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모델은 틀렸다. 그러나 어떤 모델은 쓸모 있다."
통계학자 조지 박스(George Box)가 남긴 말이 있다. "모든 모델은 틀렸다. 그러나 어떤 모델은 쓸모 있다." 처음 이 말을 들었을 때가 기억난다. 천문학자로 살아가고 있는 내 인생에서, 약간의 저항감을 느낀 순간이었던 것 같다. 내가 수년을 바쳐 만들고 정교하게 다듬고 있는 모델이 틀렸다고? 하지만, 연구를 오래 할수록, 내가 얼마나 오만했고, 뼈를 때리는 이 말이 얼마나 정확한지를 깨닫게 된다. 그리고 이것이 비단 과학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것도 알게 된다.
그도 그럴 것이 우리는 모두 세상에 대한 모델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들이 어떻게 행동할지에 대한 모델, 일이 어떻게 풀릴지에 대한 모델, 내가 어떤 사람인지에 대한 모델. 그리고 그 모델들 모두, 예외 없이 불완전하다. 사실, 문제는 모델이 불완전하다는 사실 자체가 아니다. 자신의 모델이 현실 그 자체라고 믿는 순간, 그때부터 문제가 생긴다.
지도는 땅이 아니다
지도학에 오래된 격언이 있다. "지도는 영토가 아니다." 아무리 정밀한 지도도 실제 땅을 완벽하게 재현하지는 못한다. 지도는 땅의 특정 측면을 선택적으로 단순화한 것이기 때문이다. 도로 지도는 등고선을 생략하고, 지형도는 건물을 표시하지 않는다. 어떤 지도가 옳고 그른 것이 아니라, 목적에 따라 필요한 지도가 다를 뿐이다.
과학적 모델도 마찬가지다. 원시행성계 원반에서 얼음이 어떻게 분포하는지를 설명할 때, 나는 수십 가지, 아니 어쩌면 수백 가지의 가정을 집어넣은 모델을 사용한다. 온도 분포는 단순화하고, 먼지 입자의 크기는 특정 범위로 제한하고, 화학 반응은 알려진 것들만 포함한다. 따라서, 이 모델은 분명히 현실을 완벽하게 재현하지 못한다. 그러나 관측 데이터를 설명하고 다음 관측을 예측하는 데는 충분히 유용하다. 과학에서는 그것으로 된다.
틀린 모델이 세상을 바꿨다
흥미롭게도, 역사를 보면 '틀린 모델'들이 오히려 세상을 크게 바꾼 경우가 많다. 뉴턴의 중력 이론은 엄밀히 말하면 틀렸다. 아인슈타인의 일반 상대성 이론이 더 정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뉴턴 역학은 지금도 로켓 궤도를 계산하는 데 쓰인다. 일상적인 속도와 질량의 범위에서는 뉴턴 역학으로 충분하기 때문이다. 틀렸지만 쓸모 있는 모델의 전형이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천동설도 마찬가지다. 현재 우리가 모두가 알고 있듯이, 지구가 우주의 중심이라는 이 모델은 물론 틀렸다. 하지만 이 모델로 천문학자들은 수백 년간 행성의 위치를 예측했고, 항해에 썼고, 달력을 만들었다. 모델의 전제가 잘못되었더라도, 그 예측이 현실과 일치하는 범위 안에서는 충분히 쓸모가 있었던 것이다.
좋은 모델의 조건
그렇다면 좋은 모델이란 무엇인가? 과학에서 좋은 모델의 조건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다. 첫째, 관측된 사실을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모델을 기반으로 아직 관측되지 않은 것을 예측할 수 있어야 한다. 셋째, -사실 이것이 가장 중요한데- 반증이 가능해야 한다. 즉, 어떤 결과가 나오면 이 모델이 틀렸다고 말할 수 있는 조건이 처음부터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자신이 틀릴 수 있다는 가능성을 모델 안에 처음부터 내장해 두는 것. 이것이 과학적 모델과 이데올로기의 근본적인 차이다. 이데올로기는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다. 어떤 반례가 나와도 예외로 처리하거나 다른 요소를 탓한다. 반면 과학적 모델은 반증되면 기꺼이 수정되거나 폐기된다.
예를 들자면, 음모론 이야기를 해보자. 지구상에는 여전히 달 착륙이 조작되었다고 믿는 사람들이 존재한다. 그들의 주장은 언뜻 논리적으로 보일 수 있다. 깃발이 왜 펄럭이나, 그림자 방향이 왜 이상한가, 방사선 대역을 어떻게 통과했나. 하지만,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 주장들에는 결정적인 공통점이 있다. 반증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어떤 증거를 들이밀어도 "그 증거도 조작이다"로 끝난다. 과학자들의 해명도, 독립적인 국가들의 추적 기록도 - 심지어 그 당시 미국의 강력한 우주 라이벌인 소련의 기록 조차도 -, 달에 놓고 온 반사경으로 지금도 레이저를 쏘아 거리를 측정한다는 사실도. 모두 "거대한 음모"의 일부가 된다. 이처럼 반증을 허용하지 않는 모델은 과학이 아니다. 그것은 "헛된" 믿음일 뿐이다. 물론, 믿음을 갖는 것은 자유지만, 그것을 과학이라고 부르는 것은 다른 문제다.
삶에서도 이 구분은 생각보다 중요하다. 사람에 대한 편견, 사회에 대한 선입견, 자신에 대한 고정된 자기상. 이것들이 어느 순간 반증을 허용하지 않게 되면, 그것은 이미 모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가 된다.
모델을 버릴 줄 아는 용기
과학자가 가장 힘들어하는 순간 중 하나는 자신이 오랫동안 믿어온 모델을 버려야 할 때다. 수년간의 연구와 논문이 쌓인 모델이 새로운 관측 앞에서 무너질 때, 그것을 순순히 받아들이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필자도 그런 경험이 있다. 아끼던 가설이 데이터 앞에서 무너졌을 때의 그 묘한 감각 — 패배감과 해방감이 동시에 밀려오는 느낌— 그것을 한 번이라도 겪어본 사람은 안다. 모델에 집착하는 것이 얼마나 무익한 일인지를.
결국 모델은 도구이다. 더 좋은 도구가 생기면 이전 도구는 내려놓아야 한다. 망치를 사랑해서 아끼고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망치는 못을 박아야 하는 용도이기 때문에, 못을 박다가 부서지면 다른 망치를 찾는 용기가 필요하다.
삶도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가 세상에 대해, 사람에 대해, 자신에 대해 품고 있는 모델들은 모두 불완전하다. 그 모델이 더 이상 현실을 잘 설명하지 못한다는 신호가 왔을 때 — 예상과 다른 결과가 반복될 때, 같은 패턴의 실망이 계속될 때 — 바로 그때가 수정할 시점이다. 때로는 완전히 버려야 할 때도 있다.
모든 모델은 틀렸다. 그러나 어떤 모델은 쓸모 있다. 그리고 쓸모가 다한 모델은, 내려놓을 수 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6-04-10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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