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인데 모른다고 자신있게 말하는 사람들
우주의 구성 성분을 물으면 천문학자들은 이렇게 답한다. 우리가 알고 있는 물질, 즉 별과 행성과 가스로 이루어진 보통 물질은 우주 전체의 약 5퍼센트에 불과하고, 나머지 27퍼센트는 암흑물질이고, 68퍼센트는 암흑에너지라고. 그럼 질문자는 다시 그 암흑물질과 암흑에너지는 이름에 '암흑'이 붙은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천문학자들은 모른다고 대답한다. 다시 말해, 천문학자들은 우주의 95퍼센트가 무엇으로 이루어져 있는지 모른다. 그리고 이 사실을 아무렇지도 않게, 심지어는 매우 자랑스럽게 말한다.
만약 이것이 이상하게 느껴진다면, 그것은 우리 사회가 '모른다'는 말을 얼마나 불편하게 여기는지를 그대로 반영하는 반증일 수 있다. 그렇다면 도대체 천문학자들은 왜 그럴까? 간단히 말해서 우리는 정말로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존재한다는 것은 간접적인 증거로 확인되지만, 그 정체는 여전히 미지의 영역이다.
오차 막대가 있는 숫자의 세계
과학 논문에서 숫자는 혼자 다니지 않는다. 항상 불확실성을 나타내는 오차 범위가 함께 붙는다. 예를 들면, 어떤 별까지의 거리가 '430 ± 20광년'이라고 쓰면, 이것은 거리가 410에서 450광년 사이 어딘가라는 뜻이다. 과학자들은 이처럼 그 숫자를 우리가 얼마나 신뢰할 수 있는지를 함께 보여주며, 그 불확실성이 어디서 비롯되었는지도 반드시 명시한다.
필자도 처음 연구를 시작했을 때, 오차 막대가 크게 나오면 부끄러운 일인 줄 알았다. 측정이 정밀하지 못하다는 뜻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오히려 반대이다. 오차를 제대로 추정한다는 것 자체가 이미 정교한 작업이기 때문이다. 불확실성을 숨기거나 과소평가하는 것이야말로 나쁜 과학이다. 오차 막대 없는 숫자는 과학적으로는 사실상 의미가 없다.
"모른다"는 것의 두 가지 종류
사실 과학에는 두 종류의 '모름'이 있다. 하나는 아직 측정하지 못해서 모르는 것이다. 이것은 기술이 발전하면 알 수 있다. 더 좋은 망원경, 더 긴 관측 시간, 더 정교한 분석 방법이 있으면 답에 다가갈 수 있다.
또 하나는 원리적으로 알 수 없는 것이다. 우주의 지평선 너머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우주가 시작되기 전에 무엇이 있었는지. 이런 질문들은 관측 자체가 불가능하기 때문에 과학적 답이 원리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두 종류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지금은 모르지만 언젠가 알 수 있다'와 '원리적으로 알 수 없다'는 전혀 다른 상황이기 때문이다. 전자는 연구를 계속할 이유가 되고, 후자는 겸손해질 이유가 된다.
일상에서도 이 구분은 생각보다 유용하다. 지금 당장 결론이 나지 않는 상황, 아직 충분한 정보가 없는 결정, 더 지켜봐야 하는 관계. 이것들 앞에서 억지로 확신을 만들어내는 것보다, '아직 모른다'고 인정하는 것이 더 정직하고 더 현명할 때가 많다.
확신을 강요하는 사회
물론 우리는 알고 있다. 우리 사회는 여전히 '모른다'는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을 말이다. 전문가는 명쾌한 답을 줘야 한다는 압박이 늘 존재한다. 의사는 진단을 내려야 하고, 경제학자는 전망을 제시해야 하고, 기상예보관은 날씨를 맞혀야 한다. 불확실성을 솔직하게 말하면 능력이 없는 것처럼 보인다는 두려움이 있다.
그 결과 우리 사회에는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가? '근거 없는' 확신이 넘쳐난다. 이른바 '카더라'는 비단 정치판에서만 등장하지 않는다. 복잡한 현실을 지나치게 단순화한 분석이 권위 있는 것처럼 유통되는 결과를 낳고 있으며, 불확실한 예측도 마치 확정된 사실인 양 제시된다. 물론 이것이 틀렸을 때는 누구도 책임지지 않는다.
반면 과학은 다르다. 논문에 오차를 표기하고, 가정을 명시하고, 결론의 한계를 스스로 밝힌다. 그리고 새로운 데이터 앞에서 기꺼이 수정된다. 이것이 과학의 강점이라고 느껴진다.
사실, 불확실성은 가능성의 다른 이름이다
그런데 생각해 보면, 불확실성이 꼭 불안의 이유일 필요는 없다. 천문학자들이 암흑물질의 정체를 모른다는 사실은 답답함이 아니라 설렘의 원천이기 때문이다. 그것이 무엇인지 아직 모른다는 것은, 그것을 알아낼 여지가 아직 남아 있다는 뜻이다. 즉, 모름은 공백이 아니라 가능성의 공간이다.
삶에서도 마찬가지다. 앞으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것은, 아직 아무것도 결정되지 않았다는 뜻이기도 하다. 확실한 것만 남은 삶은 어쩌면 이미 끝난 삶에 가깝다. 사후 세계를 그린 드라마 TV쇼 굿플레이스에서, 여섯 명의 주인공이 모든 역경을 이겨내고 마침내 '굿플레이스'에 도착했을 때, 천국이 영원히 펼쳐진 사실을 알게 됨과 동시에 미지의 도전이 더 이상 없고 결말을 미리 알고 있을 때 극한 우울감에 빠지곤 한다. 그리고 답이 없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 주인공들은 특단의 해결책을 찾아낸다. 어찌 되었든 불확실성이 남아 있는 한, 우리에게는 아직 더 쓸 이야기가 남아 있다.
불확실성 속에서 결정하는 법
하지만, 불확실성을 인정하는 것이 결정을 미루는 이유가 되어서는 안 된다. 천문학자들 역시 완전한 데이터가 갖춰질 때까지 기다리지 않는다. 지금 가진 데이터로, 현재의 이론으로, 최선의 판단을 내린다. 다만 그 판단이 얼마나 확실한지를 함께 명시할 뿐이다.
"이 별은 약 50만 년 후에 초신성 폭발을 일으킬 것으로 예측됩니다. 다만 이 예측의 불확실도는 ±10만 년입니다." 이 문장은 틀릴 수도 있다. 그러나 솔직하고 과학적이다. 그리고 그 솔직함이 다음 연구자에게 올바른 출발점을 제공한다.
'모른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 그것이 지적 정직함의 시작이다. 우주의 95퍼센트를 모른다고 말하는 천문학자들은 무능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은 자신이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경계를 가장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그 경계를 정확히 아는 것이야말로, 진짜 앎의 시작이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4-17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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