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남극에 들어설 원자력 발전소와 국제 달 연구기지
인류가 처음 달에 발을 디딘 지 반세기가 넘은 지금 새로운 '달 점령 전쟁'이 펼쳐지고 있다. 이번에는 단순한 탐사나 깃발 꽂기가 아닌 원자력 발전소를 통해 영구적인 거점을 구축하려는 야심 찬 계획이 추진되고 있다. 중국과 러시아가 손을 잡고 2035년까지 달에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때 미국과 소련이 우주 경쟁을 벌였던 냉전 시대의 기억이 되살아나는 순간이다.

"차세대 맨해튼 프로젝트가 달에서 시작된다" 중국 우주과학자들 사이에서 회자되는 이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중국 국가우주국(CNSA)과 러시아 우주국 로스코스모스가 최근 서명한 협력 양해각서에는 이는 지구에서 38만km 떨어진 달 표면에 자동화된 원자력 발전소를 건설하겠다는 프로젝트의 내용이 담겨있다.
달의 환경은 영하 170도의 혹한과 영상 130도의 폭염이 반복되는 극한의 조건을 지니고 있다. 때문에 달에 들어설 원자력 발전소는 지구와는 전혀 다른 환경 조건을 견디며 작동해야 한다. 2035년도까지 발전소가 완공되면 국제 달 연구기지(ILRS: International Lunar Research Station)에 안정적인 전력을 공급하게 된다.
달의 숨겨진 보물: 헬륨-3와 새로운 에너지 혁명
미국이 아폴로 계획으로 달에 첫 발자국을 남겼다면, 중국과 러시아는 원자력 발전소로 달에 첫 정착지를 건설하려 준비 중이다.
베이징 항공우주대학의 한 연구원은 달 표면에 풍부하게 존재할 것으로 추정되는 헬륨-3에 대해서 "지구에서 몇 백 년 동안 사용할 핵연료를 달에서는 단 몇 년 만에 생산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기대감을 표현한다. 마치 중세 시대의 연금술사들이 꿈꾸던 것처럼 중국과 러시아는 달에서 지구의 에너지 문제를 해결할 '황금'을 찾으려는 듯 보인다.

달 남극에 위치할 ILRS는 영구적인 그림자 지역과 영구적으로 햇빛이 비치는 지역이 공존하는 전략적 요충지로 해석된다. 이곳에는 물(H₂O)의 형태로 존재하는 수소와 산소가 풍부할 것으로 예상되는데 이는 미래 우주 탐사의 '주유소' 역할을 할 수 있다. 중국의 우주 개발 역사가인 징 롱은 "옛날 실크로드가 동서양을 연결했듯이 ILRS가 지구와 깊은 우주를 연결하는 새로운 '우주 실크로드'의 시작이 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러시아 우주국 로스코스모스 역시 이 기지가 단순한 과학 시설을 넘어서 인류의 미래 거주지를 테스트하기 위한 장소가 될 것이라 공식적으로 언급하며 기대감을 나타냈다. 이들은 달이 화성과 더 먼 우주로 가는 관문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우주 패권을 향한 새로운 경쟁: 아르테미스 vs ILRS
사실 ILRS 프로젝트는 미국 주도의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에 대항하는 성격이 강하다.
아르테미스 프로그램은 2027년부터 '게이트웨이'라는 달 궤도 우주정거장 건설을 계획하고 있으며, 미국 항공우주국(NASA)과 유럽우주국(ESA)을 포함한 서방 동맹국 등 주로 자유주의 진영이 주축을 이루고 있다. 대한민국 역시 한-미 정상회담의 과제 가운데 하나로 달 착륙 프로젝트에 참여할 수 있는 협정국의 일원이 된 바 있다.

ILRS는 2017년 처음 발표된 이후 완전히 다른 진영을 형성하고 있다. 파키스탄, 베네수엘라, 벨라루스, 아제르바이잔, 남아프리카, 이집트, 니카라과, 태국, 세르비아, 세네갈, 카자흐스탄 등이 참여 의사를 밝혔으며, 이는 중국의 일대일로(Belt and Road Initiative: 기존 해양 선적 무역을 줄이고, 유럽과 철도로 무역을 하겠다는 계획) 참여국들과 상당 부분 겹치는 양상을 보인다.
중국 달 탐사 프로그램의 총책임자인 우 웨이런은 지난해 '555 프로젝트'를 통해 50개국, 500개 국제 과학연구기관, 5,000명의 해외 연구자들을 ILRS에 초청할 것이라고 발표했는데, 이는 단순한 과학적 협력을 넘어 중국이 구축하려는 새로운 우주 질서의 청사진을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움직임은 우주가 더 이상 미국과 서방의 전유물이 아님을 선언하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미국과 그 자유주의 동맹국들이 주도했던 기존 우주 질서에 중국과 러시아가 정면으로 도전장을 내민 셈이다.
중국의 우주 궐기: 새로운 시대의 개막
ILRS는 중국이 우주 탐사와 과학 연구의 새로운 선두주자가 되려는 야심 찬 계획의 핵심이다. 첫 번째 구성요소는 2028년 중국의 창어 8호 미션을 통해 설치될 예정이다. 이는 중국의 첫 유인 달 착륙 시도이기도 하다.
중국은 이미 달 탐사에서 놀라운 성과를 거두고 있다. 2013년부터 무인 로버를 달에 착륙시키며 달 표면을 정밀하게 매핑하는 임무를 주도적으로 수행해 왔다. 그 중에서도 지구에서 항상 보이지 않는 달의 뒷면, 이른바 '달의 어두운 면' 탐사에 있어서 중국은 세계 최초 기록들을 연이어 세우고 있다. 2024년 6월, 중국은 창어 6호를 통해 달 뒷면에서 암석을 성공적으로 채취한 최초의 국가가 되었다. 중국 국영 신화통신은 이 성과를 두고 "인류 달 탐사 역사상 전례 없는 업적"이라고 치켜세운 바 있다.

중국의 이러한 행보는 과거 미국이 독점했던 우주 개발의 주도권이 점차 다극화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한때 아폴로 프로그램으로 우주 개발을 선도했던 미국은 이제 강력한 경쟁자를 마주하게 되었다.
달의 자원: 새로운 '골드러시'의 시작
ILRS가 과학 연구를 주요 목표로 내세우고 있지만 사실 모든 우주 탐사국들에게 매력적인 유인 요소는 앞선 설명처럼 달의 천연자원이다. 달에는 금속 산화물, 달 토양(레골리스), 희토류 금속, 그리고 무엇보다 핵융합 발전의 잠재적 연료인 헬륨-3가 상당량 존재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헬륨-3는 지구에서는 극도로 희귀하지만 달 표면에는 태양풍에 의해 수억 년 동안 축적되어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헬륨-3는 핵융합 반응에서 방사성 폐기물 없이 거대한 에너지를 생산할 수 있어 '우주의 석유'라고도 불린다. 단 1톤의 헬륨-3로 미국 전체가 1년간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는 계산도 있다.

하지만 이런 자원들이 실제로 누구의 소유가 될 수 있는지는 법률 전문가들 사이에서 뜨거운 논쟁거리가 되고 있다. 1967년 제정된 우주조약은 천체를 어떤 국가도 소유할 수 없다고 규정하고 있지만 자원 채취와 활용에 대한 명확한 규정은 부재한 상태다. 이는 마치 16세기 신대륙 발견 이후 벌어진 영토 분할과 비슷한 양상을 우주에서 재현될 가능성이 있는 셈이다.
경쟁과 협력의 갈림길: 인류의 미래가 달린 선택
이를 조금 더 도전적으로 해석한다면 인류의 달 탐사는 이제 단순한 과학적 호기심이나 국가적 위신의 문제를 넘어서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실질적인 자원 확보와 우주 패권을 향한 본격적인 경쟁으로 발전하고 있는 셈인데, 달 표면에 건설될 원자력 발전소는 단순한 과학 시설이 아닌 우주 공간에서의 영향력 확장을 위한 전략적 자산이 될 수 있다.
특히 달 남극이라는 입지는 그 자체로 엄청난 전략적 가치를 지닌다. 이곳이 얼음으로부터 얻을 수 있는 물이 풍부할 뿐만 아니라 태양 에너지를 거의 연중 지속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지역이기 때문이다. 원자력 발전소와 태양 에너지를 결합한다면 이 기지는 진정한 의미의 '우주 전초기지' 역할을 할 수 있게 된다.

물론 이러한 경쟁 속에서도 국제 협력의 가능성은 여전히 열려있다. 우주는 그 광대함만큼이나 도전의 규모도 크기에 어느 한 국가가 독점하기는 너무 방대하기 때문이다. 달 원자력 발전소 건설 과정에서 쌓이게 될 기술과 경험은 향후 화성 탐사나 소행성 자원 개발에도 필수적인 자산이 될 것이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기술 발전이 인류 전체의 번영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달에서의 경쟁이 지구에서의 갈등으로 번지지 않도록 그리고 우주 자원의 혜택이 일부 강대국에만 집중되지 않도록 균형잡힌 접근이 필요하다.
이제 달은 더는 단순한 로맨틱한 시의 소재로만 볼 수 없는 존재가 되었다. 그곳은 인류의 실질적인 생존과 번영, 그리고 우주 문명으로의 도약을 위한 새로운 개척지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달에 세워질 원자력 발전소의 불빛이 21세기 인류의 새로운 지평을 밝히게 될 날이 다가오고 있다. 그 빛이 경쟁의 불꽃이 될지, 아니면 협력의 등불이 될지는 이제 우리 인류의 선택에 달려 있다.
- 김민재 리포터
- minjae.gaspar.kim@gmail.com
- 저작권자 2025-06-24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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