기간 동안 천문학자는 관측이 시작되면 어떤 데이터를 어떻게 분석할지를 미리 준비한다. 기다림은 준비의 시간이지, 빈 시간이 아니다.
사람에 대한 이해, 복잡한 문제에 대한 통찰, 깊은 신뢰. 이것들도 마찬가지이다. 빠른 속도로 생겨나지 않는다. 침묵을 견디고, 그 안에서 무언가를 준비하고, 기다리는 과정 속에서 천천히 만들어진다. 침묵을 서둘러 채우는 순간, 그 안에 담긴 정보를 놓치게 된다.
느린 것들이 깊다
빛은 우주에서 가장 빠른 것이다. 그런데 생각은 빛보다 느리다. 어떤 경험이 우리에게 무엇을 의미하는지, 어떤 선택이 옳은지, 어떤 사람이 소중한지를 깨닫는 데는 시간이 걸린다. 빠르게 내린 결론이 얕은 이유는 그 안에 충분한 침묵과 기다림이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세월이 지나면서 다들 깨달을 사실이지만, 생각은 재촉한다고 깊어지지 않는다. 오히려 그 반대인 듯 보인다. 침묵을 견디고 기다리는 그 시간 동안, 생각은 천천히 자리를 잡는다.
보이저 1호가 47년에 걸쳐 전해온 데이터를 생각해 보자. 성간 공간이 어떤 물질로 이루어져 있는지, 태양계의 경계가 정확히 어디인지. 이 정보들은 빠른 탐사선 한 대를 보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십 년이라는 시간이 누적되면서, 그리고 그 긴 침묵 속에서 신호를 읽어내면서 비로소 얻어진 것들이다. 깊이는 속도가 아니라 시간이 만든다. 그 침묵이 낭비처럼 느껴질 때, 어쩌면 그 순간이 가장 중요한 것이 만들어지고 있는 때일지도 모른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5-22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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