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말했던 맥아더 장군의 명언(名言)이 우주탐사 분야에도 그대로 적용될 것으로 보인다. 인류의 우주탐사 역사에 있어 큰 획을 그은 개척자들이 잇달아 영면(永眠)에 들어가고 있기 때문이다.
개척자들 중에는 천체 관측을 통해 수천 개의 외계 행성을 관측으로 찾아낸 케플러(Kepler) 천체 망원경과 왜소행성 주위를 선회하며 우주탄생의 비밀을 파헤쳤던 던(Dawn) 탐사선, 그리고 화성의 신비로움을 현지에서 직접 전달해주었던 로버(rover)인 오퍼튜니티(Opportunity) 등이 포함되어 있다.
미 항공우주국(NASA)는 지금까지 우주탐사의 각 분야에서 빛나는 성과를 거둔 개척자들이 하나둘씩 사라지고 있다고 발표하면서, 이들은 비록 사라지지지만 이름과 업적은 영원히 기록될 것이라고 밝혔다. (관련 기사 링크)
현역에서 은퇴하는 우주개척 3총사
우주개척 3총사 중 가장 먼저 은퇴 조짐을 보인 개척자는 화성탐사로봇인 오퍼튜니티다.
이 로버는 지난 2004년 화성에 도착한 후, 베일에 싸여있던 화성의 신비로움을 한꺼풀 벗기는 기념비적 역할을 수행했다.
오퍼튜니티는 발사 당시만 해도 90일 동안 1km 정도 이동하며 화성을 탐사하는 것이 주요 목표였다. 그러나 각종 부품들이 제 역할을 하면서 예정됐던 탐사 기간을 훌쩍 넘겨 최근까지 왕성한 활동력을 보였다.
하지만 지난 5월 말부터 불기 시작한 거대한 모래폭풍을 만난 뒤 모든 여건이 바뀌었다. 화성 표면의 25%를 뒤덮을 만큼 엄청난 규모로 발생한 모래폭풍으로 인해 오퍼튜니티의 신호가 지난 6월 말로 끊긴 것.
NASA는 모래폭풍으로 인해 태양광이 차단되자 오퍼튜니티의 전력소모를 줄이기 위해 휴면상태로 만들었다.
그렇게 3개월 가량 시간이 흐른 뒤 모래폭풍이 가라앉고 대기가 깨끗해지자, NASA는 휴면상태를 해제했다. 그러나 오퍼튜니티는 깨어나지 못했다.
이에 포기하지 않고 NASA는 대략 6주 정도의 시간동안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는 동시에, 오퍼튜니티가 보내는 신호를 받으려는 시도를 지속해 왔다.
하지만 현재까지 오퍼튜니티는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고 있어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NASA 관계자들은 혹시나 모래폭풍으로 인해 본체 손상같은 상황이 발생한 것이 아닌지를 의심하기도 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드러났다. 오퍼튜니티의 현재 상황이 화성 궤도를 도는 '화성정찰위성(MRO)'의 카메라에 최근 포착됐기 때문이다.
NASA 관계자는 ‘인내의 계곡’이라 불리는 화성의 한 협곡에서 촬영된 오퍼튜니티호의 사진을 공개하며 “아직 오퍼튜니티의 응답 신호를 받지는 못했지만, 촬영된 모습만을 놓고 보면 외관상으로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문제는 이 같은 NASA의 노력이 더 이상 진행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NASA에서 오퍼튜니티 운용을 담당하고 있는 ‘로리 글레이즈(Lori Glaze)’ 박사는 “오퍼튜니티를 깨우기 위해 지속적으로 신호를 보내고 있지만 회의적이라는 생각이 든다”라고 밝히며 “앞으로 1~2주 정도 더 시도해본 뒤 오퍼튜니티를 깨우는 작업을 중단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임무를 대신할 후계자들이 연이어 등장하고 있어
오퍼튜니티 만큼이나 기대 이상의 활약을 보여준 개척자로는 케플러 천체 망원경을 꼽을 수 있다.
당초 NASA는 케플러 망원경이 3년 6개월 정도 활동할 것이라 예측했지만, 예정보다 훨씬 긴 9년 간의 연장 임무를 충실히 수행했다.
케플러 망원경의 활약상을 열거하면 그야말로 눈이 부실 정도다. 지난 2009년 발사된 이후 9년 동안 태양 주위를 돌며 외계 행성 2600여 개를 찾아내는 데 성공했다. 현재까지 발견된 외계 행성의 70%는 모두 케플러 망원경이 찾아낸 것이다.
물론 이 같은 성과가 순조롭게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다. 지금으로부터 5년 전에 망원경의 자세를 잡아주는 부품이 고장 나면서 위기에 처하기도 했다.
케플러 망원경은 우주 공간에 떠있는 상태로 관측하기 때문에, 자세를 잡을 수 없게되면 한순간에 우주쓰레기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그러나 NASA 연구진은 망원경의 방향을 3개월마다 바꾸는 방식으로 이 같은 문제를 해결했다. 케플러는 이후 시작된 2단계 탐사 활동에서 50만개가 넘는 별을 관측하는 예상 외의 성과를 거둘 수 있었다.
케플러 망원경이 보낸 데이터는 워낙 방대해서 관측을 중단한 지금까지도 분석이 끝나지 않은 상황이다. NASA는 케플러 망원경이 보내온 관측 데이터를 분석하는 데만 대략 10년 이상이 걸릴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한편 왜소행성인 세레스(Ceres)를 3년 반 정도 조사해 온 탐사선 던(Dawn)은 연료가 고갈되어 임무를 종료할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지난 2007년에 발사된 던 탐사선은 이온 로켓 엔진을 장착한 덕분에 11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임무에 충실할 수 있었다.
이온 로켓은 화학 로켓에 비해 절반 이하의 연료를 소모하기 때문에 장시간 사용할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워낙 오랜 시간이 지났기 때문에 연료가 고갈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되었다.
우주 개척의 산 증인이었던 3총사는 비슷한 시기에 퇴장하지만, 그렇다고 이들의 임무가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NASA의 관계자는 “3총사의 뒤를 이을 ‘테스(TESS)’ 천체 망원경이나 ‘마스(Mars) 2020’ 로버 같은 후계자들이 이들의 임무를 대신할 것”이라고 말했다.
- 김준래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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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저작권자 2018-11-15 ⓒ Science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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